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논설위원/강동대 교수)

(이동희 논설위원/강동대 교수) 장마철의 날씨는 여우비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다. 좁은 한반도 이지만 국지성 호우로 달포 전 우리 충북지역에도 300mm라는 물 폭탄이 쏟아져 사상 최악의 물난리를 겪었다. 그래서 청주시와 괴산군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다. 하지만 보은 증평 진천 지역의 장맛비도 만만치 않게 내려 커다란 수해 피해를 보았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충주지역에도 많은 비가 내렸으며 괴산댐의 방류로 남한강 지류인 달천강 수위가 상당히 올라갔다. 충주댐 또한 엄청난 빗물과 장마에 떠밀려 내려온 산더미 같은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런가 하면 물이라는 것은 작은 물방울 하나는 하찮아 보이지만 이것이 모이면 핵폭탄보다도 더 무서운 재앙을 가져온다. 충주지역에는 충주댐 하류로 달천강이 흐르며 충주시를 여러 개의 다리로 연결시켜 준다. 그런데 다리 난간에 특이한 현수막이 붙여 있어 지나가는 운전자의 시선을 끈다. “뛰어 내릴 용기가 있다면 뛰어 오르세요!”라고 적혀 있다. 이는 충북 충주소방서가 투신자살이 빈번한 탄금대교와 탄금교, 목행대교와 목행교, 충원교, 목계대교 등 6곳에 자살예방 차원에서 12개의 현수막을 걸어 놓은 것이다. 이는 자살하는 이에게 뛰어내릴 용기로 뛰어올라 열심히 살라는 것이다. 죽을 각오로 이 세상을 산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대도 자살률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는 현대인의 쫒기고 경쟁하는 사회의 병폐현상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이다. 즉 이 세상을 거꾸로 생각하자 라는 매우 의미심장한 말로 바꾸어 새겨들으면 아무리 힘든 삶도 행복한 삶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힘들고 찌든 삶이지만 오늘의 삶에 용기를 갖고 뛰어오르는 삶을 살아보자!

자살의 어원은 라틴어의 Sui(자기 자신)와 cædo(죽이다)의 합성어이다. 자살이란 원인이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당사자의 자유의사(自由意思)에 의하여 목숨을 끊는 행위를 말한다. 자살의 원인은 복잡하고 파악하기 어렵지만 통계에 의하면 신경쇠약 실연 병고 생활고 가정불화 장래고민 사업실패 염세(厭世)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염세 병고 신경쇠약 실연 가정불화가 두드러지게 많으며 남녀별로는 남자는 신경쇠약 병고 여자는 가정불화 실연이 많다. 연령대는 청소년은 실연 염세 노인은 병고가 많으며 20~30대에는 가정불화가 많다. 자살 원인은 자살기수자(自殺旣遂者)의 유서나 가족의 증언 미수자의 진술 등으로 파악하나 매우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자살을 모든 일의 해결책이라고 믿으나 매우 무책임한 행동이다. 본인은 모든 것이 끝나 속 시원할지 모르나 가족과 지인에게는 평생 짊어져야 할 무거운 상처를 남긴다. 만에 하나 성공하지 못하면 심각한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이 남는다. 살아서 앞으로 해야 할 수많은 일과 경험이 스트레스로 밀려오고 대인관계시의 어려움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더욱이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자살의 재 시도는 막아야 한다. 자살은 문제 해결이 아니고 중도 포기이다. 인생은 살아보지 않으면 어떻게 변화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로 희극일지? 비극일지? 주연일지? 조연일지는 살아봐야 아는 것이 인생이지 않을 까 한다.

모 대학의 한 의대 교수께서 질문을 하였다. 정신과와 다른 과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은 무엇인가? 그러자 대부분 학생들은 정신과는 미친 사람이 오고 다른 과에는 멀쩡한 사람이 온다. 혹은 정신과는 마음을 치료하고 다른 과는 몸을 치료 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교수께서 일반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살려 주세요'라고 도움을 청하러 오고 정신과는 '죽고 싶다'고 찾아오는 환자의 지향점이 180도 다르다고 명답을 하였다. 자살은 결코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니고 그저 우리 삶 앞에 놓인 길을 용기가 없어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떤 길이 펼쳐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의 의지가 명확하다면 나의 길을 내가 원하는 대로 바꾸어 새로운 방향의 삶을 살 수 있다. 벼랑 끝에서 삶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제도 사회 타인의 변화가 아니고 나의 마음의 변화 이다.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지 않을 용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용기는 우리의 모든 것을 바꿀 수도 있다. 한번 뿐인 인생 이 세상에 태어나 뛰어내릴 용기가 있다면 뛰어 올라 멋지게 사는 것도 멋진 인생이다. 더군다나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했다. 부모가 물려준 육신의 터럭 하나도 소중하니 내 몸을 귀하게 여기고 보살피며 건강하게 살다가 편히 가는 것인 멋지고 행복한 삶이지 않나 싶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