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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교육본질의 지향과 교육개혁<한희송>
풍향계-교육본질의 지향과 교육개혁<한희송>
  • 한희송
  • 승인 2018.03.19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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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송 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한희송 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교육은 최소한 두 가지를 지향한다. 하나는 인류가 역사를 통해 진화시켜 온 공통지식의 전달이며 둘째는 그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正體性)을 찾아 낼 수 있는 내면적 깨달음의 기회제공이다. 교육이 잘못된 시대들이 있다. 그 잘못에 대한 판단은 온전히 이 두 가지 측면으로 분석해 낼 수 있다. 요순(堯舜)시대에는 국민이 생업에만 집중하여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민이 부족한 것이 없어 남이 잃어버린 물건을 주워가지 않는 도불습유(道不拾遺)의 시대를 치세(治世)의 모범으로 삼는 것이 동양의 군주들이었다. 그러나 후대에 많은 군주들이 국민의 지적(知的)수준을 낮추고 오히려 국민의 지식축적을 막음으로 즉, 교육의 첫 번째 존재이유를 거절함으로써 태평성세(太平成歲)를 이루려 했다.

국민이 비판하지 않고 무조건 자신을 지지를 하도록 세뇌하는 것이 그 방법으로써 가장 적절했다. 만일 국민 중 누구인가가 이러한 자신의 의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는 제거되어야할 사회의 암적 존재로 인식하면 될 일이었다. 이런 논리는 국민을 주권의 소유자가 아닌 피치자(被治者)로 인식하게 했다. 통치의 반대개념을 물질화 한 것이 국민이라는 생각은 정체성이란 개념을 인식하는 주체가 아니라 이를 주입시킬 대상으로 국민을 파악하게 했다. 그리고 이를 현실화한 것이 교육시스템이었다.

지금 북한에서는 미국이 없어지고 남한이 정치적으로 망한다면 행복이 올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길러지고 있다. 행복은 정체성의 확립을 통해 내면에서 일어나는 작용일 때만 인간에 적용되는 개념이다. 어떤 연쇄살인범이 살인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면 그러한 개념의 행복추구는 교육의 존재가치를 논하는 좌표계에서는 그 위치를 가질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자기 인생의 가치를 담보할 정체성이 자기 자신의 깨달음이 아닌 남의 나라의 멸망과 같은 물리적 사실에 의존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룬 평안을 요순시대와 등가(等價)할 수 있다면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겉모습이 같다고 해서 같은 인격을 부여받는 일과 다를 바가 없다. 지금 우리나라에서의 교육이 바로 위와 같은 문제 속에 있음을 우리 스스로 인지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교육의 개념이 개혁과정을 통해 오롯이 명쾌해지지 않는다면 후손들이 겪어야 할 인생에 관한 관념적 오류와 그로부터 오는 인격적 위기는 필연적으로 현재 우리가 가진 교육시스템이 만든 결과물일 것이라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

교육시스템이 학과목을 나누고 있다면 그 방법상의 선악을 떠나서 최소한 그 의도는 위의 두 가지 교육의 본질적 목적을 품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영어라는 과목이 주요과목으로 선정되었다면 최소한 첫째, 지식과 정보의 저장형태 중 가장 일반적인 언어가 영어라는 의미이며 둘째, 영어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는 행위가 교육을 이행하고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판단하는 최소한의 도구가 된다는 의미이다. 어느 누군가가 이 시스템을 이용해서 실질적으로는 영어로 지식이나 정보를 쌓을 능력이 없는데도 그런 것처럼 보이는 방법을 찾고 있다면 그는 아마도 최소한 교육의 주체가 될 수는 없는 사람이여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시설들에서 왜 영어를 가르치는가? 그 목적이 지식과 정보의 축적수단의 확보라고 한다면 현재의 그 누구도 동의하지 못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실시되는 ‘시험’의 점수를 올리기 위함이 유일한 목적이다. 이런 시스템을 국가가 운영한다는 것은 그 국가의 교육전체에 대한 수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눈’이 ‘eye’라는 것을 정상적 고등교육과정을 마친 사람은 다 안다. 그러나 ‘눈꼽’이나 ‘눈의 흰자’를 영어로 아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찾기 힘들다. 그 단어들 간의 중요성의 차이는 없다. 그런데 이런 상태는 왜 생기는 것일까? 누군가가 ‘눈꼽’이 sleep이라는 이미 아는 단어이고 ‘흰자’가 eye white라는 이미 아는 표현일지라도 이를 공부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는 ‘시험범위’가 아닌 것을 공부하는 비현실적인 아이로 취급받는다. ‘시험에 안 나오는 것을 왜 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누구나 수도 없이 듣는 말이다. 심지어 교사를 꿈꾸는 대학생들조차 임용고사를 대비하는 것이 공부이지 그 이외의 것은 ‘현실을 모르는’ 짓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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