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처럼 이어진 주류업계 선정적 마케팅…이젠 끊자
한 주류업체 달력에 반나체 여성 등장…“수위 높아 민망”
‘타임즈 업’ 운동과 맞물리며 ‘공분’…안이한 성인식 개선해야

-오늘은 110번째 세계 여성의 날

 

#.김모(60)씨는 최근 청주의 한 식당을 찾았다가 민망한 상황을 겪어야 했다. 가족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찾은 이 식당 한 쪽 벽면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맥주캔으로 중요부위만 겨우 가린 외국인 여성들을 모델로 한 국내 유수의 주류업체 달력이 버젓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무리 성개방이 넘쳐나는 세상이라지만 이런 달력이 제작되고 있다는 게 놀랍다”며 “아이들이 볼까봐 민망하기도 했지만 여성을 남성들의 눈요기 거리로 삼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미국 헐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최근 성폭력·성추행 피해 사실 고발을 넘어 사회전반에 퍼져있는 성차별 문제 해소를 촉구하는 ‘타임즈 업(Time’s Up)’ 운동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소주와 맥주 등을 생산·판매하는 대기업이 나체 여성들이 등장하는 판촉용 달력을 제작, 배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비판이 일고 있다.

달력에 등장하는 모델의 노출수위가 심각한데다 아이들도 출입할 수 있는 일반음식점에 버젓이 내걸려 있기 때문이다.

달력에 나오는 모델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중요부위만을 맥주 캔이나 거품 등 소품으로 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것은 그나마 수위가 양호한 편에 속한다.

이 달력을 본 시민 A(여·40)씨는 “여성모델들의 나체 정도가 너무 지나쳐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라며 “제품보다는 여자의 몸에 눈이 더 간다”고 말했다.

해당 대기업 관계자는 “판촉용 달력의 경우 주류 도매상이나 업주들의 요청에 따라 제작된다”며 “업주들이 술 판촉 차원에서 이러한 달력을 원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제작된 판촉용 달력은 도매업자들이 자신들의 상호명을 박아 일반음식점 등에는 걸지 않고 성인만 갈 수 있는 주점 등에만 배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흥주점에만 걸린다는 대기업 관계자의 말과는 달리 청주시내 일반음식점에서는 이런 달력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런 달력들이 어린이나 청소년들도 갈 수 있는 음식점 등에 언제든지 배포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대기업은 2015년과 2016년에도 업소용으로 이와 비슷한 달력을 만들어 배포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류업체가 제품 홍보를 위해 선정적인 마케팅 방법을 선택해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제주지역의 한 주류업체는 제품을 홍보하며 성매매의 시간단위를 연상시키는 은어를 사용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안이한 성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영경 충북여성정책포럼 대표는 “이런 주류광고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상품화한 것이며, 남성중심의 성차별적 왜곡된 성문화를 조장하는 요인이기도 하다”며 “여성의 몸을 선정적으로 다룬 광고는 당연히 금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홍보물은 무의식적으로 여성에 대한 성차별 의식을 갖게 한다”며 “정부는 선정적인 광고에 대한 처벌 등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홍보물 등에 대한 성별영향분석평가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정부나 지자체에서 발간하는 홍보물 등에 대해서는 성별영향분석평가가 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민간기업의 경우 대상 범위에 속하지 않아 소비자단체 등의 모니터링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단체 관계자는 “민간기업의 홍보물에 대해서도 성별영향분석평가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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