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과리 교수, 데버러 스미스 번역 분석

(동양일보)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영어판은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라기보다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가 일부 텍스트의 왜곡과 누락을 감행하며 새롭게 창작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과리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는 11일 열리는 '유영번역상 10주년 기념 번역 심포지엄'에서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가능한가'를 주제로 발표하며 스미스의 '채식주의자' 번역을 원문 및 다른 영역과 비교해 이렇게 분석한다.

    정 교수는 스미스의 첫 문단 번역이 주인공 영혜의 모습은 축약해 묘사한 반면 부사를 많이 사용해 인상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봤다.

    영혜를 묘사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부분을 번역하는 데 캐나다의 한국계 작가 자넷 홍은 32개 단어를 사용했지만 스미스는 14개 단어로 줄였다.

    반면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를 영어로 옮기면서는 'always', 'completely', 'in every way' 등 주관적 인상을 강조하는 부사를 세 개나 덧붙였다. 스미스의 번역을 한국어로 다시 옮겨보니 '아내가 채식주의자로 변하기 전, 나는 언제나 그녀를 모든 면에서 완전히 별 볼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로 원문과 차이가 났다.

    스미스는 'told me all I needed to know'(내가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I couldn't help but notice her shoes'(나는 그녀의 구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등 원문에 없는 대목을 추가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스미스의 이런 번역이 "영혜의 평범함을 아주 두드러진 특별함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평범함을 유별나고 강렬한 특징으로 만들었다"며 "이는 작가가 전혀 의도치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문의 영혜가 채식주의자로 자신을 드러내기 전까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스미스의 번역에서 영혜는 애초부터 특별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어 "작품을 충실히 전달했다기보다 얼마간 왜곡을 감행했다. 심지어 특정한 부분을 누락해서 작품을 훼손하기까지 했다"며 "이는 한강의 텍스트에 기대어 창조된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의 작품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미스의 번역이 "작품의 훼손을 통한 창조를 허용할 것인가, 허용한다면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한다며 "번역의 진위나 창작 여부를 가리고자 하는 게 아니라 번역이라는 매개 절차가 한국문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문제에 있어서 더 많은 고민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세대 상남경영관에서 유영학술재단 주최로 열리는 심포지엄에서는 데버러 스미스가 '배수아의 작품번역과 언어적인 무중력감', 서홍원 연세대 영문과 교수가 '번역을 통한 문화전파'를 주제로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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