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UPDATED. 2018-11-14 21:31 (수)
동양에세이-큰 오빠
동양에세이-큰 오빠
  • 김경순
  • 승인 2017.06.08 2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경순 <수필가>

10년도 더 되었을 것이다. 그 친구에게 연락이 온 것이. 그동안 고향을 오가곤 했을 터인데도 연락을 하지 않던 친구였다. 그런데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한 것일까. 읍내의 작은 카페에서 마주 앉은 우리는 서로의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사람의 현재의 모습은 지나온 자신의 삶의 결과라고 했다. 예전의 작고 귀여웠던 친구는 여전히 나이가 들었음에도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참 편안한 모습이다. 나는 친구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서로를 바라다보았다. 내 속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친구는 얘기를 시작했다. 나이가 드니 친구가 그리워 고향 읍내에서 살고 있는 나를 찾게 되었다고 했다.

어릴 적 그 친구의 집은 우리 집 과는 지척이었다. 키도 작고 겁도 많았던 그 친구는 자신이 집에 들어가는 것까지 지켜봐 주길 바랐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 집 대문에 서서 친구가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나도 집으로 들어가곤 했었다. 지나간 세월만큼이나 우리는 할 이야기가 많았다. 친구는 문득, 우리 큰오빠 소식을 물었다. 우리 큰오빠가 궁금하고 보고 싶다고 했다. 내가 중학생일 때 우리 큰오빠는 내 친구들에게는 우상이었다.

그 시절 시골에는 학원도 없었을 때였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4년제 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한 우리 큰오빠는 ‘개천의 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우리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기에 그 위상은 더 했다. 나는 오빠덕분인지 다른 과목은 성적이 좋지 못했어도 수학만큼은 그래도 꽤 괜찮은 편이었다. 어떻게 시작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빠는 내가 중학생일 때 마을 회관에서 중 고등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었다. 오빠는 내 친구들에게도 우상이었지만 우리 집에서도 아버지역할까지도 도맡아 했던 가장 아닌 가장이었다.

밖으로만 돌던 아버지를 대신해 큰오빠는 나와 작은오빠에게 얼마나 엄하게 대했는지 모른다. 큰오빠보다도 위였던 언니도 오빠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다. 한번은 엄마가 동네 남정네와 다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때 큰오빠가 중학생이었다고 했다. 큰오빠는 농기구를 들고 가서 그 아저씨에게 얼마나 무섭게 대들던지 동네 사람들이 나서서 말렸다고 한다. 오빠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아버지가 없는 집안의 장남으로서 우리들에게는 아버지의 역할과 더불어 엄마에게는 자신이 지켜드려야 한다는 중압감은 말로 다 표현도 못했을 것이다. 오빠는 공부도 언제나 1등만 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큰오빠는 자랑이었다. 또한 아들이기 전에 남편이기도 했다. 몇 년 전 치매로 돌아가신 어머니는 당신의 머릿속에 아버지도 지우고 딸도 지우셨지만 큰오빠만은 남기 신 채 가신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커 보이고 무서워 보였던 오빠도 이제는 작고 순한 아저씨가 되어 있다. 아내 앞에서 큰소리도 치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예전의 그 오빠가 맞나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친구에게는 차마 큰오빠가 순한 아저씨가 되었다는 소리는 하지 못했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 큰오빠는 그 친구의 가슴속에서라도 멋지고 당당한 우리들의 우상으로 남아있길 바라는 내 작은 소망이기 때문이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충청대로 103 (율량동)
  • 대표전화 : 043)218-7117
  • 팩스 : 043)218-7447,7557
  • 창간 : 1991-12-29
  • 제보전화 : 043)218-722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원중
  • 명칭 : 동양일보
  • 제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 등록번호 : 충북 가 00003
  • 등록일 : 1991-12-27
  • 발행일 : 1991-12-27
  • 회장 : 조철호
  • 발행/인쇄인 : 유영선
  • 편집인 겸 편집국장 : 김영이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ynews@dy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