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동양일보) 기해년 황금돼지띠 새해를 기대감으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새해벽두부터 신문이나 TV뉴스마다 기분 좋은 소식보다 짜증스런 소식이 난무한다.

뉴스시간이 되면 아예 스포츠나 오락채널로 돌리고 만다. 언젠가부터 흑백논리로 우격다짐과 막무가내가 판치는 세상이 되었다. 우격다짐이란 억지로 우겨서 남을 굴복시킴 또는 그런 행위를 말하며 막무가내란 한번 굳게 고집하면 도무지 융통성이 없음을 말한다. 국회, 지자체, 사회단체 또한 각종 TV토론, 각종 미디어, SNS에 이르기까지 우격다짐이 먹구름처럼 번지고 있다. 미세먼지로 하늘도 찌푸리고 경제가 어려워 세상살이가 짜증나는 사회를 더욱더 왕짜증으로 몰고 가고 있다. 말없는 다수가 말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조용히 말하고, 품격 있게 말하고, 조리 있게 조근 조근 말하면 씨가 안 먹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진실을 말하면 오히려 언어폭력에 몰매를 맞아 만신창이가 되거나 개망신 당하기 십상이다. 거기다가 날이 갈수록 사회적으로 항상 심각한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 흑백논리다.

흑백논리란 모든 문제를 흑과 백, 선과 악, 득과 실 등의 양 극단으로만 구분하고 중립적인 것을 인정하지 아니하려는 편중된 사고방식이나 논리를 말한다.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편 가르기가 너무 심각하다. 여당 야당, 진보 보수, 노동자 고용주, 상급자 하급자, 부유층 빈곤층등 이러한 편가르기식 습성으로 인하여 흑백논리가 우리사회에 만연하게 되었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서는 무조건 중립보다는 극단적으로 결정해야 설득력이 있고 결단력이 있다고 판단한다.

이런 흑백논리로 인한 갈등의 원인 제공은 주로 정치인들이 흥분하고 질타하며 제공한다. 그러나 자신이 흑백논리의 수렁에 빠져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갈수록 다양한 현실의 사회는 어떤 경우에도 양극으로만 나눌 수가 없다. 예를 들면 모든 세상 사람들을 진보와 보수로만 나눈다면 얼마나 큰 모순인가? 이런 단순논리로 세상을 보니까 형평성이 크게 어긋나는 일이 마구 벌어진다. 그러다 보니 막무가내로 우격다짐을 하여 나와 내편은 희고 너와 상대편은 검다고 착각하는 모순에 빠져 우쭐대는 것이다.

프랑스말로 똘레랑스(tolerance)란 말이 있다. ‘존중하시오. 그리하여 존중하게 하시오!’ 이게 바로 똘레랑스 정신의 출발점이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 즉 상대방의 정치적 의견이나 사상, 상대방의 이념 등을 존중하여야 자신의 사상, 이념도 인정받는 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생각과 행동만이 옳다는 독선의 논리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기를 요구하고, 자신과 다른 것들도 인정하라는 의미이다.

소수에 대한 다수의, 약한 자에 대한 강자의, 가난한 자에 대한 가진 자의 횡포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려는 것, 특별한 상황에서 허용되는 자유, 그리고 서로 다른 인격체에 대한 존중의 가치를 진지하게 성찰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도 이런 정신을 배워 심각하게 대두되는 갈등을 슬기롭게 해소하여야 한다. 갈등이 잘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는 고정 관념, 선입견, 편견, 아집, 흑백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갈등을 해결하려는 기본자세부터 바꿔야 한다. 우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버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자세로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가치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관용과 배려로 양보와 타협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대화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설득하며, 사회 규범을 준수하고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자세,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진실되게 인정하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윤동주의 ‘서시’의 한 구절을 되뇌어 본다.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스치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지극하도록 순결한 마음이므로 잎새에 스치는 바람에 잎새가 다칠까 괴로워한다. 세상의 모든 사실은 서로 얽히고 설켜 있는 복합적이고 다양한 구조인데, 단순한 감정적 흑백논리는 우리사회를 이익 되게 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감정상의 흑백논리보다 전체를 이익 되게 하는 ‘똘레랑스’ 정신의 지혜를 터득하도록 힘써야 한다. 차이를 긍정하며 극단을 부정하는 논리의 지혜를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조선시대 초의 문신 이 직선생의 시조를 낭송해 보자.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아마도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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