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생일(生日)은 세상에 태어난 날이다. 그러니 경사스러운 날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지난날 민가에선 ‘생일맞이’ 라는 걸 했는데, 생일날 하늘과 땅의 신령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무당이나 점치는 맹인으로 하여금 복을 빌게 하는 일이다. 또 ‘생일불공’ 도 드렸다. 즉, 생일날 집이나 절에 가서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이날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 잔치를 베풀었는데 이걸 생일잔치라 한다. 잔치라는 게, 경사가 있을 때 음식을 차려 놓고 여려 사람을 청하여 즐기는 것이니 생일날엔 생일상을 차려놓고 식구들 뿐 아니라 여러 일가친척들, 이웃친지들을 청해 음식을 먹으며 즐겼다.

그런데 이중에서도 아침엔 생일상(생일잔치를 하기 위해 음식을 차려놓은 상)을 차려놓고 식구들이나 가까운 친척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즐겼고, 점심때나 저녁때는 친지나 이웃들을 청해 잔치를 베풀었다. 이렇게 ‘생일잔치를 베푸는 때’를 ‘생일빠낙’ 이라 한다. 그러니까 생일빠낙은 아침, 점심, 저녁 이렇게 때가 다를 뿐 모두 생일날 당일에 이루어졌다. 생일의 날짜를 앞당기거나 지나놓고 행하는 일이 없었다는 말이다.

헌데, 지금은 이 생일빠낙이 꼭 당일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니 거개가 그러해서 일반화 되고 있다. 지나서는 하고 있지 않지만 날짜를 앞당겨서 토요일이나 일요일 아니면 공휴일에 행한다. 생일날이 평일이면 직장에 또는 바쁜 생업에 매어있기 때문이다.

문상 씨는 이게 못마땅했다. 생일날을 앞당기다니. 그러면 그날은 태어난 날이 아니다. 그러니 이건 아니다. 해서 그는 꼭 생일잔치는 그가 태어난 바로 그날 지낸다. 식구들이나 타인들이 고집을 부린다고 성화를 대도 듣질 않는다. “‘생일’ 하면 태어난 날인데, 태어난 날 생일을 치러야지 왜 엉뚱한 날 해. 내 말 틀려?” 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그의 생일이 어쩌다 맞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나 공휴일이 아니고 평일이면 집에 있는 식구들끼리만 생일을 치렀다.

그런데 요 몇 년 전부터는 자신의 생일날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생각해 보면 내 생일은 내가 정하거나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내 부모가 정하고 만든 것이다. 즉 아버지가 나를 잉태시키고 나를 잉태한 어머니는 나를 열 달 동안이나 당신의 뱃속에 조심조심 간직하고 있다가 마침내 그 혹독한 산고 끝에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 그러니 내 생일은 내가 스스로 태어난 경사스런 날이 아니라 나를 만들고 태어나게 한 부모의 기념일인 것이다. 그러니 이 날은 마땅히 나를 세상에 나오게 한 부모의 은공에 보답하는 날이어서 상을 차려 잔치를 베풀어 드려야 마땅하지 않는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그는 그때부터 그의 생일엔 부모를 위해 상을 차리고 잔치를 열어 동네사람들을 청한 자리에서 양 부모를 번갈아 업고 돌면서 즐겨 왔다.

“생일날 잘 먹으려고 이레를 굶는다더니 내가 그 짝으루 문상이 생일날 잘 먹을라구 어제저녁부터 아침까지 허술하게 먹었더니 출출한 것이 기운이 없어.” “아이구 지나치게 미리 기대하는구먼. 허긴 전엔 제 생일날 차리는 음식은 간편해서 제 식구끼리만 먹어 치우더니 요즘은 전과 달리 제 생일은 제 어머니가 고생한 날이라며 어머니 노고를 생각해 음식을 나우 차려 동네사람들까지 청하니 기다려지고 기대할 만도 하지.” “하긴 문상이 그 사람 생각이 맞을런지두 몰러 사실이 그렇잖여. 누구나 자기가 세상에 나온 날은 자기 엄니가 고생한 날이고 그 덕분에 자기가 있는 것이니 얼마나 어머니가 고맙고 안쓰러운 날인가.” “그러게 말여. 제 아버지 살아계셨던 작년까진 제 생일날엔 양 부모께 지극정성이더니 이제는 홀로된 제 엄니가 저 낳아준 날이라고 제 생일잔치를 제 어머니께 모두 돌려드리니 참 대견햐.”

그래도 그는 자기 자식들에겐 일언반구 자기의 이런 생각을 강요하진 않는다. 다만 이런 말은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어려 철이 없을 땐 제 생일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또 또래친구들을 불러 축하를 받고 차려진 음식을 먹으며 떠들고 즐긴다. 마치 생일날은 제가 태어난 날이라 제 날이라고 여기는 것이지. 제가 누구 땜에 태어났으며 누가 나를 있게 했는지. 그리고 이 음식을 누가 어떻게 차려주었는지는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지. 하지만 너희들도 커가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생일날의 인식이 달리질 게야.”

문상이 그의 생일잔치는 여전히 생일빠낙을 고수하면서 동네사람들을 불러 어머니를 덩실덩실 업고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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