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KTX세종역 신설 논란 속에 충북에 희소식이 날라 왔다.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이 국정감사와 충북지역 국회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잇따라 (신설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이다.

김 장관은 지난 29일 열린 국정감사와 충북 출신 국회의원들과의 면담에서 “세종역 신설과 KTX 복복선 및 천안~공주 호남선 신설을 검토하지도, 추진하지도 않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교통행정을 책임지는 장관이 공개적으로 천명했으니 믿을 수밖에 없다. KTX세종역 신설을 저지하려는 충북 입장에선 일단 한시름 놓게 됐다.

충북은 더불어민주당 이해찬(세종) 의원이 선거공약으로 KTX세종역 신설을 들고 나올 때부터 반발해 왔다. 그런 이 의원이 여당 대표가 됐으니 상황은 더 꼬이게 됐다. 특히 그는 다음 21대 총선(2020년)에 불출마 선언까지 한 상태다. 강골의 이 대표가 이 눈치 저 눈치 안보고 정치 인생 마지막 작품으로 행정수도인 세종에 KTX역을 설치하겠다고 밀어 붙이면, 결과는 뻔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충북은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국토균형발전을 도모하고자 생긴 세종특별자치시의 관문역이자 호남선 분기역인 오송역의 근본적인 존재를 흔들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따라서 명분도 실리도 없는 KTX세종역 신설과 호남선 KTX 단거리 노선 신설 요구는 시간이 갈수록 지역갈등만 부추길 요인이 되고 있다.

KTX세종역이 생기면 오송역의 역할과 기능은 크게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충북도가 추진하는 강호축(강원~호남) 고속철도가 완성된다 해도 절름발이 역으로 전락할 것은 뻔하다. 당초의 천안분기역 계획을 백지화시키고 오송분기역을 일궈 낸 도민의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남기게 된다. 그런 만큼 오송역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에 전 도민이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복병이 생겼다. KTX세종역 신설만 막으면 된다는 충북에 호남선 천안~남공주 단거리 노선 신설이라는 거대한 암초가 등장했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꼴이다.

KTX세종역 신설에 찬성하는 호남권 의원들이 한술 더 떠 단거리 직선화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일각에[선 충북이 괜히 맞장구를 쳐 정치쟁점화 할 필요가 있느냐는 신중론도 제기하고 있다. 그래 봤자 호남민심만 자극시킬 뿐 득 될게 없다는 현실인식에서다. 이시종 지사나 충북 출신 국회의원들이 호남권 의원들과 적극 소통하면서 차분하게, 합리적으로 대응해 가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수 있다.

KTX세종역 신설과 호남선 단거리 직선화 신설을 모두 저지한다면 충북의 완승이다.

그런데 충북의 완승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가 문제다. 충북은 오송분기역을 천신만고 끝에 유치하면서 호남인들에게 적잖은 신세를 졌다. 천안~공주 대신 오송을 우회하면서 호남선 길이가 19㎞ 늘고 그에 따른 시간(5분)과 운임증가를 이유로 호남인들은 반대했다. 충북이 그 입장이었더라도 당연히 반대했을 것이다. 이때 노선 연장으로 늘어나는 운임은 면제해 주겠다는 당시 추병직 건설교통부장관의 약속과 충북사람들의 설득으로 오송분기역은 탄생할 수 있었다. 호남에서 끝까지 반대했다면 지금의 오송분기역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나 개통(2015년) 3년이 지난 현재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호남인들은 KTX 요금을 왕복 6000원 더 부담하고 연간 600억원을 공주~오송~천안 구간 철로에 깔고 있다고 한다. 호남인 입장에선 ‘× 주고 뺨 맞은 격’이라고 배신감을 느낄 거다.

김현미 장관의 말이 제발 허튼소리가 아니길 바란다. 그렇다고 김 장관의 말만 철석같이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유비무환이다. 호남권 국회의원들이 천안~공주 직선화를 들고 나올 개연성이 큰 만큼 신경을 곤두세우고 대비에 소홀해선 안된다. 만약 그들의 요구대로 직선화가 된다면 충북으로선 최악이다. 직선화 노선에 세종역 설치는 불문가지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공개적으로 거론할 수야 없겠지만, 세종이 요구하는 KTX역을 주고 호남선 직선화를 막는 차선책을 강구하는 것도 난제에 대처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는 호남인들이 갖는 배신감을 약속 이행이라는 정책적 배려를 통해 치유해 줘야 한다. 충북도도 팔짱만 끼고 있어선 안된다. 그들을 끌어안지 않으면 고립무원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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