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 희(논설위원/침례신학대 교수)

(동양일보) 엽총사고? 낼이 마당질인데 물오리를 잡아다 일꾼들 볶아준다고 나가는데 조카가 따라온거지. 나보다 두 살 더 먹었는데. 무심천 건너 장자늪이 있었어. 그 장자늪 전설이 있어. 중이 시주를 하러 어느 집에를 갔더니 소 오양을 치다가 그걸 시주라고 담아주더란다. 며느리가 그걸 보고 시주를 좀 줬더니 시집에서 누가 그걸 주랬느냐고 귀쌈을 올려붙였거던. 그래 중이 그걸 보고 그 며느리더러 뒤를 돌아보지 말고 따라 오라고 해서 따라가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흙탕물에 집이 흔적도 없이 잠긴겨.

장자늪이 평평한 데 있었는데 물이 엄청 깊어진거지. 그러면서 장자못이 되고. 그 장자늪에는 마름 풀이 많었어. 마름풀을 요렇게 들으면 꽁지에 마름이 달려서 그걸 걷어다 따먹고는 했는데 그게 껍질을 까면 맛이 좋았어.

거기 뚝방 밑에서 막걸리를 한 대접 먹으려고 주막에 들어갔는데 조카가 제가 물오리를 잡아온다고 추썩이는데 잡기는 뭘 하느냐고 드시근도 안했지. 구석댕이 세워논 총을 들고 나가는데 소용없다고 했어. 총에 총알이 없었으니. 막걸리를 마시는데 갑자기 탕 소리가 나는데 예감이 일이 났구나 싶어. 얼른 허리에 찬 탄띠를 보니 등 뒤쪽 실탄 자리가 비인거라. 엎드리면 뒤에서 빼기가 쉬우니 몰래 빼간거지. 그래 가보니 여섯 살짜리 애가 다리를 벌리고 있는 데 허벅지를 총알이 스쳐간겨. 피는 철철 흐르는데 허벅지를 묶어놓고 상옥이는 제 손만 만지작거리고. 아이고, 십이오철 산탄인데. 술집 주인한테 시내 가서 택시를 잡아달랬더니 택시를 가져와서 애를 신직수 내과에 입원을 시켰지. 의사가 핀셋으로 총알을 찾아서 꺼내고 무릎을 쳐보고 하더니 한참 있다가 다행히 신경을 안건드렸다고. 두 달간을 치료하고 엉덩이 살을 뜯어다가 수술을 했지. 무지하고 인정 많은 할머니가 간호를 하면서 애가 아프다면 달래느라고 과자며 뭐를 그 옆에서 있는 대로 사다 나르고. 병원비며 뭐며.

저녁에 사고가 나고 다음 날 아침이 되니까 그 때는 내가 제조창에 다닐 땐데 바로 형사가 들이닥쳐서 총기 사고 냈느냐고. 그래 조카는 잡혀갔고 재판을 받게 됐는데, 시내 다방에서 차를 마시는데 마침 조카를 재판한 판사가 거기 있어. 그래 인사를 했지, 며칠 전에 총기사고를 낸 아무개라니까 생각이 난다고 해. 그 판사는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기를 버리고 후처를 얻어나갔는데 고등학교 때 서울로 잘 사는 아버지를 찾아간 모냥이여. 거기서 천대를 받고 공부해서 판사가 됐다는 말이 있었지. 그 사람한테 엽총 주인이라고 사정을 말했더니 오일 육 이후고 나라가 어수선하다고 재판을 기다리라고 해. 상옥이는 재판 뒤 풀려났어. 그 때 논을 네 마지기 또 세마지기 이렇게 일곱 마지기를 팔었지.

사랑 큰 방에 누워있는데 아버지가 손에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오셨어. 나도 지금은 손에 수전증이 좀 있는데 아버지가 수전증이 있으니까 잔에 술을 부어주시는데 딱딱 소리가 나는데. 아버지가 술을 부어주시면서 마셔라 그래서 받아 마시는데 아휴. 아버지가 패가 뒤에는 망신이 온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하시는데 무릎을 꿇었지. 아부지 죄송합니다 눈물을 줄줄 흘리고. 아버지는 삼사동네에서 주중군자라고 했어. 술을 잡수시면 걸음은 비틀대도 갓을 붙들고 걸으셨지. 그래 어째 그러시냐고 갓을 붙들고 걸으면 걸음이 더 불편하실텐데 하면 갓은 정신 같은 거라고, 정신이 비뚤어지면 몸은 더 비뚤어진다고 하셨지.

참 아버지 속을 많이 썩여 드렸어. 그래도 험한 말씀을 한 마디 않으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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