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농인 복지환경을 위한 수어콘서트 개최

 

(동양일보 조아라 기자) “저는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농인 부모를 둔 청인 자녀)입니다. 어린 시절, 기초수급을 유지하기 위해 저는 부모님 대신 동사무소를 방문해 부모님의 경제 사정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단칸방에서 지내며 월세를 못 낼 때는 집주인에게 형편이 어려워 다음에 내겠다고 했고요. 자꾸 고장 나는 보일러 수리비가 부담돼 결국 보일러 없이 몇 해 동안 겨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성인이 되고난 후에야 집주인에게 수리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보살핌이 필요했던 시기에 오히려 저는 부모님을 책임지고 대변자가 돼야 했습니다. 이러한 코다들을 위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안만기 충주시수화통역센터 수어통역사)”

말소리 없는 토크콘서트가 시작됐다. 5일 오후 1시 충북종합사회복지센터 대회의실에서 열린 ‘충북 농인 복지환경을 위한 수어콘서트’는 오직 수어(수화)로만 진행됐다. 농인, 구화인, 코다, 수화통역사들이 패널로 나섰고 청인(청력의 소실이 거의 없는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앱과 스크린을 통한 실시간 자막 통역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농인들은 수어를 언어로 인정해 달라고 몸짓으로 절박하게 이야기했고, 참석자들은 ‘반짝반짝’ 율동을 하듯 두 손을 들어 흔드는 수어 박수로 마음을 담은 지지를 보냈다.

충북종합사회복지센터와 한국농아인협회 충북협회가 공동 주최한 이날 수어콘서트는 안영회 서초구수화통역센터장(나사렛대 수화통역학과 교수)의 사회로 이루어졌다. 최금단(충주시수화통역센터 농통역사)·박경순(보은군수화통역센터 농통역사)·안만기·김학겸(진천군수화통역센터 수어통역사)씨가 토론자로 참여해 ‘우리가 마음을 열지 않는 이유’를 주제로 농인의 인권과 복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토론자들은 농인을 위한 ‘최고의 복지는 수어’라고 강조했다.

김학겸씨는 “수어를 통한 의사소통의 지원은 농인들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키워드”라며 “모든 사람이 수어가 가능하다면 더 이상 청각장애가 장애가 아닌 세상이 올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수화언어법 제정 이후 충북의 현황과 개선 방향도 화두가 됐다. 2016년 2월 제정된 이 법은 1장 1조에서 ‘한국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수화언어법 제정 이후 대전, 세종, 전북, 전주, 서울, 경기, 광주 등에서는 수어 활성화 지원에 관한 조례가 만들어졌다.

최금단씨는 “충북은 법 제정 이후 큰 변화가 없는 상황이다. 특수학교에 다니던 학창 시절 선생님 중 대부분이 수어를 못해 공부할 때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습득했었다”며 “농인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농교육 현장에 수어통역사 자격증을 보유한 교사가 늘어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안만기씨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모든 일을 해결해야한다는 부담감을 가진 코다들을 위한 정서적 지원이 필요하다”며 “최소한 교육 분야만큼이라도 농인 부모님, 코다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별도의 수어통역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농인들의 수어 습득 방안 마련과 제도 정비, 수어통역 관련 전문 인력 양성의 필요성 등도 제기됐다.

박경순씨는 “많은 농인들이 정규교육을 받지 못해 한국수어는 물론 한글도 배우지 못해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어렵다”며 “한국수화언어법이 유명무실한 법이 되지 않기 위해 다양한 경로로 수어 보급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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