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도의회 의원 연철흠

(동양일보) 새벽에 운동을 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밤새 낙엽이 길가를 덮었다. 길바닥을 형형색색으로 수놓은 낙엽은 나를 위해 카펫을 깔아 놓은 것처럼 너무 멋져서 그 장면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았다. 낙엽을 보고 문득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떠올랐다.

‘(전략)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중략)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지금 대한민국은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길은 이미 있었지만 사람들이 외면해서 잡초로 무성한 길이 되었다. 그 길을 문재인 정부에서 가고 있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 문제로 시민참여단을 모아 토론하는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를 실험하고 정부는 여기에서 논의된 내용을 앞으로의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당장 시간과 비용은 들겠지만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신뢰가 부족한 우리 한국사회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국회의원을 비롯해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불신이 적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국민 만족도가 낮은 분야가 정치 분야라는 것은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증거이자 슬픈 현실이다.

어디 선출직 단체장이나 의원뿐이겠는가. 교수를 비롯해 전문가들이 제 역할을 다 했다면 4대강 사업 추진으로 녹조가 발생해 환경을 망치거나,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국론을 분열하거나, 경전철 사업을 비롯한 국책사업들이 적자로 허덕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해 국내 최고의 대학병원인 서울대병원조차 한 농민의 죽음을 두고 사인규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습고도 슬픈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인터넷이 발달해 국민들은 예전처럼 전문가나 언론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이 알량한 지식이나 정보로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정권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안 될 일이지만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본연의 임무를 성실하게 하는 전문가나 언론인이 꼭 필요하다.

정책에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나 기자가 대한민국이나 우리 충북에 많으면 공직자는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정책을 감히 추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언론인을 사회의 감시견(監視犬)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의 역할도 언론인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동안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관에서는 답을 정해 놓고, 전문가는 정책에 화장을 하고, 언론은 비판 없이 기사화하면 끝나는 시스템으로 우리사회는 운영돼 왔다. 그 길의 종착지가 어떤지 생각지도 않고 앞사람이 가던 길이라 계속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봐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 선택한 제대로 된 길을 가야한다. 설령 그 길이 낮선 길이고 장애물도 많아 어려움이 있더라도 옳은 길이라면 가야 한다. 적폐라는 걸 알면서도 새 길이 두렵고 가던 길이 익숙하다고 그 길만 고집한다면 우리 사회는 나아질 수 없고 미래도 없는 것이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생각하며 감상에 젖다가 뜬금없이 골치 아픈 정치얘기를 들먹인 것 같다.

깊어가는 가을,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로에 치우지 않은 낙엽을 밟으며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할지 곰곰이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