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택 (전 제천교육장)

 

(동양일보) 선구자하면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로 시작되는 노래가 생각난다. 남보다 앞서서 깨달은 사람, 어느 시대에도 선각자로서 사회개혁에 몸을 내던지는 이가 있었다.

선각자의 어원과 유래를 보면 “하늘은 이 세상에 사람을 낳을 때 앞서 진리를 터득한 자가 뒤늦은 자들의 자각을 촉구 하도록 하였다. 나는 ‘선각자’ 이다. 나는 지금 요순의 도로서 백성을 깨우칠 작정이다. 이를 할 수 있는 자는 나를 두고 달리 없다.” 이것은 맹자가 이윤(伊尹)의 말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윤은 농촌에 은거하여 고요히 은둔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탕왕(은 왕조의 시조) 이 그를 청했으나 그는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삼재사 초청함에 마음이 움직여 마침내 세상에 나가 일할 마음이 생겼다. 위의 말은 그 때에 이윤이 한 말이다. 그리하여 그는 탕왕을 도와 포악한 하(夏)나라의 걸왕(桀王)을 쳐부수고 은나라 왕조를 크게 열었다. “ 나는 선각자이다” 이러한 자각은 또한 맹자 자신의 것이기도 했다. 이 자각에 의하여 그는 감연히 논적과 맞섰고 또 남에게 굴하지 않으며 제후(諸侯)들에게 자기 이론을 설득해 갔던 것이다.

세월은 흘러 먼 훗날 근대 ‘ 중국 혁명의 아버지’라 불리는 손문(孫文)은 그의 저서 ‘삼민주의( 三民主義)’ 에서 선지선각(先知先覺) 후지후각(後知後覺)이란 말을 썼다. 손문은 모든 인간을 선지선각, 후지후각, 부지불각(不知不覺)의 세 종류로 분류했다. ‘선지선각’ 은 발기인, ‘후지후각’ 은 신진가, ‘부지불각’ 은 실천가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 건축에 비유하면 각각 설계기사, 도목수, 일반목수라고나 할까, 이 삼자가 협력해야만 정치개혁이 가능하다고 손문은 설득하고 있다.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국력이 강해진 서구 열강들이 아세아 각국을 점령하여 식민지로 삼을 때 이웃나라 일본은 남보다 일찍 깨달은 선각자와 생각이나 일에서 그 시대의 남보다 앞선 선구자가 있어 서구 열강에 지배당하지 않고 일찍이 문호를 개방하여 그들과 교류하여 동양에서 가장 앞선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조선과 만주를 침략하여 주권을 빼앗아 통치하더니 이른바 대동아전쟁 ( 미국, 영국, 중국 등 연합국과의 사이에 발생한 태평양 전쟁에 대한 일본 정부의 호칭) 을 일으키기에 이른다. 일본은 당시 메이지 정부뿐 아니라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 근대화가 진행 되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중점적으로 서구화한 것이 교육 분야로 1871년 문부성을 설치하고 1872년 프랑스 제도를 모방한 학제를 공포하여 전국에 2만여 소학교를 설립하여 근대적 학교 교육이 급속히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전문 교육과정으로 1877년에 도쿄대학을 설립하였으며 소학교 교원 양성기관인 사범학교와 여자학교, 산업학교도 생겨났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1868년 후쿠자와유키치 가 세운 게이오(慶應義塾) 대학과 1875년 니이치마조의 도시샤(同志社) 대학, 1882년에 오쿠마시게부의 도쿄전문학교(1902년에 와세다 대학으로 개칭)등 특색 있는 사립학교도 세워졌다. 종교계, 학계 등 여러 방면의 변화가 있었으며 그 중에도 게이오 대학 설립, 강연과 신문, 서적 간행 등을 통한 변혁에 앞장선 후쿠자와유키지의 선각자적 혜안과 선구자적 활동이 일본 근대화에 가장 공로가 크며 그런 연유로 일본의 고액권인 1만 엔 권 지폐에는 그의 얼굴이 들어있다. 일본은 그 동안 백제의 문명을 받아들인 후진국이었으나 메이지유신을 거치면서 후쿠자와유키치를 비롯한 선각자들의 공로로 선진화 되었으며 2차 대전 패전국임에도 폐허 속에 부흥하여 세계 상위권의 부국이 되었고 노벨 수상자가 20여명이 넘으며 그것도 과학 분야의 수상자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같은 시기 우리나라와 청나라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도 선각자가 없어 파벌들의 권력다툼과 부패로 나라를 잃었다. 지금도 우리는 분야마다 선각자적인 각성과 시대나 남보다 앞선 선구자적 실천에 옮기는 이 없이 실속 없는 분쟁에 빠져 “손톱 밑에 가시 드는 줄은 알아도 염통 밑에 쉬 쓰는 줄은 모르고 있다.”

유명한 국문학자이자 시인이며 고시가 주석가인 양 주동 박사는 “사람은 각자 자기마다의 상투를 가지고 있다 그 상투를 일찍 발견한 사람을 선구자라 한다.” 는 선구자론 을 말하였다. 개인이든 국가이든 상투(낡은 생각, 버려야 할 구습 등)가 없는지 살펴보고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롭고 합리적인 것으로 바꿔야 할 위기이자 기회임을 깨닫고 개혁해야 아름다운 금수강산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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