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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원초적 본능의 예술화의 역사<이상주>
동양칼럼-원초적 본능의 예술화의 역사<이상주>
  • 이상주
  • 승인 2018.01.15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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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 중원대 교수

(이상주 중원대 교수) 예술인가? 외설인가? 이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대한 표현수준에 관한 문제다. ‘원초적 본능’이란 통상 남녀간의 성행위(性行爲)를 말한다.

이에 대한 표현수준을 놓고 외설이다 예술이다 하는 논쟁이 부단하다.

표현의 자유와 탈전통을 표방하며 외설을 예술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필자는 표현 수준을 근거로 예술과 외설을 판정하고자 한다.

예술의 정의는 절대다수의 보편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인간이 창조한 아름다움이다. 외설은 원초적 본능에 대해 직접적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성행위에 대한 표현이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필요충분조건이 있다.

예술적 표현의 역사를 보자. 문학적 표현이 예술적 표현으로 통한다. 따라서 문학적 표현을 알면 예술적 표현은 저절로 알 수 있다.

첫째, 먼저 문학적 표현을 들어본다. 시(詩)부터 보자. 다음은 두보의 ‘춘망(春望)’이다.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성춘초목심(城春草木深).” “산하가 남아있다는 것은 그외 나머지 물건은 없다는 뜻이며, 성에 초목이 무성하다는 것은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이렇듯 직접 말하지 않고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명시(名詩)가 구비해야할 조건이다. 이것이 문학적 표현이며 예술적 표현과 통한다. 다음은 황진이의 시조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할 때 쉬어간들 어떠리.’ 명월 황진이가 벽계수를 조롱 야유하며 간접적으로 사랑을 청한 연가라 하여 유명하다. 김동명의 ‘내 마음은 호수요’ 유치환의 ‘깃발’의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등이다. 둘째, 지명을 보자. 낙화암, 분설담(噴雪潭), 금호강(琴湖江)이 있다. 셋째, 책 제목을 보자. 중국 남송의 위경지(魏慶之)의 ‘시인옥설(詩人玉屑)’, 김천택의 ‘청구영언(靑丘永言)’, 기교헌의 ‘대동풍아(大東風雅)’,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가 있다.

위에 제시한 사항들의 공통점은 내용을 직접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돌려서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이를 통해 역사적으로 문학적 표현이라 함은 비유적인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직유보다는 은유와 상징성이 높은 작품을 문학적 표현미가 높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예술도 마찬가지다. 은유적 표현 상징적 표현을 해야 한다. 원초적 본능에 대한 표현에 있어서도 당연히 은유와 상징을 기준으로 평가해야한다. 성(性)에 대한 속언에 이미 예술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실례를 보자.

첫째, 먼저 남성의 성기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귀두, 송이, 옥경(玉莖), 중족(中足), 가지, 고추, 가운데 다리, 몸가락, 뜨끈뜨끈한 방망이, 속살쑤시개, 탱크 등이다. 다음은 여성의 성기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단어들이다. 옥문, 음문(陰門), 홍합, 으름, 조가비, 숲속의 옹달샘, 임하소지(林下小池) 등이다. 한글 파자(破字)로 ‘니노지’가 있다. 세로로 붙여 쓰면 ‘ㅂ’이 들어가는 여성의 성기를 일컫는 말이 된다.

둘째, 남녀가 원초적 본능을 발산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들을 보자. 가죽방아 찧는다. 가죽주사 놓는다. 떡친다. 떡방아 찧는다. 방아공이 건다. 살침 맞았다. 승선한다. 양복 맞췄다. 절구질한다. 풀무질한다. 물총을 쏘았다. 보링했다. 펌푸질한다. 피스톤운동한다.

셋째, 한문학을 보자.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에 나오는 내용으로 인해, 남녀간에 성행위를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 한다. 다음은 김삿갓이 어느 여인과 동침한 후 그 느낌을 표현한 시라 한다. “모중심처(毛中深處), 필타과인(必他過人)” “터럭 중앙 깊은 곳, 필시 다른 사람이 지나갔도다.” 여인이 고격(高格)으로 화답했다. “후원황율불봉절(後園黃栗不蜂絶)” “뒤뜰의 누런 밤송이는 벌이 쏘지 않아도 잘만 벌어지네.” 다음은 성여학(成汝學)의 ‘관부인전(灌夫人傳)’의 ‘부인소지(夫人小池)’라는 한시(漢詩)를 번역했다. “양각산(兩脚山) 가운데 있는 작은 연못, 그 남쪽과 북쪽에 무성한 풀 뒤엉켰네. 바람이 불지 않는데 하얀 물결 하늘을 뒤엎듯 일어나니, 외눈박이 붉은 용이 들락날락할 때라네.”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외설이 된다. 다 아는 것을 다 말하는 것은 비문학적이다.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끝까지 말하면 예술이 아니다.

‘선녀와 신선의 밤풍경’ “댓돌 위에 나란히 놓인 신발 네 짝. 먼저 온 그대는 이미 선녀, 지금 온 당신은 정녕 신선. 아침엔 구름, 밤이 되면 비.” 이상주는 단언한다. 예술이란 표현의 자유와 상상력의 자유를 동시에 즐기게 해주는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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