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중원대교수

 

이상주/ 중원대 교수
이상주/ 중원대 교수

(동양일보) 금강석은 부서져도 금강석이고, 옥돌은 깨져도 옥돌이다. 옥돌은 차돌 속에 섞여도 옥돌이고, 차돌은 옥돌 속에 섞여도 차돌이다, 금은 똥통에 넣어도 금이고, 똥은 금통에 넣어도 똥이다.

용의 아들은 어려도 용이고. 지렁이는 어른이 돼도 지렁이다. 율곡은 살아서도 용, 죽어서도 용이다. 율곡을 만나는 사람은 용의 기운을 발한다. 율곡은 지역실정과 시대여건에 맞게 그 지방의 적임자를 선정하여 용의 기를 내리게 했다. 적임자가 없으며 태어나게해서 용의 기를 받게 했다. 이렇듯 율곡은 구곡문화의 지역균형발전을 추진 달성했다.

전남에 영광(靈光)땅이 있다. 용의 기를 받아 구곡문화를 융성케하고 조일전쟁 때 의병활동을 주도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정희맹(丁希孟 1536∼1596)이다. 그는 율곡 이이(1536~1584)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그의 출생지는 전남 영광의 오룡리(五龍里)이다. 영광(靈光)은 신령한 빛을 발하는 땅이다. 『주역』구오(九五)의 ‘비룡재천(飛龍在天), 이견대인(利見大人)’의 기가 서린 곳이다. 그래서 오룡리다. 우암 송시열(宋時烈)은 충북 옥천군 이원면 구룡촌(九龍村)에서 태어났다. 율곡같은 용의 기상을 받은 송시열은 율곡의 구곡정신을 발현하여, 화양구곡을 한국 최고(最高)의 구곡으로 완성케 했다.

정희맹연보에 다음의 내용이 있다. 정희맹은 선조 7년 1574년 39세 때 이이(李珥)를 찾아갔다. 이이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그대와 나는 동갑이며 또 겸하여 도우(道友)인데 즉 지금 천리 길을 와서 서로 만나니 또한 드물게 있는 일이다. 그런데 다만 직무에 얽매여 오직 초초함을 면하지 못함이 심하니 한탄스럽다. 내가 바야흐로 이미 돌아갈 뜻을 결정했으니 후에 모름지기 황해도 해주의 석담으로 나를 찾아오라’했다. 함께 7일 동안 함께 잠을 자면서 경전의 뜻을 강론하니 앞 시대 현인(賢人)이 발하지 못한 것이 많았다. 작별에 임하여 별장(別章) 즉 이별할 때 지어 주는 문장을 주며 다시 만날 뜻을 기약했다. 이와 관련하여 『한서문답록(漢西問答錄)』1권 있었는데 전하지 않는다”

정희맹은 율곡을 만나고 온 후인 1590년 54세에 용산구곡(龍山九曲) 9개 길의 이름을 지었다. 제1곡길이 이안곡(怡顔曲), 제9곡길이 식장곡(植杖曲)이다. 이 시기에 용산구곡을 정하고 용산구곡시를 지은 것으로 보인다. 제1곡이 읍청당(壓淸堂), 제9곡이 낙모대(落帽臺)이다.

1592년 임진년 57세에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4월 13일 관군이 계속 패망하자 사람들이 피난했다. 정희맹은 집안사람들에게 “전쟁의 피해가 온 나라에 있는데 어디로 도피한단 말이냐”하고 피난하지 않았다. 5월 장남을 종군(從軍)하게 했다. 영광군수 남궁견(南宮涀1538~?)이 정희맹을 개유장(開誘將)으로 삼았다. 6월 고경명, 김천일이 의병을 일으켰다. 이에 향교에 모의청(募義廳)을 설치하여 병사를 선발하고 곡식을 거두고, 창, 칼, 활, 화살을 만들어 두 진영에 보냈다. 그리고 방수지책(防守之策)16조를 지어 보냈다. 10월 의병을 일으켜 성을 지켰다. 정희맹은 임진란 초부터 매번 근왕(勤王)의 뜻을 가지고 있었으니 나이를 먹고 병이 들어 실행하지 못했다.

10월 18일 오성관(筽城舘)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정희맹을 맹주로 삼았다. 이 때 정희맹은 ‘오늘 의병활동을 하는 것은 이름을 날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하는 뜻으로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응종(李應鍾)을 도별장(都別將)으로, 강태(姜泰)를 부장(副將)으로 삼고, 이홍종(李洪鍾),이곤(李琨),신장길(辛長吉),이용중(李容中),임수춘(林遂春),정희설(丁希說)을 종사관(從事官)으로 삼았다. 피를 타마시며 맹서하기를 ‘무릇 우리 동맹한 사람들은 이미 맹서한 후 동맹을 위반하는 자는 참살할 것이니 선비의 기질을 분발하고 군인의 정서를 엄숙히 하라’고 했다. 11월 곽재우에게 군량을 보냈다. 1593년 계사년 58세 2월 남원과 양천에 군량을 보냈다. 1596년 61세에 서거했다. 이렇듯 용의 기를 받은 정희맹은 조일전쟁 때 국민으로서 유학을 공부한 선비로서 진충보국했다.

왜국은 전쟁의 시기를 잘못 잡았다. 임진년은 용의 어천기세가 극대한 해다. 왜인은 조선의 용을 이길 수 없다. 조선은 용비어천지국(龍飛御天之國)이다. 신라도 동해 호국룡이 보우하사 삼국을 통일했다.

용의 기를 받은 정희맹의 활약으로 인해 전남 영광(靈光)의 영광(榮光)은 영광(永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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