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지난달 어느 날, 한 신문을 보다가 눈이 멈췄다. 개성공단 사망을 알리는 ‘부고’였다. 2016년 2월10일 온 국민이 성원해 온 남북화해협력의 마지막 보루인 개성공단이 사망했다는 소식과 함께 개성공단기업 정상화와 남북경협 복원을 염원하는 국민 장례식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2016년 11월23일 오후 1시30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서울 도심에 때 아닌 상복을 입은 상주들이 등장하고 추모곡이 울려 퍼졌다. 개성공단기업피해대책위원회와 민주실현주권자회의가 거행한 ‘개성공단 장례식’ 자리에서였다. 장례식은 1부 개성공단 장례식, 2부 개성공단 및 남북경협 부활 염원제, 3부 개성공단 및 남북경협 피해보상 특별법 제정 촉구대회 등 3부로 진행됐다.
이날 장례식은 한반도 안보의 보루이자 남북화해 협력의 마중물이었던 개성공단의 사망을 애도하고 개성공단 기업의 정상화와 남북경협의 복원을 기원하기 위해 사망 9개월이 넘어서야 뒤늦게 마련됐다.
개성공단에서 한창 제품생산을 독려하고 있어야 할 기업체 대표들이 서울 도심에서 상복을 입고, 곡(哭)을 하고, 상여를 메고 국회로 향하는 길에 경찰에 제지당하는 모습은 참담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정상운영을 보장하겠다고 한 정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망선고를 내렸다. 억울하게 단명했으니 이제라도 장례를 지내주고 부활을 빌어주는 게 도리 아니겠는가”
개성공단은 2000년 6·15 공동선언이후 남북교류협력의 하나로 북측이 토지를 남측에 임대(50년)하는 방식으로 조성돼 2004년 12월 시범단지 분양기업에서 생산된 제품이 처음으로 반출됐다.
개성공단은 남북간의 경제 협력 모델로 자리잡아갔다. 개성공단 생산액은 가동 첫 해인 2005년 1491만 달러로 시작해 2012년 4억 6950만 달러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입주업체도 2005년 18개 업체에서 폐쇄 당시인 2016년 2월 기준 124개로 늘어났다.
개성공단은 5만여명의 북한 노동자에게 개혁·개방 및 자본주의 학습장이 됐다.
남한 경제에도 도움이 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4년 보고서에서 “개성공단 사업은 지난 10년간 남한에는 32억6000만 달러의 내수 진작 효과를, 북한에는 3억8000만 달러의 외화 수입을 가져다 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한 개성공단은 2008년 말부터 심한 부침을 겪었다. 북측의 체류인원 제한조치에 남북 통행대 시간 및 통행허용인원 축소, 현대아산 직원 억류, 남측의 북한에 대한 신규투자 불허 및 남북교역중단(5.24조치), 공단가동중단 및 잔류인원 철수 등 남북 관계에 따라 불안한 동거를 해야 했다. 그렇지만 개성공단 폐쇄로는 가지 않았다. 서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개성공단은 박근혜 정부가 지난 2월10일 북한의 로켓발사에 맞서 폐쇄조치하면서 많은 기업인과 근로자들 가슴에 못을 박았다.
당시 개성공단 폐쇄조치에 대해 일각에선 북측의 위협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봤다. 그러나 당시 북측의 호전적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전격 폐쇄는 전략적 미스였다는 반박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입주업체들과의 사전 협의나 예고도 없었다. 당일 철수에 나선 업체들은 북한의 자산동결로 원자재와 제품, 설비들을 남겨둔 채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들고 오지 못한 물품 피해액만도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개성공단 폐쇄에도 최순실 비선 실세가 개입했다는 언론보도는 개성공단에서 쫓겨난 기업인들을 망연자실케 했다.
민주실현주권자회의 허인회 공동대표는 장례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인 2월7일 열린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도 개성공단 폐쇄는 언급되지 않았다. 통일부의 개성공단 남북경협 관련 실·국장, 과장들도 개성공단 중단에 대해 2월10일까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에 모처의 지시로(보도에 의하면 최순실이라 함) 갑자기 개성공단이 폐쇄됐는데 아연실색했다. 이로인해 개성공단 기업들은 1조 5000억원의 피해를 보고 10만명의 종업원들과 임직원들이 고생하고 있다”
업체대표들은 장례식 전날 최순실 씨를 ‘개성공단 폐쇄 및 남북경협 중단 배후세력’으로 규정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이 여파로 박근혜 대통령 표창장과 훈장이 홀대를 받고 있다. 한 개성공단 기업대표는 지난해 섬유의 날에 받은 대통령 표창장과 훈장을 사무실 장식장에서 치웠다고 한다. 기업인들의 분노가 어떠한 지를 보여준다.
개성공단 장례식은 비선농단 보도홍수 속에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남북경협이 반드시 재개돼 남북 공동번영과 통일의 길이 열리고, 고사위기에 있는 개성공단 기업들이 다시 활발히 움직이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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