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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 / 율곡이 화양동 선유동 쌍곡을 찾지 않은 이유⑩
동양칼럼 / 율곡이 화양동 선유동 쌍곡을 찾지 않은 이유⑩
  • 동양일보
  • 승인 2019.03.1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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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이상주/ 중원대 교수
이상주/ 중원대 교수

 

(동양일보) 지금의 충북 괴산군 청천면 선유동은 인간신선 이녕(李寧 1514~1570이후)이 철학적 문학적으로 향유했던 동네다. 이녕의 선유팔경(仙遊八景)은 용(龍)을 숭상하는 후학들에 의해 선유구곡(仙遊九曲)이라는 문화산수로 개조됐다. 그 주역은 김시찬(金時粲 1700~1767), 이보상(李普祥 1698~1775), 정술조(鄭述祚1711~1788), 선유동의 땅 주인 이상간(李尙侃 1715~1765)이다. 1인 향유시대에서 4인 공유시대로 전환됐다.

김시찬은 본관이 안동이다. 1721년에 진사에 합격하고, 1735년에 증광문과에 합격했으며, 홍문관부제학을 했다. 1806년에 이조판서에 추증됐다. 강원도 화천에 곡운구곡(谷雲九曲)을 설정한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은 김상헌(金尙憲)의 손자다. 김상헌은 김시찬의 고조부 김상용의 아우다. 이렇듯 김시찬은 방조부(傍祖父)가 구곡을 설정한 선례와 송시열 권상하 민진원 등이 화양구곡을 완성한 전례를 온고지신하여, 선유동에 구곡을 설정하는데 합세했다.

이보상은 세종대왕의 후궁인 신빈(愼嬪) 김씨(金氏)의 소생 밀성군(密城君) 침(琛)의 후손이다. 그는 영춘현감, 괴산군수, 한성서윤(漢城庶尹), 오위장(五衛將) 등을 역임했다. 그는 경종(景宗)과 동서(同婿)이며, 어유구(魚有龜)의 사위다. 그는 매우 호탕하고 풍류를 즐기며 산수자연에도 심취했다. 이런 기질을 선유구곡의 설정에 발휘하여, 바위에 ‘선유동문(仙遊洞門)’이라는 글씨를 남겨, 구곡문화 계승자의 한 사람으로 인사유명(人死留名)을 성취했다.

정술조는 본관이 해주이다. 1740년 증광(增廣) 생원시에 합격했다. 1747년 칠석제문과(七夕製文科)에 장원했으며, 1750년에 전시(展試)에 합격했다. 1756년에 지평(持平)으로 입시(入侍)했다. 1784년에 특별히 당품(堂品)으로 보덕(輔德)을 제수 받아 일강(日講)하기 위해 입시(入侍)했다.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과 형조판서를 역임했다.

선유동의 땅 주인 이상간은 본관이 광주(廣州)이다. 이세좌(李世佐 1445 ~ 1504)의 10대손이며 이준경(李浚慶 1499~1572)의 8대손이다. 이준경은 사람을 알아보는 감식능력인 지인지감(知人之鑑)이 있었다. 그는 임진왜란의 발발을 예견하고, 그 대비책을 강구할 선견지명을 갖춘 도인(道人)을 발탁했다. 그 도인은 이준경의 후손들과 가솔들을 안전지대인 지금의 선유동으로 이주시켜 무사히 피난하게 했다. 이에 관한 내용은 「이동고위겸택가랑(李東皐爲傔擇佳郞)」에 상세하다. 이준경 후손들이 살았던 집터엔 지금 송면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으며 주초석만 남아있다. 그러나 그 유덕(遺德)은 선유구곡과 함께 영원하다.

선유구곡 9개 곡은 다음과 같다. 바위에 곡의 순서는 새기지 않고 명칭만 새겨놓았다. 선유동문(仙遊洞門)이 제1곡으로 알려져 있다. 1930년 홍치유(洪致裕)의 선유구곡시와 1933년 이병연(李秉延)이 편찬한 『조선환여승람(朝鮮圜輿勝覽)괴산군』에도 선유동문을 제1곡으로 보고 있다. 통상 구곡의 입구에 화양동문(華陽洞門), 연하(烟霞)동문, 갈은(葛隱)동문이라 새겼다. 이로 보아 선유구곡 제1곡은 선유동문이 아니라고 봐야한다. 위 네 사람과 하늘과 땅만이 그 진실을 알고 있다. 제4곡 연단로(煉丹爐)라는 글씨 옆에 사람의 얼굴을 새겨놓았다. 필자가 2001년 9월 8일 토요일 발견하여 「선유구곡과 선유구곡시」라는 논문에 ‘암각신선도’라고 미화하여 소개했다. 제5곡 와룡폭(臥龍瀑), 제6곡 난가대(爛柯臺), 제7곡 기국암(棋局巖), 제8곡 구암(龜巖), 제9곡 은선암(隱仙巖)이다. 제2곡 경천벽(擎天壁), 제3곡 학소대(鶴巢臺)이다. 경천벽과 학소대는 글씨를 찾지 못했다. 9개 곡의 중심에 제5곡 와룡폭(臥龍瀑)을 정하고 용을 모셔 상하로 용기(龍氣)를 승강하게 했다.

위의 네 사람은 주자 율곡 우암으로 이어지는 학통을 철저히 계승한 사람들이며 용의 원력을 신봉하는 인간 용들이다. 주자 율곡 우암도 용의 원력을 받은 사람들이다. 율곡은 영감인터넷과 용기지능을 활용하여 직접 가지 않고 전국적으로 통신했다. 그래서 율곡이 찾지 않아도 네 사람은 선유구곡을 잘 조성했다.

필자는 용기(龍氣)를 제대로 받지 못해, 송인의 『이암유고』, 「증칠송거사병서(贈七松居士幷序)」 를 중간 내용을 생략하고 번역하다 보니, 이녕이 신응시 박지화등과 함께 선유팔경을 설정했다고 잘못 풀이했다. 신응시(辛應時)와 박지화(朴枝華)등이 이녕에게 시를 지어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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