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동양일보 상임이사)

그가 단을 내려서는데 왜 내 코끝이 찡해지는 걸까.
그가 “It‘s good to be home(집에 오니까 좋다)”을  말하는데 왜 내가 마음의 평안이 느껴질까.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8년 임기를 마무리하면서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서 ‘고별연설’을 했다.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대중연설을 하는 그 자리에는 전국에서 1만4000명의 관중이 모여들었고 그들은 ‘4년 더! 4년 더!’를 연호하며 떠나는 대통령에게 애정을 표했다.
임기를 마치는 오바마의 현재 인기는 55%. 낼 모레 백악관으로 들어 갈 트럼프의 지지도가 37%인 것에 비하면 오바마에게 보내는 미 국민의 애정은 놀라울 정도이다.
그가 취임 때부터 끝날 때까지 이렇게 시종일관 국민의 사랑을 받은 데는 이유가 있다. 일단 그는 군림하는 대통령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소박한 이웃처럼 국민에게 다가간 대통령이었다.
그를 기억하게 하는 모습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백악관에서 방송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중 손등에 앉은 파리를 낚아채어 잡고 득의의 미소를 짓는 모습이나, 백악관 직원 아이에게 키를 낮추고 자신의 머리를 만져보게 하는 모습, 때론 스파이더맨 차림을 한 아이 앞에서 쓰러지는 시늉도 해주고, 청소원과는 주먹을 맞대 인사를 한다. 상황실에서 빈라덴 사살을 지켜볼 땐 장성에게 자리를 내주고 자신은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타고난 달변가이다. 미국인들은 그의 한마디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2015년 봄이던가, 백인 청년의 총기 난사로 목숨을 잃은 흑인 목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오바마는 추모 연설을 하던 중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다. 영결식장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고 추도객 6000명도 모두 일어나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곳엔 백인 우월주의자의 혐오도, 눈물도 없었다. 분노와 좌절보다 희망과 감동으로 화합이 이뤄지는 순간을 만들었다. 오바마의 힘이었다. 이 사건을 두고 빌보드는 그를 ‘음악적 대통령’ 1위로 선정했다.
그러나 그가 더 강렬히 멋지게 기억되는 것은 연설보다 강한 침묵의 연설 때문이다.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 발생 후 오바마는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식에 참여해 추모연설을 했다. 그는 약 30분이 넘는 연설의 말미에 이번 사건으로 숨진 8살의 크리스티나 그린을 언급하면서 “나는 우리 민주주의가 크리스티나가 상상한 것과 같이 좋았으면 한다”고 말한 뒤 “우리 모두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말 이후 연설을 중단했고 감정을 추스르느라 침묵했다. 침묵의 시간은 51초나 계속됐다.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그리고 크리스티나보다 3개월 먼저 태어난 딸을 둔 아버지로서 진솔한 마음이 표출된 것이다. 그 51초 동안 미 국민은 딸을 잃은 부모의 심정으로 하나가 되었고, 이 51초간의 침묵은 미국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됐다.
고별연설에서 그는 “나는 당신들로부터 배웠다. 당신들이 나를 더 좋은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었다”며, “인생을 살아오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노력하면 비범한 일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적이 수없이 많다”며 단합을 호소했다.
그는 또 “변화를 이뤄내는 나의 능력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능력이라고 믿는다"고 말한 뒤 이어 대선 당시 구호인 "Yes we can(“우리는 할 수 있다).” “Yes we did(우리는 해냈다).”를 외치며 연설을 마무리 했다.
해피엔딩이다.
오바마의 고별연설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우리와 비교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 저렇게 멋진 고별연설을 하는 대통령을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던가. 부정과 비리, 레임덕으로 대통령의 마지막은 늘 씁쓸했다. 그리고 지금은 국민들의 분노 속에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탄핵이라는 절명 앞에 나라의 운명이 놓여져 있다. 이게 무슨 꼴인가.
그래서 모든 공을 국민에게 돌리고 아름답게 퇴장하는 오바마의 해피엔딩이 부러운 것이다. 안녕 오바마. 당신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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