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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외동서
풍향계/ 외동서
  • 박희팔
  • 승인 2018.05.29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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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삼대독자의 며느리로 들어온 시어머니는 후손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시어머닌 이 집안의 죄인이 아니다. 열일곱 살에 시집와 남편과 사년을 살았지만 도무지 애가 들어서질 않아 시집어른의 성화에 내외가 읍내 의원엘 갔다 왔다. 그리곤 이튿날 남편이 헛간 들보에 목을 맸다. “그러니까 남자 쪽에 문제가 있던겨.” 동네서 수군대고 시집어른들도 침통한 채로 나날을 보내는가 하면, 며느리인 시어머니는 자신의 슬픔이나 기구한 운명을 뒤로 하고 무엇보다도 집안의 대가 끊긴 것을 마치 자신의 죄인 양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 그 6년 후 시집어른이, “아무래도 양자를 들여야겠다. 일찍이 혼자된 네 작은어머니가 둘째를 양자로 준다고 했어.” 이래서 조카양자를 했는데, 이 양아들이 장성해 결혼을 했다. 하여 시어머니가 된 것이다. 한데 이 양아들 내외가 6년이 넘도록 소생을 보지 못한다. 그러니 시어머니도 그러려니와 며느리가 안절부절 노심초사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위치를 너무도 잘 아는 며느리다. 여러 면으로 짚어본 며느린 아무래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신랑 몰래 친정어머니와 같이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예상대로 여자 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당사자도 당사자이려니와 친정어머니의 실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얘, 이런 마당에 너 마음 단단히 먹어라. 네 마음만 단단하다면 뒷일은 이 에미가 처리해볼 게야 알았지!” 하여 며느린 사실대로 신랑에게 고했다. 한없이 착한 신랑은 한참을 침울하게 있더니, “당신 마음 단단히 먹어. 행여 딴 마음 가지면 안 돼. 양자 들이면 되니까 아무 걱정 말어 알었지!” 이런 말을 친정어머니께 하니, “아니다. 남자구실은 멀쩡한데 양자가 어인 말이냐 내 알아볼 데가 있으니 그리 알고 재차 얘기지만 네 마음먹기에 달렸다 무슨 말인지 알았지?” 그리고 한 달포 후 친정어머니로부터 다녀가라는 전갈이 왔다. “너도 알라 세거리집 종진이, 그 종진이가 혼인해 아들 하나 낳고 나이 사십 문턱에서 죽지 않았냐. 그 종진이댁이 혼자 된지 삼년인데 서른여섯 살이다. 네 신랑이 마흔 중반이지만 남자는 육칠십이 돼도 남자구실을 한다하고 종진이댁은 아직 서른 중반에다 낳던 자리이니 후손 보는 데는 염려 없다. 인제 네 맘먹기에 달렸어 어떠냐?” “근데 종진이댁 편에선 허락한 거야?” “당사자도 의향을 보였고 그 시집에서도 마땅한 자리라면서 애는 그 시댁어른들이 기르겠으니 걱정 말라고 하드라.” 하여 며느린 장고 끝에 시어머니에게 이를 먼저 말했다. 시어머닌 한참동안 묵묵부답이더니, “니나 내나 기구한 운명은 똑 같구나. 하지만 외동서 자리가 있다니 양자를 들이는 것보다는 백번 낫지 않느냐. 남의 집 핏줄이 아닌 집안의 핏줄을 잇는 것이니까.” 하는 거였다. “‘외동서’ 라니요?” “일이 성사된다면 그쪽 아낙과 너와의 관계를 ‘외동서’라 하는 것이야. 집안 형제간의 동서가 아닌 바깥의 동서라는 말이지.” 그래서 이번엔 신랑에게 은근히 이 사실을 말했다. 그랬더니 신랑은 껄껄껄 웃더니, “나한테 소실을 얻어준다고 거 좋지. 열 여자 싫어할 남자가 어딨어. 그것도 마누라가 자진해서 말이지, 허허허!” 하고는 이내, “당신 농담이지 나도 농담이야 그런 소리 당최 하지 말어!” 하는 거였다. 그래서 며느린 정색을 하고, “어머님도 말씀하셨어요. 당신이 멀쩡한데 양자보다는 내 핏줄이 낫지 않느냐고, 그러니 내 말대로 해요. 내 이런 결심 허술수루 듣지 말아요!” 그리고도 몇 날 몇 칠을 두고 설전에 설전을 거듭하다 급기야 결정을 보았다. 하여 지금의 외동서를 맞아들인 것이다.

새 사람은 이 집에 들어와 첫아들을 낳고 내리 딸 둘을 낳았다. 손주를 보고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남편도 환갑을 못 맞고 뇌일혈로 세상을 떴다. 며느리는 이제 이 집의 가장이 되었다. 식구 어느 누구도 이 가장의 말이나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일이 없다. 특히 들어온 외동서는 이 가장을 하늘처럼 모신다. 전 시집에 두고 온 아들을 데려다 장가보내고 한 동네로 살림차려주었을 뿐 아니라 그 소생들을 친손자손녀처럼 귀애 주는 것이다. 또한 이 집 대를 잇게 된, 직장 따라 충주에 나가 사는 아들내외는 이 가장을 어머니, 어머니! 하며 지극정성으로 받든다. 이 아들도 남매를 두었다. “성님, 충주 애하구 여기 애가 이번 성님 팔순에 성님하구 나하구 여행 보내준다지유?” “그러게 말여 자네가 애들은 잘 낳았네. 고마워!” “아유, 다 성님 애들이지유.” 이러한 걸 다 아는 동네사람들이다. “외통세(외동서)가 형제동서보다 더 낫다고 하더니 정말 그려, 늘그막에 서로 의지하며 한 집에서 사니 외롭지 않구 얼마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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