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시인)

 

(시인 이석우) 들판에 벼 익는 소리가 들린다. 봄 가뭄에 신음하던 들판이 언제 그랬느냐 싶게 물난리를 겪었다. 제초제를 좋아는 주인을 만난 논들은 여지없이 논둑이 터져 버렸다. 논둑을 깎는 대신 제초제를 뿌린 탓에 그 세찬 빗줄기를 견딜 수 없었다. 그래도 어쩌거나 농부들은 터진 논둑을 메우며 가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나의 어머니는 늘 들판에 사셨다. 논둑에 흙을 올리고 삽으로 물을 바르면 윤이 났다. 어쩌면 그렇게 반들반들 윤이 났을까. 그리고 내 어머니는 못자리에 병아리 같은 모를 키우시는 것이었다. 논둑에 구멍을 내고 논둑 콩을 넣으면 푸르고 푸른 것들은 가을로 성큼 다가와 우리들의 양식이 되곤 하였다.

어머니도 없이 / 들판에서 벼가 익는다 // 통통한 수수목 / 살찐 참새 / 들판에 고추잠자리가 떴다 // 오래 전에 어머니를 보고 / 이제 힘에 부치는 농사일은 물리시라고 / 말하지 못했다 // 그래야 사는 것이어서 /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 냇가에 주저앉아 / 돌멩이 부딪혀 앞산을 울리면 / 앞산은 연신 돌아와 / 나를 울렸다 // 어느 날 / 내게 돌아와 우는 / 앞산 소리의 뜻을 알게 되었을 때 // 어머니는 / 이미 들판을 떠나 / 산소리가 되셨다. 졸시 <후회> 모두.

어머니도 없이 들판에서 벼가 익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도 불구하고 벼가 통통하게 여물고 있었다. 이 충격에서 이 시는 시작되었다.

들판에 벼 익는 소리가 들린다. 논둑 저만치 달개비 꽃이 푸르게 피어 있다. 남쪽 바다의 쪽빛보다 푸르고 청사초롱 푸름 만큼이나 푸르고 푸른 달개비 꽃이 피어난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밭에 있는 달개비는 잡풀이지만 논둑가의 달개비는 꽃이라고. 여름을 이기고 가을 하늘의 푸름을 꽃잎에 올리고 있는 저 빛의 영혼은 무얼까. 벼 익는 소리를 들으며 달개비 꽃을 보면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하게 가난했던 그날들이 생각난다. 그 날들의 한 가운데 어머님이 게셨다.

어머니는 힘든 농사일을 계속해서는 안 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으셨지만 손길이 필요한 들녘을 외면하지 못하셨다. 나는 몇 번인가 힘에 부치는 농사일을 그만 물리라고 말씀드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그 답답한 심사로 냇가에 주저앉아 돌멩이를 두드리는데 내게로 돌아오는 산소리가 어찌나 컸었든지! 아직도 쟁쟁하다. 이제 그 메아리 소리는 앞산에 사는 어머니의 혼이 되어 버렸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퇴직하고 괴산 사리에서 귀농을 시작하였다. 구거 옆에 붙어 있는 토지인데 물길 관리가 전혀 되지 않고 있었다. 말만 국가 소유의 구거이지 괴산 군정이 시작된 이래. 아니면 태초부터 현재까지 농지세는 꼬박꼬박 내고 있으나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터였다. 어쩔 수 없이 괴산 군정을 대신하여 구거관리에 나섰다. 200m 길이의 석축을 쌓았던 것이다. 일테면 개인이 군정의 할 일을 대신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터진 것이다. 이번 물난리에 일부 석축이 무너져 내렸다. 피해보고를 하였으나 더 크게 피해를 입은 곳이 많은 탓인지 아무도 와 보지도 않는다. 긴급재난 복구를 받을 만큼의 상황이 아닌 것으로 파악된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않는가. 장맛비가 모두 그치면 무너진 석축을 다시 쌓아야 하지 않겠는가.

산등성이의 나뭇가지에 달빛이 푸르다. 가을 들판은 푸르게 엎어져서 귀뚜라미 소리를 듣는다. 가을은 청명한 소리들로 구성되어 있어 좋다. 네일 아침 해가 뜨면 어머님의 달개비 꽃은 푸른빛을 두르고 웃고 있을 것이다. 아침이슬은 햇살을 분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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