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재벌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재계의 ‘관치경제’ 부활 우려를 불식시킨 최근 며칠간 경제사령탑의 행보는 일단 성공적인 듯하다.
‘경제검찰’이라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에 학자 겸 시민운동가인 김상조 위원장이 취임하자 재계는 긴장 그 자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위원장은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대기업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재벌 저격수’로 불려 왔다. 
그러나 취임 후 김 위원장의 태도는 예상과 달랐다. 김 위원장은 지난 23일 취임 후 4대 그룹 전문경영인들과 가진 첫 간담회에서 ‘대기업은 한국경제를 이룩한 놀라운 성공의 증거이자 미래의 자산’이라며 스스로의 변화와 모범적 사례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사전 규제와 법률을 만들어 기업의 경영판단에 부담을 주거나 행정력을 동원해 기업을 제재하지 않을 것이란 김 위원장의 말에 4대 그룹 전문경영인들은 한숨을 돌렸다.
김 위원장의 제안으로 마련된 간담회에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하현회 ㈜LG 사장과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이 참석했다.
공정거래위원장이 재벌그룹 경영인과 이런 만남을 가진 것은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의 백용호 위원장 이후 처음이다. 간담회를 끝내고 나온 재계 인사들도 대체로 밝은 표정이었다고 한다. 대기업의 전근대적 지배구조, 내부 거래,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 관행의 해결 방안을 놓고 비교적 진솔한 대화가 이뤄진 듯하다.
하지만 이날 간담회는 대화 내용보다 그 분위기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 같다. 참석자들이 김 위원장한테 일방적인 요구사항만 들은 게 아니라 강압적이지 않은 분위기에서 비교적 솔직히 대화했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새 정부의 인수위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에 대해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잖다.
정부 부처를 짓눌러 무리하게 시장에 개입하는 ‘관치경제’의 부활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동통신업계의 반발을 사고 있는 통신료 인하 방안이 대표적이다.
반면 ‘경제 검찰’ 공정위의 사령탑을 맡은 김 위원장은 오히려 원만하고 합리적인 접근으로 재계의 경계심을 푸는 데 성공한 듯하다.
앞서 지난 21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경제 현안 논의를 위한 간담회를 가졌다. 눈길을 끄는 것은 김 부총리가 정부의 경제 사령탑이란 당연한 사실을 이 간담회에서 재확인했다.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된 청와대 정책실장이 새 정부에서 부활하자 경제 정책의 주도권을 누가 갖게 될지를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의구심이 쌓이면 시장에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데 이날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됐다.
정부가 기업을 손안에 쥐고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 시대 흐름에 전혀 맞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4대 그룹이면 세계를 무대로 뛰는 글로벌기업이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 투자 확대 등에서 기업의 협조를 당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책 및 인허가 권한을 무기로 강제하려 해선 안 된다. 그렇게 해선 기업의 진정한 협조를 구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김 위원장과 4대 그룹의 첫 간담회는 새 정부가 지향해야 할 기업 협력의 모범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또 경제사령탑의 서열을 자연스럽게 정리해 불확실성으로 인한 혼란을 줄여준 것도 하나의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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