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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숨겨진 이야기 27. 음성 수정산성
우리동네 숨겨진 이야기 27. 음성 수정산성
  • 동양일보
  • 승인 2019.02.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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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산성 산성의둘레는 577m에 달한다.
수정산성 산성의둘레는 577m에 달한다.

추운 날 새벽길을 걸으면서 나는 본다. 어둠속에서 밤새 내린 눈은 더 욱 하얗고 밤하늘의 별들은 얼음처 럼 빛났으며 마른 나무들은 소리 없 이 침묵하되 엄연하게 그 자리를 지 키고 있다.

차디찬 바람은 저 먼 곳에서부터 달려와 기어코 골목길을 지나 내게 로 오더니 심산한 내 가슴을 후비고 귓불을 때린다.

가로등 불빛만 깜빡이고 이따금 새벽길을 걷는 타인의 그림자가 쓸 쓸하다. 여기가 어디던가.  나의 길은 여기인가 저기인가. 내 삶의 최전선 은 언제나 차디차다.

자연을 품고 있는 수정산성
자연을 품고 있는 수정산성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어두운 곳 에서,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추운 곳에서 시작되는가. 꽁꽁 얼어붙은 대지를 밟고 얼음을 뒤집어 쓴 뒤 거 리로 나서야 하는가. 그 속에서 나의 영혼을 단련하고 나의 꿈을 위해 모 닥불을 피운다. 기침소리조차 낼 수 없는 고요의 시간에 차디찬 새벽길 을 걸으며 제 스스로의 힘을 만들고 제 갈 길을 찾는다. 내가 가는 길이 나를 만든다.

청주에는 상당산성이 있고 충주에는 장미산성이 있으며 보은에는 삼 년산성이 있다. 단양에는 온달산성 이 있고 괴산에는 미륵산성이 있다. 그리고 음성에는 수정산성이 있다. 오늘은 음성 수정산성으로 마실 다 녀왔다. 수정산성은 음성읍에서 동 쪽으로 1.2km 떨어진 해발 396m의 수정산 정상과 동쪽계곡 상단을 둘 러싸며 축조된 산성이다. 평곡리 약 물재 마을길을 선택했다. 내가 선택 한 길이 나를 만드니 이 또한 운명이 다. 이 마을에는 마을유래비와 공덕 비가 여러 개 있다.

마을유래비는 전설의 고향을 연상 케 한다. 1232년 몽고군의 친입시 박 서 장군이 수정산성을 축조하고 방 어선을 구축했는데 극심한 가뭄에 시달려야 했다. 우물물이 없어 개천 의 물로 식수 공급을 했는데 군사들 이 집단으로 전염병을 앓았다. 이 때 백발노인이 나타나 물이 나올만한 곳을 얘기해 주고 홀연히 떠났다. 그 곳을 파니 맑고 달차근한 맛의 물이 솟아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이 샘을 약샘, 옷샘, 영천샘이라고 불렀는데 질병으로 고 생하던 병사들이 이 물을 마시고 감 쪽같이 나았다는 것이다. 이 마을을 약물재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 다. 동네 사람들은 이 물에 신령한 기 운이 감돈다 하여 영천(靈泉)샘이라 고도 불렀다. 이 때문일까. 유독 이 마을에는 백년해로하는 사람들이 많 다.

평곡리의 느티나무 연리지
평곡리의 느티나무 연리지

뿌리가 다른 나무가 서로 엉켜 하 나의 나무처럼 자라는 것을 연리지 라고 한다. 괴산 청천의 소나무, 보령 오천면 외연도의 동백나무 등 전국 곳곳에 연리지가 있는데 이곳 약물 재에는 느티나무 연리지가 있다. 마 을 한 복판에 있으니 지붕없는 사랑 방이다. 봄에 새 순 올라올 때부터 여름과 가을날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 이 이곳으로 모였다. 집안 이야기, 동 네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더위를 쫓고 추억을 담고 사 랑을 노래했다.

이곳이 오래된 신화의 마을, 농경 의 마을임을 알 수 있는 것이 또 있으 니 바로 석조보살입상과 석조여래좌 상이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 는 보살입상은 사람만한 크기를 하 고 있는데 두 손은 배와 가슴에  있으 니 마음을 다스리는 모습이다. 또 석조여래좌상은 세월의 상처를 그대로 품고 있다. 사람들은 매년 정월 보름 에 마을기원제를 지낸다. 마을의 안 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집집마다 무 병장수의 염원을 담아 기도했다.

수정산에는 전설이 깃든 바위가 많다. 박서장군이 전투를 지휘했다 는 장수바위, 솥뚜껑 모양을 하고 있 는 솥뚜껑바위, 바위가 갈라져 거북 등처럼 보이는 거북등바위, 장수들 이 직경 3m나 되는 둥근 바위로 공 기놀이를 했다는 공기바위…. 예나 지금이나 심심하면 이야기를 만든 다. 사물 하나 하나를 허투루 보지 않 는다. 인간은 위대한 스토리텔러다.

수정산성은 577m의 둘레에 2m에 서 7m까지의 높이를 하고 있다. 원 래 토축산성이었지만 조선 후기에 돌로 다시 쌓아 올렸다. 산성에도 샘 이 있다. 샘이 있어야 군사들이 먹고 살 것 아닌가. 전쟁이라도 나면 성 밖 을 나갈 수 없으니 물과 식량보다 중 요한 것이 없다. 성을 쌓을 때부터 샘 터를 찾는다. 우물을 파고 귀하게 관리한다.

평곡리의 석조여래좌상
평곡리의 석조여래좌상

성곽위에서 내려다보니 음성읍 소 재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평온하다. 산과 들과 길도 무탈하다. 하늘을 나 는 새들이 햇살을 품고 한 곳으로 날 아가고 있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 아보지 않는다고 했던가. 봄이 오려 는지 대지가 트림을 하고 있다. 봄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내 마 음 속 증오의 벽을 허무는 일이다. 허 물 수 없다면 그 벽에 꽃이라도 그려 야겠다.     매주 금요일 게재 


■ 글·변광섭 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 사진·송봉화한국우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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