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택(전 제천교육장)

▲ 최성택(전 제천교육장)

요즈음 문화 융성이란 말이 부쩍 회자 하곤 했는데 문화융성이든 우리가 그렇게도 갈망하는 노벨상 수상이든 간에  모든 학문을 하려면 제대로 된 사전이 있어야 한다. 국어사전을 찾다보면 뜻이 너무 간단하거나 단편적이어서 큰 사전을 뒤져 봐도 신통치 않다. 이 희승, 양 주동 등등 누가 감수한 사전이나 천편일률적이다. 국어사전 외에도 옥편이나 영한사전, 백과사전 등 도 비슷한 양상이다. 은사님 중 국어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해방 후 100권 찍어낸 한글 사전을 그 후 모든 감수자, 출판사들이 그것을 베끼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어 문법책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명사는 이름에 관한 품사이고 동사는 움직임을 나타내는 품사인데 부정사는 무엇을 나타낸 품사일까 해서 영문법 책들을 다 찾아 봐도 그 뜻을 명료하게 정의한 책이 없었다. 어느 날 에센스 영한사전의 부록을 보니 예문을 들어서 설명 했는데 인칭, 수 또는 시제에 제한 (구애) 받지 않는 동사의 원형으로 쓰이는 것이라 되어 있다. 그렇다면 부정사 보다는 불구애사 또는 부제한사 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해방 후 처음에 영문법 책을 출판할 때 일본 출판사의 책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겼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쓴 저서 한권을 친구에게 주면서 졸작이지만 한번 읽어주면 영광이라고 했다. 그 친구는 책을 펴 보지도 않고 “이 책은 전부가 표절이다.”라고 해서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 이 책에 있는 말 다 사전에 있는 말이니 표절 아니야” 하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이 또한 사전의 중요성을 나타낸 유머다. 그런 점에서 영국의 ‘브리태니카 대백과 사전’ 은 30권이나 되는 분량도 대단하지만 단순히 용어의 정리만 내린 것이 아니라 그 말의 유래부터 그 용어와 관련된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 학문적, 문화적 배경이 있기에 노벨상 수상자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고 세계 금융의 허브가 런던 (금 시세도 런던 중심) 이며 브렉시트도 감행할 만큼 당당한 자부심을 가진 나라이다.  
 그런데 얘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글이 있어도 출판을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출판 업계는 매우 영세하고 출판 환경이 열악하다. 전자, 자동차, 철강, 조선, 건축, 석유화학 등의 산업은 장족의 발전을 하여 전자산업의 경우 세계적으로 선두그룹에 있는데 비해 출판업계는 답보 상태로 그 규모가 작고 사업 유지에 급급한 형편이다. 서점가에 문의하니 20∼30년 전 듣던 민중서관이나 을유문화사 같은 이름 있던 회사들은 겨우 명맥유지만 하고 있단다. 동아출판사를 두산그룹에서 인수하여 두산동아로 회사 이름을 바꾸고 의욕적인 경영을 하더니 타산이 안 맞는지 지금은 ‘미래N’ 이라는 인터넷 매체로 경영권을 넘겼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겐 5000년 역사에 1000여번의 크고 작은 외침을 당한 고난의 역사였지만 우리의 말을 잃지 않고,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한글을 지니고 있음은 우리가 문화대국이 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또 인쇄술도 일찌기 통일신라시대 이후 불교경전 보급과정에서 발전하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본으로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을 간행 하였고 이것은 고려 시대에 이어졌으며 목판인쇄의 한계와 금속 공예 기술의 발전에 따라 고려 고종21년 (1234년)에 ‘상경고금예문’ 50권을 금속활자로 찍었고 우왕3년(1337년)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은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본으로 찍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전기에는 계미자(癸未字, 1403년), 경자자(庚子字, 1420년) 갑인자 (甲寅字, 1434)등을 주조하면서 금속활자 인쇄술을 완성하여 유교문화 발전에 기여하였다. 우리의 금속활자 인쇄 (1234년)에 비해 서양에서는 독일 구텐베르그 의 금속활자가 1444년에 발명하였으니 210년이나 앞 선 것이다. 한 편 글자가 인쇄 될 종이에 관해서 2016년 12월16일자 신문에는 800년 전 ‘성 프란체스코 친필 기도문’ 이 우리나라 한지(韓紙) 로 다시 태어났다는 기사가 있다. 그동안 유럽의 종이 문화재 복원은 일본화지(和紙)가 99% 사용 되는 등 독식해 왔는데 한지의 내구성은 최대 8000년까지 지속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세계적인 종이 분석전문가 파올로 칼비니(69세) 베네치아 카 포스 카리대 명예교수가 발표했다.
 이제 우리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말과 한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발명한 금속활자인쇄, 그리고 8000년의 내구성을 자랑하는 한지의 3박자를 갖춘 바탕 위에 모든 학문과 문화의 기본이 되는 출판문화를 발전 시켜야 하며 이 일은 영세한 출판업계에만 맡겨 두지 말고  국가가 강력히 지원할 가장 중차대한 사업이다. 그리고 모든 학문의 필수조건인 제대로 된 사전 및 문법책의 발간과 국민 독서 진흥을 위한 정책을 모색해야 학문이 발전하고 문화교양이 고양될 것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