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한테 분개한 데는 그의 허상만 보고 투표한 ‘묻지마 지지’가 가져다 준 자괴감과 배신감 때문이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과 자애롭게만 비쳐졌던 ‘올린 머리’의 원조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이미지 효과가 가져온 비극이다. 박근혜 환상의 결과다.
진작 박 대통령에게 현미경을 들이 댔었어야 이런 국가적 불행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는 그에게 한 표를 던진 국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다. 내년에 뽑는 대통령은 박근혜 같은 무뇌 인간이 돼서는 안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이미 형성됐다. 그래서 제2의 박근혜를 보지 않으려면 혹독한 검증을 통해 진짜로 국민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를 선발해야 한다. 또 막연한 환상, 맹목적인 찬양, 기대감에 현혹돼 더 이상 헛발질 해선 안된다.  
반기문 때리기가 본격화됐다. 달리 말하면 검증의 시작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대권주자로 이미 각인됐다. 그가 어느 정당을 택할 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유력 후보로 올라 선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조국을 위해 내 한 몸 불사르겠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촛불바람에 주춤했던 그의 지지율도 꿈틀거리고 있다.
70대 중반의 그가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로 자리를 지키는 힘은 무엇일까.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상품가치 때문이다. 한낱 외교관에 불과했던 그가 한국인으로서 세계 대통령으로 불리는 유엔사무총장을 연임(10년)까지 한 것은 세계사에 남을 일이다. 필자가 50여년 전의 유엔사무총장 우탄트(3대·미얀마), 쿠르트 발트하임(4대·오스트리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도 그들의 이름이 교과서에 실린 때문이다. 유엔사무총장이라는 무게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반기문이라는 사람은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이미지만 강조됐지 그가 과연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능력과 자질, 도덕성을 갖췄는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그저 충청도에선 충청도 출신이 대통령 한번 하면 좋고, 보수쪽에선 마땅한 대항마가 없으니 보수진영 후보로 나서 줬으면 하는 바람이 반기문 몸값만 부풀려 놓았다.
반 총장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도입되기 전 외교통상부장관을 지내 재산공개 외에는 제대로 된 검증대를 거친 적이 없다. 그래서 그에겐 의외의 복병이 있을 수 있고 본격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 자신이 분명히 짚어야 할 대목은 23만 달러 수수설이다. 시사저널은 반 총장이 2005년 외교부장관 시절 박연차 전 태광실업회장으로부터 20만 달러, 2007년 1월 유엔사무총장 취임 축하 선물로 3만 달러 등 23만 달러를 수수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반 총장측은 사실무근으로 일축했지만 말로만 법적 대응을 밝혔을 뿐 아직까지 실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만약 반 총장이 공소시효를 이유로 확실하게 털어내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대통령 꿈은 깨야 한다. 왜냐하면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국민들은 외교관 출신이자 세계 대통령인 반 총장만큼은 다른 정치인보다 깨끗할 것이라고 믿고 있어서다.
오늘(28일)은 한·일간 위안부 문제 협상이 타결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반 총장은 박 대통령에게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 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국민정서와는 정반대로 갔다. 지금 거론되는 대권후보들 중 반 총장을 제외하곤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를 비롯한 많은 국민들은 ‘국가는 몸통이고 역사는 영혼인데, 단돈 100억 원에 민족의 영혼을 팔아먹었다’고 분개하고 있다. 이 역시 국민들은 반 총장의 확실한 입장을 듣고 싶어 한다.
반 총장은 유엔총회 결의안 11호 ‘사무총장은 퇴임후 모국의 정무직을 맡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과 공직선거법 제16조 1항의 ‘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 피선거권이 있다’고 하는데 대통령 자격 논란에 대한 명쾌한 해명도 내놓아야 한다. 또 유엔사무총장 자리를 안겨준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얼마나 지킬지도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클린턴 전 대통령은 “두 한국인(반기문 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격찬한 바 있다. 한국인의 자부심과 위상을 끌어 올리는데 기여한 반기문, 거목(巨木)이 될지 고목(古木)이 될지는 그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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