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선 (시인)

▲ 노창선 (시인)

  그 것이 내게로 왔다. 정말로 작은 생(生). 한 몸 가득 물탱크가 되어. 좋아. 봄이니까. 너도 생명의 싹을 틔우는구나. 아니다. 내가 모르고 한 소리다. 그 녀석의 고향은 사막이다. 봄이든 여름이든 계절은 상관없었을 것이다. 물속만 아니면 하나 떨어진 잎에서도 뿌리가 자라고 모래 속에 생명을 박는다. 그리고 며칠 후 들여다보면 아주 작디작은 얼굴을 내민다. 그 것이 다육식물의 정체다. 요즘 그 쪼꼬만 친구들에게 정신줄을 놓았다. 그들이 사는 사막 한가운데가 삶에 지친 나의 마음이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이자 공간이다.
  오래전 친구에게서 선물을 받았던 백동백이 올봄에는 수많은 꽃을 피웠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하다가 봄이 왔다. 꽃을 바라보면서 그 친구가 고맙고 하얀 꽃을 가득 달고 있는 동백나무도 고맙고 오래된 아파트의 넓은 베란다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에는 수십 년 된 문주란을 친정 부모님이 물려주셨다. 승용차 뒷좌석 바닥에 구겨 넣듯이 옮겨와서 잎이 꺾어지기도 하였으나 겨울을 잘 나고 새 잎이 건장하게 솟구쳤다. 문을 열어놓아도 따뜻하기만 한 어느 날 옆구리에서 총탄 같은 모습으로 꽃대가 미어터져 나왔다. 여리디 여린 것이 너무도 충격적으로 내 가슴을 겨누고 있었다. 고맙다. 잘 살아줘서. 나는 중얼거리면서 며칠을 지냈다. 은은한 향기의 꽃은 참 특이하게 생기기도 하였다. 그것을 꽃이라고 해야 하나?  대여섯 송이가 다투어 피다가 한 철이 갔다. 화분은 엄청나게도 컸지만 바퀴 달린 받침대에 얹어놓고 발로 슬슬 밀고 다녀도 될 만큼 만만하기만 하였다. 나의 베란다는 어머니의 그것과 닮아 있다. 대부분 새싹들을 분양 받아 키운 것이거나 물려받은 것들이다.
  나는 게으르고 바쁘다는 핑계로 화초들을 잘 돌보지 못한다. 내 손에 들어 왔다가는 죽어나가기 일쑤였다. 무슨 변덕으로 화원 앞을 지나다가 작은 선인장 몇 분을 사가지고 온 적이 있었다. 햇볕이 쏟아지는 콘크리트 바닥에 던져 놓고는 또 잊고 지냈다. 어느 날 보니 화분 가득 새끼를 치고 또 치고. 이제는 화분 밖으로 뛰쳐나올 기세였다. 아이들 아빠가 가끔 물을 부어 주었단다. 그다지 식물들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인데 나무 화분들에게도 자주 물을 주고는 했단다. 무슨 꽃나무인가 물어 보면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럼 왜 물을 주었느냐 했더니 살아 있는 것인데 어떻게 죽는 모양을 볼 수 있겠느냐는 대답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인간이든 그로부터 죽음을 예견하는 일은 마음의 큰 짐이 된다. 그 무게는 평생 가는 것일 터이다.
  연구실의 책꽂이를 다루기 쉽게 하기 위해 목재소에 가서 아름드리 소나무를 널빤지로 켜달라고 해 벽돌을 고여 사용했다.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흘러 굳어진 송진에서는 아직도 진득한 솔향기가 난다. 붉은 빛의 수입목이었는데 오랜 시간이 흘러 원산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을 베란다에 가져다 놓고 다육이를 몇 점 사다 올려놓으니 제격이다. 중국 관광객들이 줄면서 가격도 착해져서 감사할 따름이다.
  인터넷으로 식물도 사고파는 시절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 얘기를 듣고 믿기지 않았다. 배달되는 동안 목마르지는 않을까. 아예 말라죽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많아서 시도하기가 어려웠다. 나무도 인터넷으로 고르고 택배로 받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그런 일은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좀 더 비싸더라도 나무시장을 기웃거리고는 했다. 그러나 다육이의 생태는 좀 달랐다. 몸이 비들비들 마르고 잎이 시들거릴 때가 되어서야 물을 주면 되는 것이었다. 대충 한 달에 한 번 정도라니 자신감이 생겼다. 오래전 선인장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때는 친구들에게 분양까지 해주지 않았던가. 무심하고 게으른 나에게 가까이 하기에는 적격인 존재들이다.
  공부를 해가면서 주문한 몇 가지 친구들이 도착했다. 천천히 들여다보던 나는 눈을 의심했다. 작은 모종 아래 전혀 다른 개체의 잎이 누어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1mm도 안 되는 이름 모를 생물의 작은 얼굴이 돋아 있었다. 들어보니 뿌리도 제법 자라 있었다. 손끝에서 생명의 기운이 전신으로 퍼지면서 정신이 퍼뜩 들었다. 십위지목 시생여얼(十圍之木 始生如蘖). 열 아름드리 대부등나무도 싹이 틀 때는 산나물과 같았다 했지? 나는 첫인사를 했다. 잘해 보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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