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동심은 꾸밈없어 좋다. 이번 방학엔 국회의사당 견학 계획이 대세란 얘기다. “왜 하필 국회를…” “그건 비밀입니다” 나름대로 뭔가 감춰진 꿍꿍이 속을 애써 혼자 삭히려 한다. 아이들처럼 귀하고 예쁜 세상이 어디에 또 있을까? 느슨한 발걸음에 방학 색깔도 곱게 물들어야 하는데 “안돼, 하지마”란 부모의 감정 언어로 일그러진다. 부정적 잔소리의 반복은 갈등만 초래할 뿐 아이 성품까지 꼬이게 마련이다. 부모가 부르는 노래에 달렸다. 부모 주관으로만 자녀를 묶어 기계처럼 이리뛰고 저리 발버둥치며 정상 템포를 추월하려든다. 도무지 창의나 자기주도적 밑그림을 그릴 틈이 없다. 학부모의 그릇된 아집과 사사건건 태클 보다 ‘그렇게 좋은 생각을 했어. 함께 해볼까?’ 등, 감동 응원만으로도 방학을 꽤 짭짤하게 보낼 수 있을텐데 최적의 방학 에너지를 도막내는 건 아니지 묻고 싶다.

필자의 초등학교 4학년 방학에는 아버지께서 별난 과제를 주셨다. 두발 자전거 혼자 타기였다. 처음엔 자전거를 끌고 다니기조차 힘들었지만 자빠지고 부딪치는 횟수에 비례하여 자신감은 늘어갔다. 방학이 끝날 무렵, 윗동네 산길 내리막을 달리던 중 핸들을 미처 꺾지 못해 왼쪽 손목이 부러지긴 했으나 오히려 실수를 보너스 점수로 채워주신 세월 속 아버지 기억은 최고의 방학일기다. 산은 높을수록 흐르는 물소리까지 우렁참도 그 때 자전거 사고로 깨우친 답안 덕분에 필자가 일찍이 시(詩)세계까지 노크하게 된 무공해 자산이었다. 보약대신 호연지기를, 군불 지핀 방보다는 손수 발열(發熱) 처방전이야말로 수천 근의 무게 아래서도 버틸 힘 아니었을까? 방학은 조미료를 쓰지않고 요리한 맛깔나는 음식같은 꿈이요 생명이요 미래나 다름없다. 아이들이 건강해야 주체적으로 자기 문화도 창조하고 에너지를 만든다. 한 달 남짓 방학 기간에 뭘 얼마나 이루려고 가위 눌리는 시간표를 만들어 멀미로 시달린다면 과정과 결과 모두 역효과일 건 뻔하다. 부모의 원격 조종에 의한 로봇형도 많아 한마디로 아이들 생각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므로 낯선 것과 친근한 방학으로 풀어야 옳다. 방학은 일상의 쉼표가 아니다. 초고속 시대라 해도 어린 시절에 정상적 과정을 건너뛰면 작은 실수에 곧 좌절하고 만다. 방학은 세상과의 소통과 교감을 이을 수혜자(자녀)의 몫이다. 그러나 방학도 시작 전, ‘개학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부모의 학대성 발언(?)으로 아이들이 발끈했다. 겨울 하늘 별자리를 헤아릴 생각은 해 보았는가. 새벽시장도 함께해 힘든 삶의 현장도 보고 음지와 양지로 나뉜 세상을 눈에 넣으며 방학 맛을 느끼도록 자녀에게 고스란히 돌려주자. 그 무엇인가를 품어 국회 견학의 눈이 커지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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