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시인)

▲ 나기황(시인)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을 앞두고 있다. 세시풍속이 많이 바뀌었다곤 해도 설이 돌아오면 여전히 마음이 따뜻해지고 귀향길이 기다려진다. 반가운 가족들을 만나고 더러는 소원했던 관계를 돌아보면서 한 해를 살아갈 힘을 얻는 시간이기 때문이리라.
“까치까치 설날은...“으로 시작되는 노래만으로도 한껏 들떴던 어린 시절이 꿈처럼 아득하다. “무서웠던 아버지 순해지시고/우지우지 내 동생 울지 않아요// 이집저집 윷놀이 널 뛰는 소리/ 나는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4절인가, 재밌는 가사 때문에 설날이면 가끔 생각이 나는데 올 설은 배배꼬인 시국 때문에 그마저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1.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회를 거듭할수록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해지고 있다. 특검에 소환된 조 뭐시기는 어쩜 그렇게 싸가지가 바가지고, 억울하다고 소리치는 최순실의 뻔뻔함에 할 말을 잃었다며 흥분하는 사람들까지 조연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국회의원회관에 전시 된 ‘박근혜 풍자 누드화’ 파문까지 점입가경이지만 속은 한심하고 탈탈 털린 기분이다. 특검이 됐든, 탄핵이 됐든 하루빨리 ‘송액영복(送厄迎福)’의 묘수를 찾아야 할 시점이다.

#2. 뉴스 말미에 김영란 법 이후 달라진 설 대목 사진이 올라온다. 요즘 분위기를 대변하듯  재래시장을 찾아 북적대던 설맞이 고객들의 발걸음이 확연히 줄어든 모습이다.
예전 같으면 몇 겹으로 줄을 서던 유명백화점의 선물코너도 마찬가지다.
선물을 주고받는 상대나 내용보다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도 되는 가격대가 우선이 됐다. 굴비 대신 고등어로..., 한우대신 호주산으로 채우고 아예 포장지에 김영란 법이랑 무관하다고 ‘정(情)’표시를 붙이는 등 애를 써 봐도 좀체 닫힌 지갑이 열리지 않는다고 울상이다.

#3. 불 맞은 멧돼지처럼 날뛰고 있는 미 대통령 트럼프의 취임식 사진도 화제가 되고 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 때와 비교해서 군데군데 휑하니 비어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장면이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언론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맹비난을 하고 있는 트럼프를 상대로 미 언론은 ‘품위 없는 대통령’을 뽑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취임 후 그가 한 첫 번째 행보만 봐도 알 수 있다. ‘TPP탈퇴’와 ‘NAFTA재협상’ 그리고 각국과 맺은 ‘FTA’도 개별적으로 입맛에 맞게 손질을 하겠다는 것이다.
대놓고 무지막지한 ‘갑질’을 하겠다는 엄포다.
“미국의, 미국을 위한, 미국에 의한“ 미국 최우선주의를 위해 다른 나라야 아프든 말든 알 바 아니라는 선언이다. 

#4. 대선주자들의 행보도 어지럽긴 마찬가지다. 돌아가는 일정대로라면 ‘벚꽃대선’도 가능하겠지만 대선의 시기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두더지 게임처럼 불쑥 불쑥 고개를 내밀고 ‘나도 대통령 한 번’하고 이름표를 내미는 대선주자들의 면면이 헛웃음을 짓게 한다. 대통령 병에 걸린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번에야 말로 ‘준비된 대통령’이 절실한 상황인데 하나 같이 선거준비 말고는 준비된 대통령이 보이지 않아 걱정이다.
김영란법 이후로 달라진 설맞이 광경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장면이 묘하게 콜라보레이션을 이룬다. 잘못된 법안이 민생을 얼마나 어렵게 하는 지, 지도자를 잘못 선택한 결과가 얼마나 큰 국가적 불행인가를 시사하고 있다.
혼돈(chaos)의 바다에 낚시 대를 드리우고 눈 먼 고기라도 기다리는 심정으로 올 설 정국을 지켜봐야겠다. 낼 모레가 설이다.  ’무서웠던 아버지‘도 순해지시는 즐거운 명절이다.
해답도 없는 ‘썰’로 인해 ‘썰전(說戰)‘이 되지 않도록 이번 설에는 특히 ’썰‘을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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