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수필가)

▲ 박영자(수필가)

오늘 미사에는 신부님의 제의(祭衣)가 진한 보라색이다. 제대에 켜 놓은 초들도 모두 진한 보라색이라 어느 때 보다도 성당 안은 신비스럽고 엄숙하다. 마침 나도 보라색 코트를 입고 갔으니 우연의 일치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어느 새 대림 넷째 주다. 대림환의 진한 보라색 초를 켠 일이 며칠 안 된 것 같은데 연보라색, 분홍색, 초가 차례로 켜졌고 오늘 마지막 흰색 초를 켰으니 그 새 한 달이 가깝다. 이제 다음 주면 예수님의 탄생일인 성탄절이 다가온다. 4주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성스럽게 맞이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기간이다.
  대림절은 3~4세기 갈리아와 스페인 지역에서 시작하여 6세기에 이르러 로마 교회의 교회력에 포함되었다. 중세에는 고행, 금식, 금욕이 주된 내용이었으나, 종교 개혁 이후 근대에 이르러 기쁨의 절기라는 본래의 의미를 되찾았다.
  한 해 동안  무언가를 채우기 위해 바쁘게 뛰었다면 이제 다시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마음을 비우고, 내 마음의 중심에 그리스도의 빈 의자를 준비해 그 분을 맞을 수 있는 시간으로 삼아야 제대로 보내는 대림절이요, 한 해를 마무리하고 기쁘게 성탄을 맞이하는 마음의 자세일 것이다
  내 삶을 되돌아보고 잘못 된 점을 성찰 해 본다. 고행과 희생의 길을 걸으신 예수님의 행적을 다시 음미해 보고, 고백성사로 죄를 보속 받고, 정결한 마음이 되어 성탄절을 기쁘게 맞이할 준비를 서두른다.
  사치와 낭비를 경계하고, 절제를 실천하며 불평 불만하지 말아야 한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가족과 이웃에게 어떤 사랑을 실천 했는가 깊이 묵상해 본다. 일 년 중 이 시기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가장 신중하며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기간이다.
 
  오늘 우리 성당 신자 모두는 신부님으로부터 가느다란 끈으로 만든 팔찌 하나씩을 선물 받았다. 그것을 똑같이 왼쪽 손목에 찼다. 어디서건 불평불만이나 남을 험담하는 말을 했을 때는 그 팔찌를 빼서 오른 손에 옮겨 차고 반성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반성했을 때 다시 왼쪽팔의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남과 나를 비교하고 남이 잘 되면 시기하다 보니 그 마음에는 평화가 깃들지 못한다. 남이 잘 되면 진심으로 기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사람도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결점이 있다. 완벽하지 않기에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나무토막은 보지 못하느냐,” 하신 것처럼 사람은 남의 잘 잘못을 비판하는 데는 무척 총명하지만 자기비판에는 어둡기 마련이어서 남의 잘못은 꾸짖고 자기의 잘못은 너그럽게 용서한다. 한 해 동안 남을 평가하고 단죄하며 더럽혀진 마음을 뒤집어 털고 헹구어 낸다.
  칭찬의 말도 쉽지는 않았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칭찬의 말, 칭찬으로 얻게 될 이득을 계산하면 아부가 된다. 계산하지 말고 진심을 담아 칭찬해야 진정한 칭찬이 된다. 상대방을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기보다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좋은 점을 발견하는 버릇을 길러야 진정한 칭찬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칭찬에 인색했고 남의 잘 못은 잘도 집어내는 어리석음을 후회하며 이제 남의 좋은 점만 찾아내는 혜안을 갖자고 결심해 본다.
 
  말이 온 나라를 뒤흔드는 혼돈의 시대다. 입 가진 사람은 다 자기주장을 쏟아내어 비판하고 단죄하니 어느 것이 진실한 말인지 조차 가려내기 어렵다. 다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를 냉철하게 판단하기 위하여 침묵과 묵상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우리는 나 하나의 개체이면서 또한 다른 사람과 연결 되어 있다. 어머니가 행복해야 가족들이 행복하며 자식들이 행복해야 부모도 행복 한 것처럼 서로가 연결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분리 되고 분열 된다는 사실하나만으로 불행해 질 수 밖에 없다.
  우리 아파트 앞에 성탄 트리가 세워져 아름답게 빛난다. 이제 아름답게 마무리 할 시간이다. 마무리를 잘 하면 결과는 좋은 게 아닐까. 우리 모두의 평화와 행복을 염원하는 소박한 소망이 헛되지 않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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