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 신기원(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시인 안도현은 연어에게서 강물냄새가 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인간에게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 아니 인간은 어떤 냄새를 풍겨야 하는 것일까. 초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이런 생각을 하면 꼭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오래전 읽었던 글의 주인공이다. 그 당시 그는 주 교황청대사를 지내고 한 대학의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34년간의 외교부 공직자생활을 청산하고 환갑을 맞이한 해인 2004년 12월 어느 날 느닷없이 열병처럼 퍼진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서울에서 구례까지 도보행진(?)을 시작하였다. 아침 9시에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하루 30㎞정도 걸어 만 11일 만에 고향인 구례에 도착하였다. 태어나서 열여섯 되던 봄까지 지냈던 고향에 대한 추억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그는 역전 부근 여관에서 타향에서 온 손님처럼 하룻밤을 묵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귀경열차에서 그는 서울행 야간열차로 무작정 상경했던 시절의 암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래, 인생길엔 왕도란 없지. 쉬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 되는 거야’를 중얼거렸다.
 그 글을 읽으며 필자는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린 初老의 紳士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고위공직자로 생활해서 모든 여건이 제법 갖춰지고 본인이 편하게 살려고만 하면 충분히 대접받고 安分知足할 입장에 있는 그가 ‘왜 그런 생뚱맞은 짓을 했을까?’라는 것이 필자의 의문이었다. 성스런 생활들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던 바티칸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먹이 감을 찾아 헤매는 카인의 후예들이 아우성치는 한국 땅에서 적응하기 어려웠던 때문일까? ‘세상에 별일이 다 있다!’ 라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충격과 혼돈에 휩싸여 세속적인 생각을 거듭하는 동안 문득 인생은 이렇게 진지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편하고 쉬운 것을 찾아 나설 때 간혹 어려운 가운데서도 고집스럽게 원칙을 지키고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삶은 한 여름 따가운 햇살 아래 힘들어 할 때 불어오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처럼 우리에게 청량감을 안겨준다. 나는 그렇게 못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진실한 삶을 살기에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그 사람의 도보행진을 읽으며 필자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필자도 대학교 4학년 때 친구 및 후배들과 함께 대전에서 왜관에 있는 수도원까지 도보로 순례를 하기로 하였었다. 무모하게 시작된 그 순례행진은 옥천을 지나고 영동에 이르기 전 필자의 발에 물집이 심하게 생겨 결국 버스행진(?)으로 마무리 되었다. 젊은 시절에 치기어린 마음으로 시작됐던 도보행진도 결국 하룻밤을 지나고 나서 무산됐었는데 환갑노인이 십여 일간 도보행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것은 나에게 경이롭게만 느껴졌다.
 필자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아서 사는 것만큼 행복한 삶은 없다’라고 가르친다. 또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그것은 최상의 삶이다’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인생이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해답은 쉽게 나온다. 과연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에 찌든 사회가 아닌 민주주의가 꽃 핀 사회에서는 개성있고 다양한 삶의 방식들이 존재한다. 또 사람들은 그런 삶을 즐기고 있다. 선진사회에서는 주관적이고 획일적인 사고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도 않고 상대방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일상생활을 한다. 필자는 우리 사회도 이제 그런 사회로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신있게 사는 사람들 그리고 인생의 반환점에서도 쉬지 않고 걷는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은 살만하고 아름다운 것 같다. 그런 사람에게서도 강물냄새가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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