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길 <전 괴산군의원·전 괴산 문인협회장>

아카시아가 지고 이렇게 밤꽃이 피기 시작하면 1960년대 초 내 나이 겨우 열 두 세 살 때 생각이 난다.

그 당시는 산밤나무가 모두 땔감으로 잘려 나갔고 부잣집 밭에만 몇 그루씩 밤을 딸 목적으로 기르고 있었다. 밤나무 주인은 밤이 익기 전부터 누가 따 가지 못하도록 멀찌감치 서서 지키고 있다.

그러나 알밤이 빠지기 시작하면 우리 꼬맹이들은 두세 명 씩 모여 새벽 일찍이 엉금엉금 기어서 밤나무 밑으로 간다.

밤 담을 마땅한 그릇마저 없어 바가지를 들고 오는 놈에 그냥 털레털레 와서 런닝셔츠 앞을 한손으로 치켜들고 주워 담는 놈에… 각양각색이었다.

매일같이 우리들은 재미를 보았기 때문에 주인아저씨가 우리보다 먼저 밤나무 밑에 와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을 모르고 그날도 어김없이 살금살금 어둠을 헤치고 이슬을 밟으면서 그중 제일 크고 알밤이 많이 빠지는 밤나무 밑으로 다가 갔을 때 큰소리로 “요놈들!” 하고 밤도둑을 잡았다며 미리 갖고 있던 나뭇가지로 사정없이 우리들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도망도 갈수 없이 얻어맞고 모두 다 훌쩍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남의 것 인 줄 알면서도 몰래 알밤을 주워 온 것은 분명히 잘못이었다.

그렇지만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그 밤나무 주인은 우리 동네에서 몇 번째 안가는 땅 많은 부자고 인삼농사까지 하면서 잘 사는 집이었다. 우리는 그분을 호랑이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 호랑이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딸만 낳게 되어 뒤늦게 작은 부인을 얻었을 때 큰 부인이 시샘을 하여 먼저 아들을 낳았는데 우리는 5학년 6학년들인데 이제 겨우 1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그 집 일꾼들이 학교까지 업어다주기도 하고 하루 종일 그 집 식구들이 신경을 쓰고 있었던 아이의 이름은 이경우였다.

밤 서리하다 들켜 실컷 두들겨 맞은 우리는 학교 마당에 모여 새벽 사건이야기를 하다 내가 제안을 했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대낮에 모여 아예 그 밤을 몽땅 털어버리자는 것이다. 모두가 가당치 않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은 내가 다 책임질 테니 무조건 그릇가지고 나만 따라와라 했다. 그래도 애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승낙을 쾌히 하지 않았다.

“야 밤 털다 호랑이 할아버지가 올라오면 나만 두고 다들 밤 가지고 도망쳐 그러면 될 거 아냐!” 하였더니 그제 서야 세환이, 홍권이, 호연이, 그리고 호랑이 할아버지의 친척이 되는 상정이도 동의를 하여 뻔히 보이는 백주 대낮에 밤을 털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호랑이 할아버지가 소리소리 지르며 올라오고 있었다. 큼직한 나무작대기도 하나 들고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다가왔다.

나는 친구들에게 내가 다 책임 질테니 꼼짝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때리려 달려드는 호랑이 할아버지를 그냥 그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호랑이 할아버지는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너희들 왜이러니 하면서 “오늘 아침에 맞았다고 분풀이 하는 거냐! 그 밤 다 내놔라!” 하셨다.

그때 내가 호랑이 할아버지를 향해서 “할아버지! 이 밤나무 누구네 꺼에요?” “우리 꺼지!” “그럼 할아버지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오늘 학교에서요. 저 아래 동네 애들이 할아버지 아들 경우를 마구 때리려 했는데 우리가 달려들어 막아서서 맞지 않았는데 우리 아니었으면 반은 죽었을 걸요. 그리고 나서 경우가 고맙다고 우리 밤 형들이 다 따먹어도 된다고 해서 주인한테 허락받고 좀 따먹는데 뭐가 그렇게 잘못 된 것인가요”하며 투덜댔으나 허사였다.

우리가 턴 밤을 모두 호랑이 할아버지에게 쏟아주고(빼앗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호랑이 할아버지 친척인 상정이가 찾아와서 우리 모두 호랑이 할아버지네 집으로 오라는 파발이었다. 가자, 말자를 반복하다가 그래 또 맞을 각오로 가자를 선택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호랑이 할아버지네 대문간으로 들어섰다.

호랑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우리를 반가워하며 어서 와라 대청마루를 가리키며 저리로 올라가라 하였다. 찢어진 고무신에 흙이 너덜너덜한 우리는 그 깨끗한 대청마루를 올라갈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찐빵과 삶은 밤을 가득 가져와서 올라가 먹으라고 하셨다.

우리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빵과 찐 밤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고 있는데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그래 고맙다 밤이고 대추고 다 따먹어라. 그 대신 우리 경우는 너희들이 잘 지켜줘야 한다. 응! 알았지?” “네, 네, 네, 알았습니다” 나는 지금도 가끔씩 그 호랑이 할아버지 자식 사랑의 깊은 뜻을 생각하며 혼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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