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영 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동양일보)드디어 오늘이다. 지난 해 연말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결정된 후 피를 말리는 시간을 거쳐 드디어 오늘 오전 11시 헌재가 선고를 하는 것이다.

국가의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이겨내야할지 국민들이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동안 광장은 새로운 소통의 마당이 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촛불과 태극기로 대립이 되면서 국론이 양분됐다.

최근 ‘공터에서’라는 소설집을 펴낸 소설가 김훈 씨는 “역사의 하중을 견딜 수 없어 바깥을 떠도는 인간을 그렸다”고 소설 집필의도를 밝히면서 자신의 위치를 관찰자로 표현했다. 그는 최근의 광화문 시위 모습에 대해 “태극기, 성조기, 십자가. 이것이 내가 어렸을 때 전개됐던 반공의 패턴과 똑같이 전개되고 있다”며 “내가 참 너무 오래 산 것 아닌가...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모르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피하지 않고 사실을 말했다. “최근 지인들로부터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에 함께 가자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감기에 걸렸다며 거절했죠. 그때 저는 감기에 걸려 있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혼자 광장을 찾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대가 공회전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를 외치지는 않았지만, 또는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을 외치진 않았지만, 광장에 나서지 않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 소설가처럼 관찰자인 이들도 많으리라.

김훈 씨는 이번 소설 제목을 ‘공터에서’로 정한 것은 “역사적인 구조물이나 시대가 안착할 만한 건물이 들어서지 않은 땅, 나의 아버지가 살아온 시대, 앞으로 뭔가를 지어야 할 공간이 바로 공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 오늘 헌재의 선고가 있은 후면, 우리는 그 공터에서 새로운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관찰자라는 표현과는 약간 다른 느낌의 단어로 갤러리(gallery)가 있다.

갤러리는 ‘극장의 맨 위층 관람석’이나 미술품을 전시한 ‘화랑’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지칭할 땐 ‘일반 대중’이나 ‘관객, 구경꾼’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구경꾼이란 연극이나 오페라 등의 관객과는 다른, 줄 밖에서 경기나 회의를 지켜보는 구경꾼을 말한다. 그래서 골프대회의 관람객이나 의회의 방청객을 갤러리라 부르는 것이다.

관찰자와 갤러리의 차이는 ‘의지’가 있고 없음의 차이이다. 관찰자를 ‘사물의 현상이나 동태 따위를 주의하여 잘 살펴보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갤러리는 ‘어떤 것에 흥미나 관심을 가지고 보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까 관찰자는 주인의 마음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 살펴보는 행위자이지만, 갤러리는 결코 주인이 아니다. 언제나 돌아가는 것을 구경만 하는 사람들이다. 관심이 있을 때는 머물러 있지만 관심이 사라지면 지체없이 그 자리를 떠난다.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두고서도 마찬가지이다. 관찰자이기 보단 의식없는 갤러리들이 너무 많다.

어느 학자가 생각의 단계를 정리한 것을 보면, 첫 번째 단계는 무관심 혹은 무지(無知)수준. 전쟁이건, 개각을 하건, 기름값이 오르건 나와 무슨 상관이랴하며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수준이고, 두 번째는 흑백논리 수준. 내편이 아니면 무조건 적군이며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 이러한 상황에서는 화해와 협력이란 불가능하며, 서로 죽고 죽이며 살아가는 수준이다. 세 번째 단계는 수평적 상대주의 수준. 너도 옳고 나도 옳다고 주장하는 수준으로 더 중요하거나 옳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양성만 있지 위아래가 없고 위계질서가 없어 혼란스럽게 살아가는 수준이라고 한다.

네 번째는 수직적 상대주의 수준. 세상은 수평적으로 매우 다양할 뿐만 아니라 수준의 차이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수준이다. 옳고 그름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고, 사람의 생각에도 수준 차가 있으므로 특정 분야나 영역에서 자신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는 것을 포함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는 흔히 말하는 도통함의 경지로, 깨달음 수준이다.

이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것은 무관심의 단계, 바로 갤러리 삶이다. 내 일이 아니니까, 관심이 없으니까 식으로 선 밖에서 서성인다면 우리 사회는 퇴보할 수 밖에 없다.

역사를 새로 쓰는 이 날, 우리는 갤러리가 아닌 역사를 지켜보는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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