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논설위원/중원대 교수)

▲ 김택(논설위원/중원대 교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어제 기자회견을 통해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반 전 총장은 1일 "정치 교체를 이루고 국가 통합을 이루려던 순수한 뜻을 접었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서 정치교체 명분은 실종되면서 저 개인과 가족의 명예에 상처를 남겼다”고 불만도 토로했다. 충청도 출신 대통령 대망론은 이처럼 신기루처럼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에게 지지했던 충북도민들의 허탈감은 더욱 컸을 것이다. 우리나라 외교부에 '반반(潘半)'과 '반반(反潘)'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반기문의 반만 해도 성공한다."는 말에 이어서 "반기문을 따라 하면 제 명(命)에 살지 못하니, 따라 할 생각 말라"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밑에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 협상을 했던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어떤 난관도 깊은 물처럼 헤쳐 나가는 지혜를 보여줬다"고 한 일간지는 보도했다. 그는 남다른 외교적 리더십과 카리스마가 있는 전형적인 관료였다.
20일전  혼돈의 한국을 건질 세계적 평화지도자 반기문의 금의환향은 나름대로 큰 의미를 가졌고 충청북도의 자존심을 살려주리라 기대가 많았었다. 반 전 총장은 3주전  귀국하면서 "국민과 국가를 위해 얼마든지 몸을 불사르겠다"는  포부를 천명하였고 국민들도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탁월한 경륜과 식견을 정치에 투영하리라 생각했다. 국민들도 개혁적 보수의 정치를 보여주리라 순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진흙탕 정치판에 상처와 상흔만 남기고 주저 않았다. 정치경험도 부족하지만 정치판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했다. 세계 총장으로서 세계대통령의 역할을 한 그가 민심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지도자로서 자질을 내보이지 못했다.
그는 외교가의 자질을 갖추고 있지만 별자리처럼 지나가는 성좌적 지도자로서 유연성을 발휘하는데 실패하였다. 그가 건강보수의 정치를 펼치지 못하고 불쏘시개역할에 불과한 것을 스스로 인식했을 것이다. 그가 정치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느꼈을 것이다. 정당지지도 없고 조직도 없고 돈이 없는 그가 단순히 총장경험하나가지고 대통령에 되리라고 보았다는 것은 나이브한 아쉬움만 남겼다. 한때 그는 지지율이 가장 높았지만 점점 갈수록 감소하고 기존 정당들의 배신으로 설자리를 잃어 버렸다. 우리나라 정당정치는 관료들의 경력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관료는 전문가적 기능인이다. 주어진 일에 책임과 법규를 완수하고 문서에 능한 자들이다. 정치는 그렇지 못하다. 생물이다. 주기도 하고 받기도하는 타협과 수렴의 프로세스에 능하다. 과거 고건총리도 낙마했다. 정치인은 기질이 있다.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니다. 건달과 같은 기질, 판단력과 언변, 리더십, 머리싸움 등 많은 능력을 요구한다. 쇼맨십도 있어야 한다. 국민들은 반기문과 같은 외교관이 정치판에 기웃거리며 지지율에 목멜 때 순진한 사람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정치는 정치 꾼이 하는 것인데 그가 관료로서만 쌓은 경륜을 난장판 정치계에는 맞지 않다는 것은 이미 예견됐다. 선거 전략이나 선거 참모도 야당에 비해 초라했다. 그의 실패는 또 다른 데 있다. 그는 정치의 사자후를 토하고 싶었지만 20여일 보인 그의 정치콘텐츠는 기성정치인들에게 공격만 당했다. 대통합을 주장하고 정치교체를 말했지만 국민들에게는 먹혀들지 않고 국민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다. 어느 당을 갈지도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모습도 그렇고 정치이념도 불확실하였다. 또한 그가 충북정서에만 기대는 듯한 모습에 실망했다. 충청도에서 조차 야당 정치인이 지지율이 높다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건가?  지금 조기대선이 치러진다면 야당의 문재인씨가 당선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본다. 그러나 국민들은 야당의 분열이나 갈등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느 국회의원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대통령의 누드사진합성을 국회에 게재하여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수권정당임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선진화가 되길 기대했던 국민들의 간절한 염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극단적 반목과 증오만 앞세우고 미래비젼을 보이지 않고 있는 야권은 이제 더 고민하고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국민들이 지지할 것이다. 혼란과 혼돈의 한국의 현실에서 국가를 바르게 하고 국민의 삶을 이해하고 국민과 함께 가는 정치를 보여주지 못하면 정권교체는 요원하다고 본다. 반 총장이 퇴장하면서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어떠한 방법으로든 헌신하겠다"는 교훈을 되새겨서 새 정치를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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