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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숨겨진이야기23. 음성 감곡성당
우리동네숨겨진이야기23. 음성 감곡성당
  • 동양일보
  • 승인 2019.01.10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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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최초의 성당, 명성황후의 피난처
감곡성당 성모자상.
 

(동양일보) 오늘은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내겐 더 큰 채찍을 들고 스스로에게 엄중한 잣대로 지난날의 상처와 불온했던 일들을 결코 용서하지 말라고, 가장 낮은 자세로 살아갈 것을 두 손 모아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오직 당신을 위한 기도만 하겠습니다. 아프지 말라고, 아프더라도 조금만 아프게 해 달라고, 언제나 기쁜 일 가득하라고, 쏟아지는 햇살처럼, 밤하늘의 별처럼 매순간 빛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그 빛나는 풍경으로 세상을 밝히게 해 달라고, 그리고 당신과 나, 사려 깊게

삶의 향기로 가득하게 해 달라고 오직 당신을 위한 기도만 하겠습니다. <졸시 ‘나의 기도’>



도시의 밤은 깊고 느리다. 몸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진흙 밭을 걷듯 괴로움이 밀려온다. 마천루 숲 사이의 작은 아파트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는 주름진 부인과 어여쁜 딸들을 본다. 이들에게 새 날의 희망이 깃들 수 있을까. 고립무원의 어린 양들에게 삶의 향기를 줄 수 있는 애비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부끄럽고 난망하다. 그래서 기도를 한다. 나를 위한 기도는 사치다. 가정과 이웃과 사회를 위한 기도가 진정한 기도다.

감곡성당에 들렀을 때 눈발이 휘날렸다. 바람은 차고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눈발이 가슴을 후빈다. “가난한 내가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 눈이 푹푹 나린다”고 노래한 백석의 시가 머릿속을 맴돈다. 눈 오늘 날의 성당이 이렇게 목가적이었던가. 풍경에 젖고 시심에 젖으니 오늘은 기도발이 먹히면 좋겠다.

감곡성당은 1896년 프랑스 선교사인 임가밀로 신부에 의해 세워졌다. 충북에서는 첫 번째, 국내에서는 18번째로 세워진 성당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매괴학교를 설립해 이곳의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준 성당이기도 하다. 감곡성당 부설 매괴박물관에 들어서면 100여 년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근대의 아픔이 깃들어 있다.

감곡성당은 명성황후 육촌오빠 민응식의 99칸 대저택이 있던 곳이다.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민비는 음성 민응식의 집을 시작으로 충주 이시영의 집까지 1882년 6월 9일부터 8월 1일까지 50일 간 은거했다. 매괴고등학교 운동장 한 편에 이곳이 명성황후의 피난처였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1894년 봄, 부엉골본당 신부로 부임한 임가밀로 신부는 부엉골의 위치가 적당치 않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부지를 물색했다. 사목 방문차 여주를 지나 감곡에 이르렀을 때, 매산 언덕에 자리잡고 있던 한옥집을 보고 본당 사목지로 최적의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임가밀로 신부는 기도를 했다. “성모님, 만일 저 대궐같은 집과 산을 주신다면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밤낮없이 기도하고 교세를 키워가는 일에 매진했다.

눈 내린 감곡성당.
눈 내린 감곡성당.

1895년 10월 12일 민비가 일본인에게 처참하게 시해당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반일 감정을 더욱 자극하였고,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당시 감곡에는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의병들이 일본군을 습격한 뒤 민응식의 집을 의병의 본부로 삼았다. 의병습격에 열 받은 일본군은 민응식의 집과 주변마을에 불을 질러 초토화시켰다. 이 때문에 임가밀로 신부는 1896년에 폐허가 된 이곳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다.

임가밀로 신부는 1903년에 성당 신축을 시작해 다음해 9월에 완공했다. 종각 높이가 130척이 넘는 고딕양식으로 지었다. 그 당시 신자 수가 2천 명이 넘을 정도로 교세가 빠르게 성장했다. 지역사회의 복음화에 앞장서는 것은 물론이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교육에도 힘썼다. 고종으로부터 태극기를 하사받아 성당의 제대 밑에 숨겨 두었다. 해방되자 이 태극기를 꺼냈고, 감곡본당 신자들은 이 태극기를 보고 저마다의 태극기를 만들어 만세를 불렀다.

세월은 속절없지만 그날의 함성, 그날의 투지, 그날의 아픔, 그날의 간절한 기도는 남아있다. 1934년에 완공된 충북 최초의 석조건물 사제관에 둥지를 틀고 있는 매괴박물관에는 100여 점의 가톨릭 유물이 전시돼 있다. 신앙의 발자취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피와 땀과 눈물로 일군 성소다. 간절했으니 가능했다. 아픔으로 일군 결실이니 더욱 값지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칠흑처럼 어둡고 미래가 불확실해도 가야할 곳이 있고, 해야할 일이 있으니, 그대 좌절하지 말아라. 삶은 기적이고 신비다. 이 모든 것이 희망이니 그대 두 손 모아 기도하라.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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