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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세이/ 휴대폰과의 이별이 준 선물
동양에세이/ 휴대폰과의 이별이 준 선물
  • 남성희
  • 승인 2018.11.08 20: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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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희 청주시세정과주무관
 
남성희 <청주시세정과주무관>
남성희 <청주시세정과주무관>

 

올가을 긴 연휴를 이용해 오랫동안 꿈꿔온 나만의 휴식을 위해 유럽으로 떠났다. 출발 전 몇 달 동안 행복과 기대감으로 부풀었고 내 손안의 컴퓨터인 휴대폰과 한 몸이 돼 여행 일정을 계획했다. 열흘 이상의 일정이라 전날부터 짐을 넣었다 뺐다하며 새벽부터 일어나서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공항으로 향했다. 성수기의 비싼 비용 탓에 경유를 택한지라 20시간의 비행에 녹초가 된 몸으로 프랑스에 도착했다. 몸이 물에 빠진 솜처럼 무거웠지만 내일의 완벽한 여행을 위해 좀 더 세세한 코스를 짜려고 또다시 휴대폰 검색에 집중했다.

본격적인 여행 이틀 차 파리에서 네 시간 넘게 걸리는 몽 생 미셸에 가기 위해 새벽 6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전날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한 탓에 지하철역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 구글 지도를 켜고 역에 도착해 평소처럼 왼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오른손으로 지하철 티켓을 발권하던 중이었다. ‘순삭(‘순간 삭제’ 또는 ‘순식간에 삭제됨’을 줄여 이르는 말)’이라 하던가.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사람이 내 휴대폰을 낚아채 달아나는데 비명을 지르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국에서도 길치라고 불리는 내가 말도 안 통하는 해외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두려움에 한동안 꼼짝할 수 없었다. 가봐야 할 맛집과 블로거들이 강추한다며 올린 여행 스팟들, 프랑스와 독일에서 이동할 기차표 등 휴대폰에 캡처하고 저장해 놓은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한꺼번에 마구 뒤엉키는 느낌과 함께 우울함이 엄습해왔다.

심호흡을 하고 잠시 앉아 마음을 가다듬었다. 내 오랜 꿈이었던 여행을 휴대폰을 잃어버렸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다 사람 사는 곳인데. ‘할 수 있다’를 되뇌며 우선 가까운 안내센터로 가서 파리의 지도를 챙겨들었다. 관광도시인 만큼 지도 곳곳 중요한 관광지에 별 표시가 돼 있었다. 개선문부터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파리의 아름다운 하늘과 바람을 느껴봤다. 걷다가 힘이 들면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빤히 바라보기도 하고 배가 고프면 눈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갓 구운 빵을 사서 내가 꿈꾸던 파리지앵이 된 것처럼 즐겨보기도 했다.

파리에서 잊지 못할 5일을 보낸 후 테제베를 타고 스트라스부르로 향했다. e티켓이 없어 재발급을 받는 과정에서 해프닝도 있었지만 친절한 직원 덕에 기차를 탈 수 있었고 지금 그 직원을 추억하며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슬프게도 영어 지도는 없었지만 안내센터에 가서 지도를 받아들었다. 그래도 도로마다 표지판이 잘 돼 있었고 역시나 유명한 곳은 표시가 돼 있어서 찾아가는 데 무리가 없었다.

스트라스부르는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도시다. 감수성 풍부하던 소녀 시절 책으로만 접했던 소설 속의 슬픔과 감동을 순수하게 느낄 수 있었다. 종이 지도를 미리 훑어보고 내가 가야 할 곳을 표시한 후 한 블록 씩 걸어가면서, 구글 지도만 보면서 거리를 보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구글을 보면서 찾아가다 보면 내가 가는 길을 바라보는 게 아니고 휴대폰만을 보게 돼 그 거리를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조금 전에 지나갔음이 분명한 곳도 헷갈릴 때가 있는데 거리 이름을 보면서 지나가니 내가 지나간 자리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았다. 이후 콜마르를 거쳐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하이델베르크, 쾰른까지 매 역에 도착할 때마다 지도를 받아들고 길을 익히고 여행을 계속했다. 그냥 내가 가야 할 곳이 목적지가 아니라 내가 가는 곳이 나의 목적지였다. 블로거들이 올려놓은 곳들을 숙제하듯이 찾아가 인증샷을 남기는 그런 여행이 아니라 내 마음이 가고 내 발걸음이 가는 데로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만난 골목길조차도 무척 아름다운 내가 꿈꾸던 유럽이었다. 그렇게 아날로그 배낭여행을 즐기고 무사히 귀국을 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다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 열흘 정도 시간이 걸렸다. 신기하게도 그런대로 지낼 만했다. 오히려 주변에서 연락이 안 돼 답답하다고 난리를 쳤다.

평소보다 여행에 대한 여운도 길었다. 휴대폰이 있었다면 시간이 날 때마다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며 이 장소에 있으면서도 다음 장소만을 생각하고 내가 자리한 곳의 진정한 감동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음에는 집에 휴대폰을 두고 가볼까 생각 중이다. 진정한 나의 소확행(일상에서의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가능한 행복·小確幸)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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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2018-11-10 00:40:21
추가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한 이야기의 책이 있어서 링크를 추가합니다.

[소매치기 당해도 괜찮아]
http://mobile.kyobobook.co.kr/showcase/book/KOR/140000026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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