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송 ESI 교장

한희송 ESI 교장
한희송 ESI 교장

 

(동양일보) "인류역사를 만들어 온 천재들" 이라 집합을 뒤지면 어디에인가에 마르크스(K. Marx)라는 원소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의 사상은 2800여년전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Λυκοῦργος)에 의지한 바 크다. 따라서 일반적인 기대와는 달리 마르크스의 역사적 가치는 '공산주의'를 개창한 것과는 별 관계가 없다. 그의 가치는 본질적으로 인류는 왜 평등구조를 갖지 못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삶의 물질적 측면의 해결수단으로 제시된 '자본'이란 개념과 그 소유권의 귀속문제를 명확히 한 것에 있다.

생산함수의 독립변수에 대해 언뜻 생각해도 누구나 물적 생산수단인 자본과 인적 생산수단인 노동의 존재는 직감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생산요소 중에서 어떤 것이 생산이란 활동에 더욱 기여할까? 분명히 땅이 있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고, 공장시설이 있어야 상품을 만들 수 있다. 그러니 물적 생산수단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땅이 있고 공장시설이 있다고 하더라도 생산활동 자체는 사람이 담당한다. 그러니 생산활동을 담당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역사는 오랫동안 물질적 생산수단에 근원적 지위를 부여했었다. 자연에서 먹을 것을 채취하던 산업혁명 이전의 시대에서 땅에게 자본이란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너무나 지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르네상스에서 산업혁명으로의 흐름을 겪으며 역사는 자연적 생산수단이 아닌 '생산된 생산수단'이 자본의 주요지위를 차지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생산수단인 자본이 인간의 생산활동에 의해 생산되게 되자 곧 자본은 독립변수라는 지위를 박탈당했다. 생산에서의 독립변수는 '노동'으로 귀착되었고 '노동가치설'이 힘을 얻었다. 이제 역사는 진정한 인본주의를 철학적 논리와 그리고 물적 생산과정의 두 가지 영역에서 추상적, 그리고 구체적 개념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논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너무나 실망스럽게도 이 이론에 의해 등장한 공산주의라는 정치체제는 모든 국민의 노예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것을 그저 글자로써의 '슬로건'으로 만들었다. 공산주의가 국민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체제로 인식되는 일은 공산주의 국가의 국민들에게 조차 희귀한 일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물적 생산요소, 그 자체를 독립된 자본으로 인정하는 국가들 보다 더 비민주적이고 더 독재적 성향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왜일까? 도대체 왜일까?

물적 생산과정을 논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철학의 실수는 바로 인간의 인격적 정의에 관한 인식에 뿌리를 둔다. 정의할 수 없는 인격의 다양성이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임을 포스트모더니즘이 발견하기 이전까지 우리는 이를 변수가 아닌 상수로 취급했던 것이었다. 같은 정치체제나 같은 경제구조라는 말 자체가 성립할 수없는 것이 바로 인간사회인 것이다.

하루에 천 원을 훔치는 사람과 만원을 훔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나쁜 사람일까? 만일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우리는 적어도 천 원을 훔친 사람보다 만원을 훔친 사람이 더 나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남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끼리 모여 있다면 이 집단의 회장은 이 둘 중 누가 해야 논리적일까? 우리는 이 질문에 후자가 더 적절하다는 답을 줄 것이다. 천원 훔치는 자가 덜 나쁘기 때문에 그 집단의 회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논리의 흐름 자체를 위반하여서 정당한 의미전달 능력 자체를 가지지 못한다. 우리는 지금 훔치는 사람들 집단의 회장을 뽑는 상황에 있는가? 아니면 누가 더 선한가를 선택하는 상황에 있는가?

우리나라의 교육은 교육의 근본문제 자체를 도외시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것이 더 유능한 사람을 키우는 방법인가 하는 것만 정하려고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느 상황에 있는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교육을 하는가? 현재의 교육제도가 키우는 능률적인 사람은 누구인가? 이 문제를 도외시 하여서 결국 교육을 논리의 세계에서 몰아 낸 것이 지금의 우리나라의 교육개념이다. 인문주의를 내세워서 인문주의를 지향한 댓가로 인문주의를 사장시키고 또한 그 댓가로 오히려 인문주의자로 유명해지는 것은 지독한 비논리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해 스스로 고민해야만 한다. 꼭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빠져있는 현재의 교육개혁논의는 교육개혁을 오히려 이루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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