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UPDATED. 2018-12-16 21:05 (일)
이 길에 서서 / 유영선이 만난 사람 - 김준권 목판화가
이 길에 서서 / 유영선이 만난 사람 - 김준권 목판화가
  • 유영선
  • 승인 2018.10.09 2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중동靜中動묵언默言 속에 산처럼 그가 있다… 아니, 그가 산처럼 있다

 먹색은 고요하고 여백은 맑고 온유한…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배경된 수묵판화 ‘산운’山韻 작가

1천년 역사 목판화 소멸에 대한 눈뜨임… ‘나무에 새긴 35년’ 전시회로 목판화 ‘다시보기’ 기획



산처럼 그가 있었다. 아니 그가 산처럼 있었다.

구름인 듯 안개인 듯 겹겹이 이어진 산능선 위로는 작은 새 세 마리. 정중동靜中動이다. 먹색은 묵언처럼 고요하고 흰색은 물속처럼 맑고 온유하다.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 시 판문점 평화의집에 내걸려 눈길을 끈 작품 ‘산운山韻-0901’이다.

산운의 작가를 만나기 위해 ‘김준권-나무에 새긴 35년’전시가 열리는 진천읍 백곡로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을 찾았다. 이른 시간임에도 전시관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쉼없이 이어졌다.



-전시를 축하합니다. 지역에서 이렇게 온전히 목판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지역민들에겐 큰 행운입니다.

“사실 목판화가 우리와 가까운 미술장르 중 하나인데 그동안 사람들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죠.”

목판화 얘기가 나오자 금세 그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목판화가 김준권 씨(63). 한국목판문화원 원장. 목판대학 교수. 중국 루쉰미술대학 목판화 연구원. 목판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로부터 목판화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목판화의 진수라면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팔만대장경이죠. 대동여지도는 목판에 그림을 그려 그 많은 갯수를 연결해서 지도를 만든 것이고, 팔만대장경도 불경을 8만개가 넘는 나무판에 새겨 책을 만든 것이죠. 그런 면에서라면 이곳 청주도 직지의 고장으로 인쇄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죠. 이런 것들이 바로 고전 판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문화가 서구화되면서 우리 것을 놓치고 중단이 됐습니다. 현대사 자체가 너무 빨리빨리 흐르니까 압축문화로 선진국 따라잡기를 하느라 목판화가 소외된 거죠.”

-굳이 목판화를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도 원래는 서양화를 전공,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었죠. 그런데 학교 교육이 서구편중이 되면서 우리 것이 없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어요. 제 또래가 유학1세대예요. 갑자기 대학들이 늘어나면서 유학갔다 온 친구들은 모두 교수가 되었어요. 동기 중에 19명이 교수니까요. 그들은 목판화를 할 이유가 없었지요. 자연히 서구미술이 주류가 되었어요. 그 시절엔 목판화는 동네 서각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폄하했고, 대학쯤 나왔으면 동판이나 석판을 해야지 목판이 뭐냐고 했었으니까요. 그런데 문득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000년 역사를 지닌 목판화가 사라져 간다는 것에 대한 눈뜨임이라고나 할까요.”

-목판화의 뿌리는 역시 동양이겠죠.

“그렇습니다. 목판화를 만든 것은 중국이죠. 그것이 우리에게 왔고,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일본은 17세기 에도시대에 자기들 방식으로 우끼요에(浮世會)라는 목판화 방식을 만들었고 18세기에 네덜란드로 넘어가 프랑스 인상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일제가 팔만대장경을 가져가려고 그렇게 애를 썼던 것은 우리판화의 우수성 때문이지요. 옛날 다식판이나, 컬러로 찍은 시전지는 지금 봐도 예뻐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결정적으로 현대교육에 매몰돼 끊긴 겁니다. 70년대에 진짜 우리식의 목판화가 있었어요. 박완서의 소설 ‘나목’의 주인공인 박수근이라는 걸출한 작가가 나목을 단순화해서 먹으로 찍었습니다. 단순함과 명료함이 붓칠과는 다른 분위기로 나타났지요. 그러다가 80년대 들어 목판화는 운동미술로서 눈길을 끌기 시작했어요.”

-전시회 제목이 ‘나무에 새긴 35년’이던데 그러면 35년이 바로 우리나라 현대 목판화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런셈이죠. 개인적 욕심이지만, ‘목판화 다시보기’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전시를 두 차례에 걸쳐 나눠서 하고 있습니다. 1부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작업한 작품들을 ‘사의寫意-1’, 2부는 1985년부터 2006년까지 작업한 작품들을 모아 ‘사의寫意-2’로 기간을 달리해서 전시합니다. 이번 작품들은 제 개인적인 역사지만 목판화의 시대상과 함께 하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DNA가 있습니다. 아무리 센 바람이 불어온다 해도 사라지지 않는 DNA지요. 지난 35년간 제 작업은 목판의 친근한 울림을 통해서 우리의 DNA를 깨우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판화를 보면 너무도 섬세해서 수묵은 수묵대로, 채묵은 채묵대로 이게 과연 판화일까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작업방법을 듣고 싶습니다.

“원래 판화란 복제죠. 같은 작품을 수없이 찍어낼 수 있는 장점을 지닌. 그런 의미에서라면 제 작품은 분명 판화지만 유형이 조금 다른 판화입니다. 서양판화와 제 판화가 다른 것은 바로 재료와 판수의 차이입니다. 저는 주로 한지에 먹과 물감을 사용하는데요. 먹은 은은한 대신 스며드는 특성이 있어요. ‘산운’의 경우 그 성질을 이용해서 찍은 것인데 저 한 작품을 위해 판수를 48개 만들어 60회를 찍었습니다. 서양미술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작업을 이해못해요. 미련하게 왜 그러느냐? 분석해서 한번에 찍지. 제가 미국에서 전시를 할 때 집중적으로 받은 질문이 이런 거였어요. 판화는 판화인데 자기들 범주로는 해석이 안된다. 번지는 것을 이해 못하겠다. 이런 것은 판화가 아니지 않느냐였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지요. 당신들이 했던 판화의 전부는 일란성 쌍둥이 만들기 같은 것, 그런데 이란성 쌍둥이도 있지 않느냐. 확장해서 이해해보라. 당신들이 가꿔온 서구미학이 있다면 우리가 수천 년 해왔던 동양의 미학도 있다. 같이 만났을 때 세계의 미학이 풍부해지는 것이다. 판화에 대한 생각을 넓혀라.”

-그들에겐 낯선 충격이었을 것 같네요.

“그렇죠. 그들은 검은색을 내려면 롤러로 검은색잉크를 한번에 밀면 되는데, 저는 수없이 먹을 칠해서 찍어야 원하는 농담濃淡이 다른 검은 색이 나오니까요. 원래 검을 현玄은 감성적인 아우라, 깊은 맛을 내는 색으로 서양의 불랙black과는 분위기가 다른 색깔이지요. 그 원리는 날염과 우리물감의 차이와 같습니다. 화학물감인 날염은 한 번에 원하는 색을 얻을 수 있지만 쪽이나 치자 같은 우리나라 염색은 천을 담갔다가 말렸다가 다시 담그기를 반복하면서 점점 진한 색을 얻거든요. 그것이 바로 스며듦입니다.”

-스며듦을 판화에 적용한 것이 놀랍습니다. 그런데 60회씩이나 찍다보면 오차가 나지 않을까요?

“고도의 신경을 써야 합니다. 한지가 참 놀라운 종이인데, 종이가 말랐을 때는 절대 안찍힙니다. 이것을 물에 적셔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데 문제는 물에 적시면 종이가 늘어나는 것이 단점이에요. 무려 1cm가 늘어납니다. 한번 찍고, 말렸다가 다시 물에 적셔 찍기를 반복하려면 정확히 핀이 맞아야하기 때문에 집중해야 합니다. 또 나무도 골라야 합니다. 나무에 따라 안료가 스며들기도 하고 떠있기도 하고 뱉어내기도 하거든요. 한지로 찍을 때면 이런 나무의 성질과도 맞춰야 합니다. 팔만대장경은 토종인 벚나무로 만들었죠. 유성은 나무와는 상관이 없어요. 어느 나무든 요철만 있으면 되니까요. 요즘 저는 유성물감 작업도 병행하고 있는데 유성은 보통 6번 정도 찍고 수성은 8개 판을 만들어 12개를 찍고 있어요.”

-진천에 정착한지 꽤 오래되셨죠? 고향이 아닌 이곳으로 오신 계기가 있으신지요.

“과거 신문사를 일도일사一道一社로 정리하던 어두운 시기가 있었죠. 개인의 삶도 비슷했습니다. 운동권 해직교사로 도망다니다가 91년에 이곳으로 왔습니다. 이곳 진천 백곡이 참 좋은 곳이에요. 천주교를 전파한 배티성지나,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 산적들에게 구월산 못지 않게 좋은 터하고 나오는 것을 보면 숨어살기 좋은 곳이죠. 제가 또 역사를 좋아하는데 이곳이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이자 평론가였던 강세황의 묘소가 있는 곳이라서 마음에 들었고요. 그런데 살다보니 요즘은 진천이 교통의 요지가 되었어요.”

-중국으로 유학을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판화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남들은 유학을 가려면 서양으로 가야지 웬중국이냐고 했지만, 저는 목판의 진수를 배우고 싶었어요. 뤼순魯迅대학으로 가서 중국전통 목판화인 수인水印 판화를 집중적으로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이 있듯, 그곳에서 저는 우리 것을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4년간 공부를 마치고 97년 돌아오니 공교롭게도 IMF가 왔더라고요. 저는 다시 진천으로 들어와서 ‘목판문화연구소’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세월이 벌써 20년이 되었네요.”

-‘산에서’나 ‘숲에서’ 등의 풍경들이 낯익게 느껴집니다. 예전의 ‘엉겅퀴’ 같은 작품도 좋지만, 관조적이라고나 할까, 맑고 부드럽고 섬세한 요즘 작품들이 눈에 드네요.

“좋아하는 것은 연식에 따라 달라지지요. 전에는 채우려고 노력했는데 요즘은 빈공간이 많은 것이 좋아집니다. 제 작품 속 풍경들은 비산비야非山非野지요. 산인지 들인지 구분이 어려우면서 부드러운 선을 만드는 곳. 전라도는 툭 터져 산이 멀고, 강원도 콱 막혀 보이지 않고 서울은 맨 아파트인데 비해 충청도는 산등성이 나무모습까지 다 보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곳을 좋아합니다.”

-작품 산운山韻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산운은 발표된지 10년 된 작품입니다. 백두대간은 한민족의 호랑이 등뼈같은 곳이죠. 그 등뼈에서 정맥이 이어지고, 정맥은 다시 산으로 이어지고, 산 사이에 강이 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죠. 산과 강물은 흐르고 이어져야 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사는 땅, 그 울림의 원초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작업은 언제 하시는지요.

“작업은 주로 낮에 합니다. 저는 밤에 작업을 하면 꼭 후회를 해요. 밤은 객관화되지 못하고 착각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감을 잡는데는 밤이 좋은데, 완결을 하려면 낮이 좋아요. 컬러도 낮의 자연광이 좋고요.”

그의 작업공간을 보고 싶어서 그를 따라 백곡면 사송리 두주마을로 갔다.

작업실은 마을 옆 밭길을 지나 전망좋은 산중턱에 있었다. 탁 트인 전망이 영락없는 그의 작품 속 풍광과 빼닮았다.

작업실에 들어서니 수많은 물건들이 주인의 성격처럼 깔끔히 정리돼 있었다. 작업대에 현재 작업중인 판들이 물감과 함께 놓여있어서 그가 계속해서 작업을 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작품정리대와 재료들, 작품을 걸어둔 아담한 전시관과 찻방. 작가의 삶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혼자 지낸다고 했다.

“이곳서 아이들을 낳았어요. 우리 아이들에겐 이곳이 고향인 셈이죠. 아들하나와 딸둘인데 공예와 경영학을 전공했어요. 아내(이효정)는 이대무용과 출신으로 교직에 있으면서 저대신 살림을 책임졌지요. 저는 미술이 생업인 미술자영업자입니다. 그래서 신선처럼 말하는 것 별로 안좋아해요. 배고프게 살아봤어요. 처음 여기와서 밭일도 했어요. 동네 어른들이 저를 보면 저 친구 우리 고추밭에 일하러 왔던 사람이다라고 말하죠.”

-건강은 어떠신가요.

“저 몸 안좋아요. 2014년 쓰러져서 심장수술을 받았어요. 지금은 관리하고 있지요. 그래서 작업시간을 출퇴근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술 담배는 안하고 제가 유일하게 운동하는게 공치는 것인데, 그 시간만이라도 작업에서 손을 놓으려고 골프장엘 갑니다.”

-꿈이 있으신가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지닌 우리나라에서 목판에 매달리는 다음세대가 없어요. 그래서 후세대들과 연결 고리를 갖고자 목판에 관한 플랫폼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뜻맞는 사람들과 함께 기회가 닿는대로 우리나라 목판화의 미래를 위해 일할까 합니다.”

인터뷰중에 전화가 왔다.

청와대 사랑채에서 남북정상회담 기록물을 전시하는 특별전에 판화 ‘산운’을 함께 전시한다며 개막일 방송에 출연해달라는 전화였다. 서울 롯데백화점 청량리점 롯데갤러리에서도 ‘김준권-산운山韻'전이 3일부터 28일까지 열린다고 했다. 역시 산운이 그의 대표작이 된 듯 하다.

목판화가 김준권. 투명하고 빛나는 색채를 목판으로 되살리는 연금술사. 그가 언제까지나 숨쉬는 산처럼 우뚝하게 우리 곁에 남아주기를 빈다.



목판화가 김준권 약력

* 1956년 전남 영암 출생

* 1982년 홍익대학교 미술교육과(서양화)졸업

* 1994년 1997년 중국 루쉰 미술대학 목판화 연구원

* 1996년 중국 루쉰 미술대학 명예 부교수

* 1997년 한국 목판문화 연구소 개설

* 2017년 한국 목판문화원장


▲ 개인전 28회

* 1983년 서울・ 그림마당 민, 대구

* 1984년 서울・ 그로리치 화랑

* 1992년 서울・ 그림마당 민, 전주・온다라 미술관, 부산・ 갤러리 누보

* 1994년 서울・ 현화랑, 부산・갤러리 누보

* 1995년 일본 동경・나까지마 갤러리, 중국 심양・노신 미술학원 미술관

* 1997년 서울・ 이십일세기 화랑, 대구・ 동원화랑

* 1998년 미국 L.A. 컨벤션센터 (98코리아엑스포) ,서울・도올 갤러리

* 2000년 서울・Artside Net , 전주・얼 화랑

* 2004년 서울 공평 아트센터

* 2005년 충북 아트페어 특별전(청주 예술의전당)

* 2009년 ART SIDE Beijing(중국 북경)

* 2012년 서울 인사아트센터

* 2014년 "나무에 새긴 30년" 김준권 목판화전 (서울 아라아트센터 전관)


▲ 주요 단체전

*1982년 2918(서울・관훈 미술관)

*1986,7년 한국 민중판화전(오사카, 뉴욕)

*1992년 3인 판화전(독일, 쾰른・ 안파리나 화랑)

*1995년 전국 민족미술연합 창립전(서울・미술회관)

*1996년 아시아 판화 미술축제(부산・문예회관 전시실)

*1997년 오늘의 한국 목판화전(중국 심양・노신미술학원 미술관)

*1998년 세계의 장서표전(중국 심천)

*2000년 서울 판화 미술제(서울・시립미술관)

*2003년 한국의 숨결판화전(뉴욕, 버팔로 앤더슨 갤러리)

*2005년 한중일 목판화전(서울・일민미술관)

동방에서 부는 바람(미국・워싱턴)

모리 다쿠로. 김준권 판화 2인전(일본 나가노・히도 뮤지엄)

*2006년 아시아는 지금 전 (서울・중국 베이징)

*2011년 판화와 한지등 전(원주 한지 테마파크 기획 전시실 원주)

*2012년 교과서 속 우리 미술(서울대학교 미술관)

▲주요 작품 소장처

*국내 : 국립 현대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 시립미술관, 상명대 박물관, 현대중공업

*해외 : 중국 미술관(북경), 신주神州 판화 박물관(중국 사천) 뤼순대 미술관(중국 심양), 당고 博物館(중국 천진), 쾰른 동아시아 박물관(독일 쾰른)

주소 : 365-812 충북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 11번지 한국목판문화연구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충청대로 103 (율량동)
  • 대표전화 : 043)218-7117
  • 팩스 : 043)218-7447,7557
  • 창간 : 1991-12-29
  • 제보전화 : 043)218-722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원중
  • 명칭 : 동양일보
  • 제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 등록번호 : 충북 가 00003
  • 등록일 : 1991-12-27
  • 발행일 : 1991-12-27
  • 회장 : 조철호
  • 발행/인쇄인 : 유영선
  • 편집인 겸 편집국장 : 김영이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ynews@dy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