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한국폴리텍대 청주캠퍼스 학장)

▲ 이현수(한국폴리텍대 청주캠퍼스 학장)

교육은 세상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 교육을 통해 모두가 행복하고 평등한 사회는 실현 가능할 테제일까? 교육부와 통계청의 발표대로라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사교육비 격차가 8배 이상까지 벌어지는 ‘교육 양극화’가 날로 심화되는 현실에서 정상적인 공교육은 애시 당초 불가능한 것은 아닐까? 교육은 사회를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자칫 사회적 신분을 고착화시키기도 한다면 우리는 이제 교육을 통한 성장담론을 재논의 해야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유교적 이념에 사로잡혀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선언적 미사어구로 2017년 교육의 불평등을 방기해야하는 것일까?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최근 몇 해 동안 정치권과 기업들이 발표한 일자리 약속, 규모의 합이 오천만 인구수보다 많다는 사실은 난센스다. 그래서인지 “청년 일자리를 얼마만큼 창출하겠다”라는 식의 선언적 구호가 혹세무민의 정형화된 정치적 구호일 수 있다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청년문제에는 당장의 일자리 숫자보다 ‘교육복지’라는 거시적 관점이 편재되길 바란다. 고용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이 시민의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가 아닌 ‘해야만 된다’가 곧 들어설 새 정부의 교육복지 기조가 되길 바란다. 이를 기대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민주국가에서 복지국가로의 접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경제우선의 산업화에서 정치적 민주화로, 그리고 다시 복지국가로의 역사적 변동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체적인 국가의 흐름이다. 지난 정부에서 생산적 복지가 한국적 복지국가 구축을 위해 주목할 만한 시도였다면 역사에서 비약이 없듯이 생산적 복지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성찰로 교육복지에 대한 새로운 국가모델이 모색되어야 한다. 고용의제가 사회문제로 확대된 지금처럼 더 없이 좋은 시기는 없을 것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청년기 또한 그만큼 길어졌다. 그에 따른 교육기간도 연동되어져야한다. 진정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교육복지 지출확대라는 사회적 함의를 도출하는 것이 우리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고령사회를 극복해내기 위한 혜안이 될 것이다. 따져보자. 그 어떤 복지보다 경제성장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교육복지 아닌가. 모든 사람이 교육을 받는 것만큼 생산성과 소비성을 도드라지게 하는 복지가 어디 있는가? 문제는 교육의 효율성일 뿐이다.
실타래처럼 얽힌 교육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과 복지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로로 따지고 들면 현재의 고용빙하기를 녹여낼 온기 없는 소모성 정책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교육은 국가의 책무이며 시민의 권리이다. 그러하기에 굳건한 사회적 공동가치를 기반으로 한다. 교육복지에 대한 모든 문제가 예산부족 때문이라는 식의 수줍은 변명의 저간에는 우리사회의 관심이 여전히 증세에 대한 부담 때문 아니었던가. 그러나 나라와 민족을 부강하기 위해 낼 것은 내야한다. 그것도 시민의 책무이다. 냉정히 보자. 코앞에 직면한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여 인공지능의 확산으로 가장 타격을 받는 계층은 저임금, 저숙련 노동의 저학력 노동자들일 거라는 해외 각국의 공신력있는 기관들의 전망은 교육복지에 대한 절박성의 또 다른 정합성 논리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생산자동화는 저학력 노동자와 고학력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를 증가시켜서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은 타당한 예측이지 않은가. 이제는 국가가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산업을 지원하던 지출 이상을 시민들의 일상을 지키는 데 투자해줘야 한다. 그 중심에 교육복지가 있다. 청년을 위한 등록금 인하가 교육복지이며, 불안정 고용에 직면한 장년을 위한 직업교육이 교육복지이다.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에 대한 취업교육이 교육복지의 전형이다. 엄혹한 학력중심 사회에서 기술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2년제 산업학사 청년교육에 대한 국가의 배려는 더 확대되어야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폴리텍 대학이 국가로부터 고용기금을 지원받는 이유는 이윤이 아닌 교육복지를 구현하기 때문 아니던가.

돌아보면 선거 때마다 복지 이슈가 지닌 득표의 파괴력을 체험한 각 정당들은 그간 무상보육, 무상교육, 반값등록금의 정책으로 크게 다퉈왔고 사회적 논의들을 확대해왔다.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의 날선 대립각은 언제나 우리사회의 논쟁거리였다. 그러나 교육복지는 시혜가 아닌 나라의 의무이며 성장 동력이라는 절대가치에는 각 정당들의 이견이 없지 않은가. 교육복지 확대를 위해 우리 사회가 ‘세금을 왜 더 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된 해답은 없다. 그러나 국가가 교육복지에 재정지출을 늘리지 않는다면 교육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어 사회는 균형을 잃을 것이다. 넘어지기 전에 국가도 시민도 낼 건 내자.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