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동양일보 상임이사)

▲ 유영선(동양일보 상임이사)

우연한 자리에서 민속학자 김영진 박사의 타계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최근 그 분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에 죄송하고 마음이 아팠다. 지인에게 수소문해본 결과 지난해 추석, 소화가 안돼 병원에 입원했는데 이미 손을 쓸 수가 없을 정도로 위암이 악화돼 있었단다. 김 박사가 떠난 것은 10월말. 그렇게 우리 곁에 살아있던 한 거대한 문화재가 사라진 것이다.
문득 기억의 한때가 생각났다. 30년도 더 지난 80년대 무렵의 일이다. 지역문화운동을 벌인답시고 몇몇 사람들과 밤마다 머리를 맞대고 소소한 일을 벌였던 그 시절, 김영진 박사는 최고의 히로인이었다.
청주대박물관장으로 중원미륵리사지를 발굴하고 이어 85년 흥덕사지를 발굴하면서 나온 금고(金鼓)에서 ‘청주목흥덕사’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 청주가 ‘직지’의 인쇄터였다는 것을 알고 흥분했었다. 직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때, 그는 그 사실을 언론과 학계에 알리느라 분주했다.
민간문화원을 만들어 보자고 들떴을 때도 그 무렵이었다. 우리 몇 사람은 매달 청주시내 북문로 한 빌딩 지하 공간에서 예술인을 초대해 토크를 곁들인 문화행사를 열었는데, 김 박사는 ‘우리 시대 무속이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연 시민토크의 좌장을 맡았다. 요즘에야 토크콘서트니 열린 공간이니 하는 단어들이 일상화됐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행사가 생소한 시절이었다.
홍보라고 해야 대학가에 포스터 몇 장 붙이고, 단체들에 엽서를 통한 광고만 했을 뿐이었는데 주제가 색달라서인지 그날 행사에는 무려 120여명이나 되는 관객들이 몰려와 의자를 치우고 바닥과 계단에까지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 소동을 벌였다.
무대 위로 초대된 사람들은 지역에서 실제로 활동을 하고 있는 무속인들이었다. 그들은 오래 전부터 무속에 대한 연구를 해온 김 박사와의 교감으로 선뜻 사람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김 박사의 계획에 따라 다양한 무속인들이 초대됐다. 집안대대로 내려온 세습무(世襲巫), 갑자기 신이 내린 강신무(降神巫), 그리고 혼자 산속에서 공부해 무속인이 된 독학무(獨學巫) 등 각기 다른 길을 통해 무속인이 된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영매자로서의 삶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작두타기를 직접 눈 앞에서 펼쳐보인 것이다. 물을 가득 채운 물동이 위에 쌍 날의 작두를 얹고 강신무가 맨발로 올라섰을 때 그 섬뜩하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후 김 박사의 모습은 주로 민속문화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이 시대가 가면 영원히 사라져버릴 것이라며 민속예술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무형문화재를 기록하는 일에 천착해 ‘살아있는 민속박물관’이라고 불렸다.
그렇게 열정적인 삶을 살던 그는 정년퇴임 후 슬그머니 사라지더니 청원군 옥화대 강가에 외딴집을 짓고 혼자 산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동양일보는 그를 찾아 ‘빨간 모자를 쓴 별난 교수’란 제목의 인터뷰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근황을 알려주었었다. 그것이 그새 수 년 전 일이다. 그리고 바쁜 일상에 묻혀 잊고 지냈다.
옥화대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솔숲을 스치는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노학자는 여전히 우리지역 무형문화재를 기록하는 원고를 쓰며 편안하게 지내고 계시리라 생각했다. 어느 날 지인 몇사람과 깜짝스런 방문으로 반가운 해후를 하리라 맘도 먹었었다. 그런데 그렇게 빨리 소식도 없이 떠나실 줄 몰랐다. 부고를 전하지 않아 빈소도 쓸쓸했다 한다.
늘 해학넘치는 유머로 웃음을 주던 김 박사는 아마 가실 때도 ‘늬놈들이 안 찾아서 나 심심해서 간다’고 뇌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이 좋지 않다. 세상을 위해 치열하게 산 학자를 너무 외롭고 쓸쓸하게 보냈다.
나이가 들면서 한분 두분 가까이 지내던 분들이 세상을 뜨는 것을 보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가 지척인 것을 느낀다. 어제도 세상을 뜬 분의 빈소에 다녀왔다. 또 누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떠나 영면의 길로 떠날지 모른다. 준비도 없이 인사도 없이 갑자기 헤어지는 것은 섭섭하다. 주변에 소중한 어른들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찾아보고 마음을 나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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