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겸 청주시 청원보건소 영하보건진료소장

청주시 청원보건소 영하보건진료소장 장은겸

“소장님! 가슴에 방망이가 있어서 가끔씩 막 두들겨 패는 것 마냥 아파요.”

이런 중요한 사실을 이제야 이야기하시다니.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이 의심돼 당장 사망할 수도 있는데 아팠다 가라앉고 해서 크게 신경을 안 쓰셨던 모양이다. 응급시술을 받고 회복돼 퇴원하던 날 “소장님이 날 살렸다”라며 그동안에 일을 소상히 이야기하시며 감사함을 전하신다.

“소장님! 일하다 와서 옷에 땀 냄새도 나고 장화 벗기도 힘든데 얼른 삭신 아픈 데 먹는 약 좀 주셔요.”하시는 분도 있고 어제 밭에 쪼그리고 앉아 고추 순을 땄더니 다리가 아프다며 물리치료를 하러 온 어르신도 있다. 항고혈압제를 가지러 오신 숙자 어르신과 순덕 어르신은 이야기를 나누며 호로록호로록 커피를 마신다. 시끌시끌한 어르신들의 소리를 뒤로하고 급한 일부터 해내느라 분주하게 손을 움직인다.

보건진료소에 근무한 지난 7년여의 시간을 돌아본다. 참으로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보건진료소는 의료취약지역에 배치받은 간호사가 진료 및 질병예방, 건강 증진 등을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기관이다.

진료소는 그야말로 어르신들의 ‘쉼터’이다. 진료를 받고 약을 받아 가기도 하지만 마실 오시는 분들이 더 많다. 홀로 우두커니 방 지키느니 사람 구경한다며 이야기보따리를 하나 가득 안고 오신다. 시집살이의 아픔을 이야기하시다 펑펑 울기도 하고, 새끼들 키우며 즐거웠던 이야기하시며 웃기도 한다. 못 입고 못 먹었어도 한 살이라도 젊었던 그 시절이 고생스러웠지만 살맛이 났다고 한다. 서로 맞장구치며 이야기하며 가슴 가득한 화병도 치유하고 가신다. 손에 박힌 선인장 가시 제거하러 오시고, 마음이 아파도 오신다. 언젠가 119 구급차가 마당에 들어서는 걸 보고 깜짝 놀라 나가보니 어르신이 막무가내로 진료소로 가자고 해 모시고 왔단다. 벌에 쏘여서 눈이 퉁퉁 부어 눈도 못 뜨시는 와중에도 다른 데 가도 소용없고 우리 소장님이 다 알아서 날 살려 줄 거라 하셨단다. 급하게 병원으로 갈 상황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어르신들은 진료소만 오면 다 해결되는 줄 아신다.

그뿐인가. 정이 많은 분들이다 보니 가져오시는 것도 많다. 어떤 날은 강아지 새끼 줄 테니 키워보라며 가져오신 할아버지도 계시고, 혼자 먹는 것이 싫다며 점심같이 먹자 시며 상추 한 바구니 들고 진료소로 출근하시는 분도 계신다. 진료소 텃밭의 부추 얼른 뜯어다 장떡을 만들고 달걀을 꺼내 프라이도 만들어 함께 먹으면 수지맞은 날이고 아주 꿀맛이다.

많은 날들을 그분들과 함께 보낸다. 보람되고 행복한 시간들이 있는가 하면 가슴 아픈 일들도 있다. 늘 얼굴 보여 주시던 분이 한동안 안 오시면 변고가 생긴 것이다. 어느 어르신은 요양원으로 가셨다 하고, 또 어떤 분은 돌아가셨다 하고, 이런 소식이 들릴 때면 한참 동안 가슴이 아프다.

이곳은 내 일터의 개념을 뛰어넘어 함께 삶의 희로애락을 나누는 곳이 아닌가 싶다. 자식인 양 생각해 주시며 정을 주시는 어르신들이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이분들이 있어 행복하다. 이곳에서 건강 지킴이로 근무하는 동안 이분들의 몸과 마음을 살피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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