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시인

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동양일보) 한 해의 끝자락이다. 까치발을 하면 새해의 이마가 보이는 지점이다. 새해를 맞는 기대감으로 마음이 조금 여유로워지기도 하는 때다.

엊그제 맞은 성탄절의 느낌이 그랬다. 한 해의 끝, 12월의 마지막 축제로서 즐거움 속에서도 차분히 가라앉는 무엇이 있었다. ‘크리스마스(Christmas)가 어원으로 보면, 그리스도(Christ)와 미사(mass)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것이니, 그 속에 응축된 ‘섬김’과 ‘나눔’의 정신이 은근한 향기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가 종교나 이념을 떠나 전 세계 대다수 국가에서 ’해피-홀리데이‘로서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산타크로스처럼 ’섬김과 나눔‘의 사랑을 실천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섬이니/ 세상바다 한 가운데서/어둡도록 뒤척이는 외로운 섬들이니/따뜻한 눈빛 따뜻한 숨결이/더 간절히 깊어지는 그리움들이니‘

김은숙 시인은 ‘아름다운 동행’이란 시를 통해 섬김과 나눔이 필요한 이유를 들려준다.

우리는 (외로운 존재라서) 따뜻한 동행을 갈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 마음이 켜드는 등불이/이렇게 더욱 밝고 이렇게 따뜻하니/더불어 먼 길 가면서/그 곁에 머무는 마음 깊이 훈훈하겠네” 라며 시인은 ‘아름다운 동행’이 주는 위로와 치유를 전해주고 있다.



요즘 TV에서도 ‘아름다운 동행’을 느낄 수 있는 연말연시 기획물들을 많이 방영하고 있다.

# 어느 말기 암 환우들의 모임에서 세 살배기 아들과 다섯 살배기 딸을 둔 엄마가 말한다. “하느님, 제게 10년만 허락해 주세요. 딸이 여자임을 알 수 있는 나이 까지 만이라도, 아빠는 할 수 없는, 엄마로서 꼭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그것도 욕심이라면 어린 막내가 엄마를 기억할 수 있을 때 까지 만이라도.....제발”

끝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진 젊은 엄마의 검게 변한 얼굴위로 흐르는 눈물을 마지막 햇살이 비추고 있다. 딸을 가슴에 묻어야 하는 친정아버지의 오열은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바라보고, 고통과 마주하고, 다시 절망을 끌어 앉으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그들의 절박한 사연이 한편에서 진한 감동으로 밀려오는 것은 동병상린의 아픔을 나누는 환우들의 아름다운 동행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채워주려는 가족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 연말이면 어김없이 방영되는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는 8년 전 세상을 떠난 故 이태석 신부가 아프리카 수단에서 펼친 사랑의 기록이다. 당시 이태석 신부를 돕던 16살 소년, 토마스 타반 아콧(33)이 지난 21일 한국에 온 지 9년 만에 의사가 되어 꿈을 이뤘다. 고국에 돌아가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의 정신으로 살겠다는 포부를 밝혔고 모교 인제대학교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아름다운 동행으로 맺어진 열매가 크리스마스의 선물이 되어 우리를 훈훈하게 해주고 있다.

# 지난 10월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 ‘박지민’의 생일을 맞아 팬들이 ‘헌혈 릴레이’를 벌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750여 명 중 부적격인원을 제외한 585명이 헌혈에 참가했고 사은품도 2000여점을 기부했다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들을 ‘선행’으로 지원하는 성숙한 ‘팬덤 문화’야 말로 ‘아름다운 동행’의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 어느 간병가족의 사연이다. “여보, 다 잊어도 내가 당신 곁에 있어줄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제발 잊지 말아 줘” 최근 “간병살인‘이란 무섭도록 서글픈 사건이 알려지기도 하지만, 중증 치매환자가 된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순애보는 여전히 우리를 뭉클하게 한다.

36.5도, 사랑의 온도다. 새해에는 ‘더 간절히 깊어지는 그리움’으로 섬김과 나눔이 있는 ‘아름다운 동행’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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