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택(전 제천교육장)

▲ 최성택(전 제천교육장)

 “송암! 내가 학륜 수좌하고 산책을 하다가 진달래가 만발한 꽃밭을 보았어. 어떻게나 야단스럽게 피었는지 흔치 않은 광경이야 지금 와서 한번 보렴.” “스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가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요 일이 많거든요 내일이면 좋겠습니다.” “ 내일이면 늦으리! 오늘이어야 해”스님의 목소리엔 천진한 소년 같은 정감이 배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리라 마음먹었다. 외출옷을 챙겨 입으면서 얼핏 생각하니 진달래 꽃구경을 혼자만 가는 것이 미안했다. ‘이 특별한 기회를 나 혼자 누리지 말고 절 식구들에게 권해봐야지’그러면서 사무실로 내려가 스님이 진달래 꽃구경 하라고 초청 했다는 말을 전했다. 마침 합창단이 내려와 있다가 “와”하고 달려들었다. “우리도 같이 가요” 그 날은 합창 연습이 있는 날이었고 마침 연습이 끝날 무렵이었다. 덕분에 꽃구경 일행이 대폭 늘어나서 우리는 모두 버스를 타고 가게 되었다.
 스님은 벌써 절 밖까지 나와 있었다. 보현사 언덕에 서서 그 긴 목을 늘여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봄꽃이란 게 하루하루 빛깔이 다르거든 그래서 굳이 오늘 오라고 한 거야” 스님은 우리를 데리고 앞장서서 꽃구경을 나섰다. 진달래꽃이 인정사정없이 마구 피어 있는 꽃 언덕에 도달했을 때 스님이 뒤돌아서서 따라오는 법우들에게 미리 다짐을 해 두었다. “ 여러분! 입을 크게 벌리지 말아요. 나중에 다물어지지 않아요. 그럼 나 책임 못 져요.” 그 말씀과 표정이 어찌나 재미있고 우스운지 다들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무척 드문 일 이었다. 꽃이 좋다고 소임 살이 하는 상좌를 불러서 꽃구경 시킨 일이 내 기억에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다. 진달래꽃으로 보여 준 스님의 법문, 도피안사 주변 산야에 핀 진달래 빛이 정말이지 하루하루 달라지는 걸 볼 때마다 어디선가“내일이면 늦으리!”하는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그래서 지금도 “내일이면 늦으리!”하는 스님의 말씀을 화두처럼 받들고 있다.

 위에 소개한 글은 송암 지원 스님이 쓴 광덕스님 시봉일기 ‘내일이면 늦으리’ 의 일부를 소개한 것이다. 송암 지원은 범어사에서 광덕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법호와 전법보리수를 받아 수은법제자(受恩法弟子)가 되었으며 시봉일기란 마치 부모님을 모시듯 정성을 다해 모신 것을 기록한 것으로 스승 밑에서의 공부가 너무 좋았고 스승 방 청소하는 것 까지도 신 났다고 한다.
 윗글에서 ‘지금’은 단순한 시간의 문제가 아닌 그 이상의 문제이다. 사람들은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무슨 일인가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해야 할 일의 중요도에 따라 성공과 실패, 그리고 성공의 정도가 결정된다고 본다. 배구 경기 중계방송을 보면 중요한 고비에서 감독이 부른 작전타임으로 전세를 역전 시킨 것을 보면서  ‘지금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광덕 스님은 “내일이면 늦으리 오늘이어야 해. 불교 공부는 저돌적으로 해야 돼 참선을 하든지, 염불을 하든지, 어떤 수행이라도 저돌적으로 해야 성공할 수 있어. 수행하다 공부 방향을 정했으면 산돼지처럼 앞만 보고 달려야 진정 공부가 되는 법이야 ” 라고 하면서 지금 하기로 했으면 정진하라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 말속에는 일할시기(지금)와 일하는 방법까지 알려 준 ‘선택과 집중’이 잘 표현 된 가르침이다.
 한편 “왜 사느냐” 고 물으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서울역 가는 길을 물으면 잘 가르쳐준다는 어느 성직자의 말과 어느 퇴직자에게 “무엇으로 소일 하느냐?” 고 물었을 때 “백수과로사(白手過勞死) 라더니 하는 일 없이  바쁩니다.” 는 말은 일의 목표와 내용이 중요함을 이른 말이다.
 최 순실 사태로 인한 대통령의 탄핵과 반대, 국회에서 벌어지는 실속 없고 속보이는 논쟁, 그리고 탄핵이 인용 될 때 앞당겨질 대통령 선거를 전제로 벌이는 대권 행보들을 보면 우리의 정치? 경제와 주변국들의 정세가 우리에게 너무도 위험하고 불안하다. 항상 우리에게 거만하고 뻔뻔한 일본, 대한민국을 자기들의 역사 속에서 한 지역으로 편입시키려는 중국, 우리나라 보다는 북한과 가까운 러시아, 우리의 맹방인줄만 알았던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부르짖고, 머리에 핵폭탄을 이고 사는 듯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북한을 생각하면 위정자들은 “내일이면 늦으리. 지금이어야 해” 를 되새길 때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