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여성문학상 시상식
‘시래기 밥’ 최덕순 시 시상
특별 제작 황금펜촉패 수여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이 12회 '충북여성문학상' 수상자인 최덕순 시인에게 특별 제작된 황금펜촉패를 시상하고 있다.


(동양일보 김재옥 기자) 충북여성문학의 창작의욕 고취를 위해 동양일보와 뒷목문학회가 제정한 12회 충북여성문학상 시상식이 14일 동양일보 아카데미홀에서 열렸다.
이날 시 ‘시래기 밥’으로 수상의 영광을 안은 최덕순(55·사진) 시인은 특별 제작된 황금펜촉패를 받았다.
시 ‘시래기 밥’은 심사위원들로부터 “시상을 전개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서술형식을 벗어나지 않고 있음에도 시인만이 가지고 있는 언어에 대한 날카로운 촉수 때문에 읽는 내내 뭉클한 울림으로 시적 긴장을 놓치지 않는 수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날 시상식에서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은 “많은 문학상이 상업성과 결탁해 그 권위를 잃어가는 시대에 한 해 동안 충북지역에서 가장 좋은 글을 쓴 여성작가에게 주는 충북여성문학상은 누구나 인정할만한 작가에게 주는 공인된 상”이라면서 “수상자인 최덕순 시인이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좋은 작품으로 충북여성문학상에 응답해 주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최덕순 시인은 “‘시’라는 평생 좋은 친구를 만났으니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가더라도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정진하겠다”면서 “충북여성문학상을 주신 것도 좋은 글 많이 쓰라는 격려라 생각한다. 더욱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충북여성문학상은?>

동양일보와 뒷목문학회는 충북여성문학의 발전과 여성문인들의 창작의욕 고취를 목적으로 전 문학 장르를 통해 가장 우수한 작품을 발표한 충북여성문인 1명을 선정해 시상하고 집중 조명하는 충북여성문학상을 제정했다.
역대 수상자는 2006년 1회 박영자 수필가와 2007년 2회 박재분 시인, 2008년 3회 박등 시인, 2009년 4회 김경순 수필가, 2010년 5회 유영삼 시인, 2011년 6회 차은량 수필가, 2012년 7회 신준수 시인, 2013년 8회 이은희 수필가, 2014년 9회 강순희 소설가, 2015년 10회 권영이 동화작가, 2016 11회 노영임 시조시인 등이다.
심사 대상은 엄격한 심사와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충북에서 3년 이상 거주한 여성문인(뒷목문학회 회원은 제외)이 매년 7월 1일부터 익년 6월 30일까지 국내의 신문, 잡지, 동인지, 문예지 등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를 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추천하는 심사위원들이 개별로 2편씩 뽑는 1차 심사를 하고, 이로부터 10일 이내에 심사위원 전원이 참석해 토론과 협의를 거치는 2차 심사로 수상자를 결정한다. (협의가 되지 않을 경우 투표에 의해 결정).
수상자는 동양일보에 수상작과 함께 발표하고 당년 발간하는 뒷목문학지에도 게재하며, 수상자에게는 ‘황금펜촉패’를 수여한다. 시상식은 오는 9월 14일 오후 4시 동양일보 아카데미홀에서 열린다.

<수상작>
시래기 밥
양념간장으로
싹싹 비빈다
시래기 냄새가
꼬리를 감춘다

엄마는 김장 전 무 머리를 싹둑 잘라
처마밑에 매달았다
어깨를 맞대고 엮어진
근심이 창을 가려도
겨우내 그냥 두었다

바스락바스락
아버지의 길고 긴 부재의 소리
달의 촉수를 더듬는 엄마의 뒤척임으로
시래기는 제 몸의 물기를 빼냈다

아버지는
가끔 아침 손님으로 왔다 가곤했다
어린 나는 마른 시래기같은 눈으로
아버지를 배웅했고
엄마는 종일 시래기를 삶아댔다
원래의 몸으로 돌려세우려
맞잡은 바람자락을 오래오래 삶았다

데워지지 않는 눈물처럼
견고한 부재는
쉽게 물러지지 않았다

시래기 밥을 먹고 누웠다
바짝 마른 시래기가 들어와
내 옆에 눕는다
부재가 또 다른 부재를
끌고 와 바스락거린다

<최덕순씨 인터뷰>

삶의 모든 순간이 바로 ‘시’
최덕순 시인의 시 ‘시래기 밥’이 12회 충북여성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시 ‘시래기 밥’은 심사위원들로부터 “시상을 전개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서술형식을 벗어나지 않고 있음에도 시인만이 가지고 있는 언어에 대한 날카로운 촉수 때문에 읽는 내내 뭉클한 울림으로 시적 긴장을 놓치지 않는 수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다음은 시인과의 일문일답이다.

-시 ‘시래기 밥’은 어떻게 탄생한 작품인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는 생활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끼게 했다. 어느 날 처마에 매달아 말려 놓은 시래기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외롭고 힘들었을 어머니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시로 흘러나왔다.”

-작품 소재는 주로 어떻게 얻는가.
“삶의 모든 순간순간이 시의 소재가 된다.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일상에서 만나는 자연이나 경험 등을 다르게 들여다보는 눈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예를 들어 ‘어머니’라고 하면 그 존재는 누구나 알고 있다. 다만 나는 어머니 이면의 심상을 보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시가 된다. 삶 자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을 것들까지 보려고 하고 그 속에서 소재를 많이 얻는다.”

-작품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가.
“작품 활동의 시작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2008년도에 아들이 군대에 갔는데 그립고 허전해서 청주시 금천동에서 진행하는 신영순 시인의 1인1책 수업을 들으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들의 부재에 대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것이 글쓰기였다. 그러다 청주대 평생교육원 시창작 수업을 들게 됐다. 이후 등단한 지금까지도 문우들과 합평을 위해 시창작 수업을 수강하고 있다.”
-자신에게 있어 시란.
“시는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차가운 머리로 이해하고 따뜻한 가슴까지 가는 과정, 그 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시라고 생각한다. 매일 새벽 4시에서 오전 6시까지는 온전히 그 길에 서 있는 시간이다. 온전히 나를 만나는 것, 그것이 나에게 있어 시의 의미다.”

-시인으로서의 꿈은.
“아직은 시인이라는 이름이 낯설고 부끄럽기까지 하다. 제 옷 같지 않아 불편하고 낯설다. ‘시’라는 평생 좋은 친구를 만났으니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가더라도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정진하겠다. 충북여성문학상을 주신 것도 좋은 글 많이 쓰라는 격려라 생각한다. 삶의 여정에서 좋은 작품 하나 만나는 것, 그것이 시인으로서 유일한 꿈이다.”

<심사평>
언어의 속살 드러내는 마력… 신선감 보여줘
올해로 12회를 맞는 충북여성문학상의 주인공이 가려졌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충북여성문학의 발전과 여성문인들의 창작의욕 고취’라는 기본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 지난 한 해 충북에서 발간된 30여권의 동인지, 협회지를 샅샅이 뒤지는 대 작업이 시작됐고, 장르별로 수백편의 작품이 심사위원들에게 회람되었다.
올해도 예심에서 올라 온 각 분야별 우수작에 대한 검토를 거쳐 최종심에 부쳐 진 작품들에 대해 어떠한 장르별, 지역별 안배나 편견 없이 오직 작품에 대해서만 심도 있고 치열한 의견교환이 이뤄졌음을 밝힌다.
심사과정은 옥석(玉石)을 가리는 것이 아닌 옥(玉) 중의 옥을 고르는 과정이라서 어려운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고민 끝에 최덕순 시인의 ‘시래기밥’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심사 후 일치된 의견은, 발표된 산문(특히 수필)은 양에 비해 수준이 높지 않았고 대부분이 신변잡기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해 왜 수필이 ‘문학의 본령’에 위치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아쉽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흔히 시를 언어예술의 윗자리에 놓고 ‘언어의 꽃’, ‘언어로 지은 사원’이란 표현을 하고 있다. 이는 시가 자신만이 갖는 느낌의 재료를 가지고 정서의 구체화를 통해 삶 속에서 빚어지는 감정과 감동의 집을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성찰과 사물에 관한 관심을 어떻게 시 속에서 드러내는가 하는 심미적 안목에 따라 시의 완성도는 달라진다. 기쁨. 슬픔. 분노. 놀람. 불안. 고독. 비애 등등의 정서적 재료를 어떻게 버무려 맛을 내느냐에 따라서 그 시의 깊이와 풍미를 다르게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본능적으로 그것을 새롭게 인식하고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고, 시의 집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쓰이는 평범한 낱개의 언어들이 새로운 발상과 새로운 해석으로 독자성을 확보하며 응축된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게 된다.
이번 12회 충북여성문학상 당선작 최덕순의 시 ‘시래기 밥’은 가부장적 관습 하에서 억눌리고 고통 받아 온 한 가족사이자 한국여성의 시대적 아픔을 에둘러 고발하고 있다. 제목만 보아서는 ‘시래기 밥’은 따뜻하고 정겨운 옛 추억의 에피소드 쯤으로 다가온다.
‘양념간장으로/싹싹 비벼’먹던 시래기가 행간이 길어질수록 단순히 시래기가 아니라 ‘부재’로 상징되는 아버지와 엄마를 이어주는 애증의 키워드로 작용한다.
시인에게 ‘시래기’는 엄마의 척박한 삶에 더해진 짠한 동정이다가, 부재에 대한 그리움이다가 끝내 가족사를 관통하는 우울한 아픔으로 환치된다.
아버지가 다녀가는 날이면 엄마는 울분과 일말의 희망까지 버무린 시래기를 푹푹 삶아낸다.  시래기를 통해 스스로 물기를 빼내는 엄마의 모습과 아버지의 부재에서 오는 진한 그리움까지 속살을 발라내는 발상이 독특하고 놀랍다.
시상을 전개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서술형식을 벗어나지 않고 있음에도 읽는 내내 뭉클한 울림으로 시적 긴장을 놓치지 않는 것은 시인만이 가지고 있는 언어에 대한 날카로운 촉수 때문이다.
‘어깨를 맞대고 엮어진 근심’, ‘맞잡은 바람자락을 오래도록 삶아댔다’라든지 ‘시래기는 제 몸의 물기를 빼냈다’, ‘부재가 바스락거리다’와 같은 표현은 언어의 속살을 능숙하게 발라내는 장인의 손길만이 가능한 표현일 것이다. 
좋은 시이기에 가능했던 상상력의 산물로서 ‘시래기’는 결국 이 ‘시의 집’을 받쳐주는 기둥이 된다.
마른 시래기처럼 ‘쉽게 물러지지’ 않는 이 작가의 다른 작품 역시 ‘언어의 속살을 드러내는 마력’을 지닌 작가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어 심사위원 모두가 일치된 의견으로 당선작을 선정했다. 더욱 노력하여 충북여성문학발전에 기여하기 바라며 다시 한 번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가나다 순)
김다린(수필가), 김송순(동화작가), 나기황(시인), 박희팔(소설가), 서은경(시인), 신영순(시인), 심재숙(시인), 안수길(소설가), 유영선(동화작가), 윤상희(시조시인), 윤현자(시조시인), 이송자(시인), 조성호(수필가), 조철호(시인)

<수상 소감>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두 뼘, 묵묵히 걸었다”
이명으로 시끄러운 여름을 보냈습니다. 여름이 서서히 물러가듯 이명도 잠잠해져 갈 때 쯤 수상소식을 들었습니다. 귓속에서 다시 전쟁이 나서 잘못 들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선소감을 쓰는 지금도 믿기지 않아 혼란스럽습니다. 저는 아직도 시를 잘 모릅니다. 제가 쓴 시에 빠져 늘 파도타기를 하는데 상을 받는다니 참 난감하고 미안하고 어색합니다.
시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시는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머리는 생각을 갖게 하지만 차갑던 따뜻하던 느끼는 것은 가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두 뼘의 길이가 저한테는 너무도 힘들어 포기할까 생각한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이제껏 걸어온 길 포기하지 말라고 손을 내밀어 주신 심사위원님들과 동양일보에 감사드립니다.
시를 쓰면서 진 빚이 많습니다. 부족한 제자를 위해 당신의 시어까지 서슴없이 주시는 스승님들, 제가 무엇을 하던 묵묵히 바라봐주는 가족들, 문우님들, 그리고 제 시어들에게 조금이나 빚을 갚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창밖 모감주나무가 이 어색한 현실을 매달아 놓고 흔들고 있습니다. 풍경소리를 내며 축하한다는 몸짓인데 저는 아무소리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제 시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시가 새로운 삶의 출발이라고 어서 가자고 그럽니다.
앞으로 더욱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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