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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65) / 고령자 시대의 고령자를 생각한다
동양포럼(65) / 고령자 시대의 고령자를 생각한다
  • 동양일보
  • 승인 2018.03.2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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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고령자의 문제관점

야마모토 교시 일본 미래공창신문 발행인

지난해 9월 15일 나는 70세가 됐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 이것이 그 날의 나의 상쾌한 결의였다. 늠름한 새 출발을 의식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개운하게 축복했다. 예로부터 일본에서는 70세가 된 사람을 ‘고래로(古) 희귀하다(稀)’ 즉 ‘고희(古稀)’라고 부르며 축하해 왔다. 고희가 된 내가 처음으로 맞이한 신년(2018년)의 간지는 무술(戊戌), 즉 ‘개’이다. ‘개(戌)’는 주인의 은혜를 느끼는 데에 탁월한 천성을 지니고 있다. ‘감은(感恩)’의 덕이다.

언젠가 오래 전에 김태창 선생으로부터 개에 대해서 대강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것은 김태창 선생의 생애의 혼의 핵심을 형태지우는 소년시대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에서 태어난 김태창 선생은 태어나고 얼마 안 돼서 아버지가 일하고 있던 동경에서 유아기를 보내고, 5, 6세 무렵에 한국의 시골로 돌아왔다. 고향에서는 한학자였던 할아버지의 무릎 위에서 유교의 훈도를 받았다. 생활의 모든 면에서 ‘논어’. ‘맹자’와 같은 유교경전의 중요한 어구와 문장을 배우고, ‘주역’이나 ‘장자’ 등의 중국고전도 폭넓게 흡수하였다. 그리고 지금 80대가 된 김태창 선생은 나날이 새롭게 주역이나 신·구약성경의 예지(叡智)의 진수를 재발견하면서, 체득을 심화시키고 영성 함양에 주력하고 계신다.

할아버지는 소년 김태창을 일본인이 만든 소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직접 교육시켰다. 학교친구가 없는 소년 김태창에게 3년 동안 마음이 늘 통했던 ‘절친’은 집에서 기르던 개였다. 이국의 대도시에서 산천과 논밭으로 둘러싸인 시골로 이사 온 소년이 멀리 놀러나가면 당연히 길을 잃는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너 혼자서는 위험하니까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개를 데려가도록 하여라.”고 말씀하셨다. 개는 어쩌다 산길에서 길을 잃어도 돌아오는 길은 정확히 알고 있어서, 소년을 반드시 집에까지 안내해 주었다.

개는 예로부터 인간과 궁합이 잘 맞는다. 개의 감은의 덕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하기 때문이다. 주인이 개에게 애정과 성의를 담아 대하면 감은(感恩)의 마음이 강해진다. 주인이 다른 사람에게 공격당하거나 하면 개는 그 불한당에게 맹렬히 달려든다. 소년이 산에서 먹어서는 안 되는 해로운 열매를 따려고 하면, 개는 방해를 하면서 “이것은 먹으면 안 된다”고 가르쳐 준다. 소년과 개는 텔레파시가 통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개는 때때로 놀랄 정도의 기지를 발휘한다. 가령 어린아이가 위험한 곳에 가려 하면 모든 지혜를 짜내서 가는 곳을 막고, 마치 부모처럼 아이를 지킨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아이에게 가져다주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개는 순진해서 사람을 속이거나 이용하는 사심은 조금도 없다.

실은 개에게는 또 하나의 덕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에게 아침을 알려 준다는 것이다. 김태창 선생의 아침 기상은 지금도 새벽 3시로 습관화되어 있는데, 소년시대에 ‘새벽’의 소중함을 신체감각으로 알려준 것도 개였다.

김씨 가문의 집은 전통적인 한옥식 건물이었다. 토담에 둘러싸인 대문을 통과하면, 좌측에는 개집과 외양간이 이어있고, 우측에는 가족이 사는 방들이 있었다. 새벽의 낌새에 먼저 개가 짖었다. 이것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다. 신호는 계절에 따라 시각이 다르다. 3시에서 5시까지 폭이 있다. 개 짖는 소리에 아침이 가까운 것을 안 농부들은 기상해서 밭일 준비를 시작한다. 채비가 되어 집을 나갈 무렵에는 닭이 건강한 소리를 내지른다. 한두 시간 밭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농부들은 그제야 아침 식사를 한다. 시골에서는 그런 이른 아침의 풍경이 반복되었다. 시골의 아침은 실로 개 짖는 소리에서 시작된 것이다.

‘오늘’은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신이 아닌 인간에게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오늘은 좋은 날의 시작이 되기를”이라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침’은 어제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선상에 있지만, 오늘 하루가 선로를 달리는 열차와 같이 어제까지 똑같이 정해진 코스를 밟으리라는 법은 없다. “전혀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의미에서 여명의 일각은 ‘개신(開新)’의 예감에 충만해 있다.

김태창 선생은 새해벽두에 여명을 알리는 개의 덕을 생각하여 “감은개신(感恩開新)의 해”라고 부르고 계신다.

나도 김태창 선생에 호흡을 맞춰 올해를 “감은개신의 해”로 의미지우고자 한다. 2018년을 ‘감은’과 ‘보은’을 축으로 한, 개신(開新=동아시아의 패러다임시프트)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

올해 초에 나는 어느 책에서 “네 가지 은혜를 갚아라.”는 말을 접했다.

거기에서는 은혜를 갚아야 하는 첫 상대로 ‘일체중생’을 들고 있었다. 왜 중생일까? 나는 그 이유를 읽고 경탄하고, 나의 이성은 “그렇다!”라고 깊게 수긍했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일체중생의 은혜를 감득하기에는 너무나 먼 처지에 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관념적인 이해이기는 하지만, 나는 “일체중생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말을 “법어의 말”(法語之言. 공자의 말로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올바른 말”이라는 의미)로 삼았다. ‘보은’은 ‘감은’이 토대가 되고 있다.

김선우 작 '개'.

내가 납득한 이유는 일체중생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늘은 인간에게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의 염원을 일으키게 해주기 때문이다. 일체중생이 없다면 그와 같은 보살의 염원을 품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일체중생 속에는 물론 지금은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도 포함되어 있지만,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게 해주는 거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원수’나 ‘악인’도 들어간다.

한편 나는 전후(戰後) 일본에서 가장 아이가 많이 출생한 1947년에 태어났다. 세상은 우리를 가리켜 ‘단괴세대(團塊世代)’라고 부른다. 앞으로 이 단괴세대층이 점점 고령자, 요양자가 되어, 일본인의 평균연령을 높여 나가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선진국 중에서 소자(少子)고령(高齡化)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나라라고 한다. 한국도 일본과는 5년 차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국민 평균연령이 늘어나는 것 자체는 기본적으로 좋은 일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고령자를 지탱하는 장년남녀는 부담이 늘어나고, 태어나는 아이의 감소는 멈추지 않는다. 국내 출생인구가 줄어들어 생산능력이 저하되어 가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노동인구가 줄어드는데도 종래대로 경제성장을 도모하는 정책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부담이 늘어나는 현역세대와 다수를 점하는 고령세대 사이의 단절, 균열, 상극은 그 나라에 사는 모든 인간을 불행하게 한다.

1931년에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은 “현대의 최대의 위기의 하나”가 의료기술의 진보덕분에 인류의 평균연령이 상승하고 있지만, 고령자의 능력의 한계는 원래대로이다 라고 지적하였다(‘인생에 대한 단상’).

러셀은 당시 영국에서 보수적인 고령자가 정책을 담당하고, 사회변혁에 제동을 거는 것을 한탄했다. “불행하게도 나는 70을 넘은 노구들이 정부의 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라고. 즉 백 년 전의 영국에서는 세대간 단절과 세대간 불신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 러셀의 나이는 59세였다. 세대간 단절의 시간적 간격을 미래에까지 연장하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장래세대와 현재세대 사이의 단절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다. 그로 인해 드러나는 ‘단절’은 장래세대에 대한 현재세대의 일방적인 수탈(nowism)이다. “현재세대 이기주의”는 근대 산업사회에서 문명의 진보번영을 추구해 온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윤리적 함정이다.

장래세대와의 단절문제를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다룬 것은 일본의 학자, 지식인들이 참가한 교토포럼이었다. 교토포럼의 김태창 장래세대총합연구소 소장은 문제의 핵심을 “세대계승(생생)성”의 위기라는 키워드로 지적했다(1999년, 장래세대 국제재단 발행, 장래세대 총합연구소 편집, ‘지금 왜 세대계승(생생)성인가?’)

한편 “근대의학의 진보에 의한 고령사회의 도래”를 위험한 현상으로 이해한 버트란드 러셀 자신은 98세의 천수를 누렸다. 러셀이 95세에 쓰기 시작한 자서전의 첫 머리에는 아내에게 바치는 시가 실려 있다.

에디트에게 평화를 추구한 세월들 // 나는 무아지경이었다. / 나는 번민하였다. / 나는 미치광이 같았다. / 나는 쓸쓸함을 맛보았다. / 나는 마음을 좀먹는 고독의 고통에 괴로워했다. / 하지만 평화는 찾지 못했다. // 지금, 늙어서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 나는 당신을 알았다. / 그렇게 / 당신을 알고서 비로소 / 법열(法悅)과 평화를 찾았다. / 저 오랜 외롭던 시간들을 거쳐 / 나는 평안을 얻었다. // 지금, 만약에 잠이 든다고 한다면 / 나는 마음이 충만하게 잠들 것이다. //

90의 문턱을 넘은 러셀은 행복한 사람이었지만, 그 러셀도 장차 다가올 고령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했던 59세의 러셀과는 분열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아무런 분열도 모순도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그 연령층에 요구되는 사회공헌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러셀이 비판한 것은 70대가 되어도 자신의 지위업적이나 권세 위에 가부좌를 틀고서 자신만을 생각하는, 탁해진 혼의 고령자들이었다. 러셀이 90세를 맞이한 해에 베트남전쟁이 발발했다. 러셀은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함께 국제전쟁범죄법정을 열고, 미국의 전쟁범죄를 규탄했다. 러셀은 세기에 걸쳐 있는 양심적 고령자의 귀감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1954년 3월 1일에 미국이 태평양의 비키니섬에서 행한 수소폭탄실험의 정보를 입수한 러셀은 같은 해 12월 23일, 영국의 BBC 방송에서 핵무기와 전쟁의 중단을 호소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다음 해인 55년에 러셀은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작성했다. 당시 러셀의 나이는 83세였다. 죽음의 문턱에 있던 76세의 아인슈타인이 선언서에 대한 서명을 승낙했다. 당시에 동서 양진영의 일급과학자 11명이 서명하여, 전 세계에 발표되었다. 이것이 모태가 되어 1957년에 설립된 것이 퍼그워시회의(Pugwash Conferences)이다. 러셀의 의지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이 회의를 이끌어 온 로트블랫(Sir Joseph Rotblat) 총재는 1995년 가을에 이 회의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실은 러셀-아인슈타인 선언과 교토포럼은 묘한 인연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것을 소개하기에 앞서 나 자신의 실존체험을 먼저 말하고자 한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영어수업 교재로, 버트란드 러셀의 ‘인류에게 내일은 있는가?’가 사용되었다. 89세의 러셀이 집필한 책이다. 나는 이 수업에서 ‘인류’로 통칭되는 지구상의 생물들이 궁극무기에 의한 전멸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거기에 쓰여 있는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은 궁극무기를 개발한 인류는 더 이상 분쟁해결의 수단으로서 ‘전쟁’을 선택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 적에 대한 의심이나 공포보다도 ‘인간성’을 염두에 두는 것 말고는 인류존속의 길이 없다는 것을 뜨겁게 호소하고 있었다. 러셀의 이 외침은 일본국헌법 제9조와 공진(共振)하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서 담임이 “일본은 헌법 9조로 전쟁포기를 외쳤다. 그리고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금지선언을 했다. 앞으로 일본은 비참하기 짝이 없는 ‘전쟁’을 두 번 다시 해서는 안 된다.”라고, 나의 혼에 ‘비전(非戰)’ 사상과 각오를 심어주셨다. 지금도 그때 그 N선생님의 진지한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교토에 본사가 있는 작은 신문사에 적을 두게 되었다. 그리고 40대 중반부터 교토포럼을 담당했다. 좌장은 핵물리학자인 교토대학의 시미즈 사카에 명예교수. 사무국장인 야자키 카츠히코씨는 당시 주식회사 휄리시모 회장으로, 이 포럼의 활동자금은 이 회사가 제공해 주었다.

교토포럼은 1989년에 발족했다. 발족하고 얼마 안 있어, 일본에 와서 동경대학 법학부 객원교수를 역임한 김태창 선생이 교토포럼의 중심 멤버로 들어왔다.  

내가 혼의 심연에서 온축해 온 세계관, 평화관이 내가 소속된 신문사의 신문지면에 특집기사로 크게 장식된 것이 1995년이다.

같은 해 8월에 교토국제회의장에서 제2회 세계장래세대 교토포럼이 개최되었다. 이 포럼에는 같은 해 7월에 히로시마에서 열린 제45회 퍼그워시회의의 주요 멤버도 초대되어 출석했다. 그 준비단계에서 야자키 사무국장의 전면적인 협력을 얻어 우리 신문사는 국제회의 예고 특집호를 몇 차례나 냈다. 예고호에 “럿셀-아인슈타인 선언”의 전문이 게재되고, 그 소개문에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전쟁포기에 대한 결의와 염원을 담았다. 그때 나는 40대 후반, 야자키 회장은 50대 전반이었다.

제2회 장래세대 교토포럼은 8월 3-4일, 이틀 동안 개최되었다. 8월 2일 저녁에 조세프 로트블랫 퍼그위시회의 총재, 시미즈 사카에 좌장, 김태창 소장, 야자키 카츠히코 사무국장 등, 6명이 교토(京都) 히가시야마(東山)의 음식점 다케시게로(竹茂樓)에서 회식을 하였다. 거기에서 김태창 소장은 로트블랫 총재에게 물었다. 러셀이 미국의 수소폭탄실험 사실을 안 것은 언제 어디서였느냐고?.

로트블랫 총재에 의하면 사실의 경위는 이러하다. 1954년 3월 14일, 수소폭탄실험에 의한 죽음의 재로 피폭된 제5후쿠류마루가 야이즈항구에 들어가서, 동경대학조사단보다 조금 늦게 야이즈에 들어온 시미즈 사카에 교수를 리더로 하는 교토대학 학술조사단은 선상에서 산호의 ‘죽음의 재’를 채취했다. 교토대학 각 분야의 과학자에 의한 주야(晝夜) 병행의 분석 결과, 비키니의 핵폭탄실험이 초수소폭탄(F-F-F)임을 규명하기에 이르렀다.

같은 해 11월 15일, 동경에서 개최된 미일(美日)국제방사선생물학회에서 133쪽에 달하는 상세한 영문보고서가 제출돼 비키니의 핵폭발이 히로시마형 원자폭탄의 1000배 가까운 위력이 있음을 일본과 미국의 과학자는 알았다. ‘시미즈레포트’라 불리는 이 학술보고서의 내용은, 당시 영국에서 로트블랫 밑에서 연구하고 있던 한 일본인연구자 N씨가, 시미즈 사카에의 이름은 내지 않고 학술보고서 내용을 로트블랫에게 전하여, 럿셀은 로트블랫으로부터 수소폭탄실험 사실을 전해 듣고 BBC방송에서 사자후를 토했다.(중외일보(中外日報), 1995년 8월 15일자 지면 등에 상세히 보도)

그렇다면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의 결정적 계기가 된 교토대학팀의 공헌 역시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참고로 원자폭탄 투하 후에 히로시마에 곧장 달려가서 투하된 무기의 정체가 원자폭탄이라는 사실을 규명해낸 것도 당시 30세의 시미즈 사카에 교토대학 강사가 참가한 교토대학 조사팀이었다. 조사팀에 의한 ‘히로시마에서의 원자핵학적(原子核學的) 조사’ 기사는 아사히신문(朝日新聞)의 8월 14일자에서 18일자까지 4회 동안 게재되었는데, 19일의 GHQ에 의한 검열개시로 신문지면에서 ‘원폭’ 두 글자가 사라졌다.

제2회 장래세대 교토포럼이 개최된 1995년 당시의 시미즈 사카에 좌장(같은 해 5월에 헝가리 과학아카데미 명예회원으로 선임)은 80세, 로트블랫총재도 80대 후반이었다. BBC방송과 시미즈레포트와의 명백한 연관성을 로트블랫 총재와의 대화에서 확인한 김태창 소장은 60대 전반이었다.

2018년 현재 세계는 지금도 일촉즉발의 전면적 핵전쟁의 위기에 있고, 이 선언의 취지는 낡기는커녕 오히려 강력한 설득력을 지니면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지금 나는 미래공창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이 신문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에 의한 후쿠시마원전 노심(爐心)용해사고 후에 매스컴이 이후에 진행되는 사고의 진실을 보도하지 않고, 국민에게 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기회를 막고 있다는 것에 대한 위기감에서 2012년 4월에 창간하였다.

러셀-아인슈타인선언은 말한다. 인류가 ‘전쟁’을 포기하면, “길은 새로운 낙원을 향해 열려 있다.”라고?. 과학이 인류를 멸망시킬 것인가? 인류에 진정한 낙원을 가져다 줄 것인가? 지금도 인류는 그 ‘교차로’(crossroad)에 서 있다.

인간이 행복을 나눠 갖는 공복(共福)의 미래를 공창(共創)하기 위해서는, ‘세대간 단절’이라는 인류의 미래를 가로막는 도(道)가 아니라, ‘세대간 상생’이라고 하는 희망의 미래를 개신(開新)하는 도(道)를 걷지 않으면 안 된다. 희망이 넘치는 미래는 한 사람으로는 만들지 못한다. 뜻을 함께 하는 동지의 연대가 필요하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95년에 40대부터 80대에 이르는 폭넓은 세대층의 우리는, “전체적 파괴를 피하자는 목표가 다른 모든 목표에 우선시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아인슈타인 원칙”(철학자 타니가와 테츠조(谷川徹三)가 명명)에 공감하여, 공복(共福)의 미래공창에 대한 사명을 불태웠다. 그 불은 지금도 타오르고 있다. 반드시 동아시아의 젊은이들에게 계승되어, 마른 들판에 불이 되어 단숨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리라 믿고 있다.

이제 ‘보은개신’의 해를 기점으로 해서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인류의 미래를 여는 황금봉화를 하늘높이 치켜들지 않겠는가?

70대가 된 나의 절실한 감회다. 염원이다.

<번역 / 조성환 원광대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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