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양 서방이 청대문집에서 4년간 머슴으로 살았다. 1.4후퇴 때 피란 내려와서다. 올 때는 애가 둘(8살 5살)이었는데 이 집에서 둘을 더 낳았다. 셋째가 딸이고 다 아들이다. 그런데 이 중 끝둥이(이제 더 안 낳겠다고 끝둥이라 불렀다)가 세 살을 갓 지나면서 맞은 하리아드랫날이다. 이 날은 음력 이월초하룻날을 이르는 말로, 농가에서는 이날, 주인은 머슴들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머슴들은 풍물을 치고 노래와 춤으로 하루를 즐긴다. 이제 본격적인 농사철에 대비하는 몸 풀이행사다. 이날, 양 서방이 하루를 잘 즐기고 얼굴이 불콰한 상태로 주인을 뵙자하더니, “주인님, 저 인제 그만 고향으로 갈랍니다. 비탈밭 따비로 일군 땅이지만 그래도 내 땅이니께, 우리 내외가 일군거니께….” 하고 말끝을 흐리며 콧물만 빠뜨리곤 흐느적흐느적 나가는 거였다.

“고향으루 갈려는 모양이지요?” “그런가 보오.” “이제 일철이 곧 닥쳐오는데 큰일이네. 봄일이나 해주구 가지.” “고향에 일궈놨다는 따비밭 손봐 농사짓자면 미리 가서 준비해야겄제.” 이튿날 양 서방이 또 주인을 찾아왔다. “어제는 송구스럽게두 취중이라….” “그래 언제 갈려구 그래요?” “예, 마음먹은 거니께 일간이래두 가야겠쥬. 근데….” “여기 걱정은 말구 맘 편히 얘기하우.” “근데, 두 어른께 황당한 부탁의 말씀이라….” “우리 두 내우 괜찮으니께 말해보우. 부탁이라니?” “저기요, 우리 끝둥이를 거두어 주십사 하구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즈이가 애가 넷이잖습니까요 이 중에 끝엣놈을 맡아 주십사 하구요.” “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즈이 형편에 넷을 거느리자면 아무래도 벅찹니다. 물론 주인어른네도 자녀들이 여럿이지만서두 그래두 우리보다는 형편이 많이 나으시니까 막냉이 하나 더 둔심 치시구 받아주시면 해서요.” “아무리 그래두 그렇지 사람의 도리가…” “인두겁을 쓰고는 차마 못할 일이지요. 하지만 즈이는 아들이 둘이나 더 있는데다 당장 고향으로 가서 일을 꾸리자면 즈이 형편으로는 끝 놈이 아무래도….” “거추장스럽고 무리라는 건가요?” “아니 꼭 그렇다는 것 보담두, 여하튼 그렇게 해주신다면 절대로 나중에 딴소리하지 않겠습니다.” “딴소리라니요?” “도로 되돌려 달라느니, 다시 와서 찾아간다느니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아주 하냥다짐을 하겠습니다.” “아니, ‘하냥다짐’이라는 게 무슨 뜻의 말인 줄은 알아요?” “예, ‘일이 잘 되지 않을 때에는 목을 베어도 좋다는 다짐’이잖어요. 그러니까 제가 나중에 딴소리할 때에는 그 어떤 조치도 달게 받겠다고 맹세를 하겠다는 거지요. 그리고 어젯밤에 안 사람과 의논해서 끝둥이 이름도 아주 ‘하냥’이라 지었습니다. ‘하냥다짐’ 하는 ‘하냥’으루요.” “허허!” 확고한 양 서방의 결심의 말에 주인은 나중에 다시 말해보자 하고 일단 보냈고, 가족들과 의논 끝에 이튿날 그리 하기로 결정했다. 양 서방이 떠나는 날 주인은, 두고 간 하냥이가 그립거나 형편이 바뀌면 언제든지 와서 데려가도 좋다고 했다.

새로 생긴 막냉이에 온 가족이 정성을 들이니 하냥이가 무럭무럭 자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러기까지 하냥인 세 살적까지의 긴가민가한 생가가족의 기억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이 주인집 가족이 제 가족으로 알고 있었다. 주인집이나 동네사람들도 하냥이의 가족에 대한 비밀을 일언반구도 발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주인집 가족 어느 누구도 눈치 챌 만한 차별화라든가 층하의 낌새를 추호도 보이지 않고 가족일원으로의 대우를 똑같이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냥이 중학교 3학년 15살 때 양 서방이 주인집을 찾아온 것이다. 하냥이 두고 간지 12년만이다. 하냥일 데려가려고 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인이, 언제든지 와서 데려가도 좋다고 했다는 걸 내세웠다. 주인은 눈을 감았다. 난감한 일이다. 인제 내 자식과 똑같이 정이 들대로 들었다. 섣불리 내놓아서도 안 되고 내놓을 수도 없다.

그래도 주인은 양 서방에게 조용히 말했다. “하냥이의 의향을 들어보세!” 하여 하냥일 불러놓고 양 서방이 저간의 내력을 얘기하고, 이제 형편이 피었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러자 하냥이가 벌떡 일어났다. “안 갑니다. 저는 이집 자식입니다. 놓고 갈 땐 언제고 데려가겠다는 건 뭡니까? 하냥다짐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제 이름이 ‘하냥’이 아닙니까? 저라도 끝까지 제 이름을 지키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그리곤 눈물을 훔치며 방을 뛰쳐나갔다. 하여 양 서방이 하릴없이 돌아갔다.

그 하냥양반 올해 예순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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