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신성대 교수)

▲ 신기원(신성대 교수)

탤런트 차인표가 찍은 배우 김영애의 마지막영상을 보면 인생이란 결국 ‘어떻게 견딜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에는 진통제로 버티지만 촬영이 있는 날은 연기를 위해 진통제를 맞지 않았다는 자막이 김영애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드러나게 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배우로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그녀의 모습은 일상에 지친 우리로 하여금 신선한 감동을 느끼게 하였다.
 청소년시절 ‘어떻게 살 것인가’가 화두였다. 하지만 살아보니 ‘어떻게 견딜 것인가’가 더 중요했다. 청운의 꿈을 꾸고 희망도 품었지만 앞길이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불안하기만 했던 청춘시절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명제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었다. 그런데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길러보니 일상은 어느덧 매일 매일의 반복이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단조롭게 지나가는 시간을 잘 견디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실 각자의 삶을 살펴보면 별반 차이가 없다. 누구나 태어나면 죽어야 한다. 무엇을 먹는가가 다르지 하루 세끼 식사를 한다는 것도 비슷하다. 생활하기 위해 직업을 가져야 하고 자식을 낳으면 부모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도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나의 삶은 과거 선조들이 무수히 반복해왔던 삶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늘 같은 생활양식으로 사는 것은 아니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의 삶이란 이처럼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혹자는 인간의 굴레라는 표현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신이 죽은 사회에 남은 것은 인간이다. 인간다운 삶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다. 나는 내 삶의 주인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나는 이 세상에 우연히 태어났지만 자신의 존재가 필연적인 것처럼 살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할 수 있다. 우리는 각자 실존해야 할 당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세 종류의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먼저 낙타형을 들 수 있다. 낙타형은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인가 아니면 지상으로 초대를 받은 존재인가. 이러한 전제는 우리를 슬프게 하기도 하고 때론 우리를 기쁘게 하기도 한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해결해야 할 많은 짐이 있다. 그중에는 물질적인 것도 있고 정신적인 것도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무겁게 느끼고 거부하는 사람은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겠지만 자신을 짓누르는 짐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감내하는 사람들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둘째 사자형을 들 수 있다. 사자는 포효하는 동물이다. 따라서 사자형은 다른 사람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자기주장을 기꺼이 한다. 이들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용기가 있다. 기존의 가치나 관습 또는 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부정의 힘도 사자에게서 나온다. 사자는 시험에 삶을 걸고 모험에 몸을 맡긴다. 낙타가 타인이 강요하는 짐을 진다면 사자는 스스로 질수 있는 짐을 만들어 낸다. 이런 점에서 내 짐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낙타라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사자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어린아이를 들 수 있다. 니체는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하지만 망각을 할 줄 알고 세상살이를 유희로 받아들인다고 하였다. 잃어버릴 줄 알아야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고 삶을 놀이로 받아들여야 인생살이가 가벼워질 수 있다. 한 사람의 가벼운 삶이 결코 그 사람의 인생을 가볍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의미있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삶 자체가 가벼워야 한다. 정신적 혹은 물리적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가벼워야 하기 때문이다.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인생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견디는 능력도 길러질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삶은 살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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