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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민족학교 설립 허용 이면엔 '문부차관통달' 등 차별 있었다
3. 민족학교 설립 허용 이면엔 '문부차관통달' 등 차별 있었다
  • 박장미
  • 승인 2019.03.31 2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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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한국학교 운동장
도쿄한국학교 운동장

 

 ■탄압과 저항의 시대Ⅱ-제2기 제2국면


●제2국면의 시작

1국면은 1948년 1월의 학교교육국장 통지로부터 시작됐고, 2국면은 1965년 12월 문부차관통달로 시작됐다. 이 계기는 모두 일본정부가 민족학교를 억압하는 정책을 실시한 것이었다. 두 국면 모두 민족학교를 억압했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지만 2국면에서는 민족학교를 외국인학교로 위치시키고 이를 차별하는 정책으로 옮겨갔다. 이 점이 민족학교를 폐쇄한 1국면과는 구별되는 특징이다.

차관통달이 나온 이래 1970년 외국인학교 법안이 폐기 될 때까지 5년 동안을 제2 국면이라고 부른다. 재일동포 교육에서 1960년 후반의 5년 동안은 민족학교의 생사를 건 투쟁의 5년이 됐다.

이 기간동안 재일동포뿐만이 아니라 적지 않은 일본의 지식인·교사·시민이 재일조선인 민족학교의 수호를 일본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정부의 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재일동포와 일본인이 협력해서 이처럼 대규모로 민족학교를 지키는 운동을 전개한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다. 이것이 2국면의 또 다른 특징이다.

일본정부는 민족학교를 지키는 재일동포와 일본인의 이러한 대중운동에 단속의 제도화(외국인 학교법안의 제정)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최초의 승리였다.



●재일동포의 국적과 교육

이보다 먼저 1950년대 중반부터 민족학교가 재건되기 시작했다. 재일동포들은 어쨌든 민족학교를 설립할 자유를 손에 넣었다. 그런데 민족학교 설립의 자유를 얻은 것은 재일동포의 국적이 ‘일본’에서 ‘외국인’으로 변경됐기 때문이다.

1952년 4월 강화조약의 발효에 의해 일본의 주권이 회복되고, 미국의 점령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재일동포에 대해 일반적으로 일본국적을 상실시키고, 외국국적으로 옮겼음을 선고했다(1952년). 이 사실에 입각해 1948년 1월의 학교교육국장통지는 효력을 상실했다. 이 통지는 ‘일본국적’을 근거로 해 시행된 통지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법령상 재일동포 자녀에 대한 일본인 학교의 취학의 의무는 없어지게 됐다. 반면 재일동포는 외국인으로서 민족학교를 설립할 자유를 얻었다. 이는 1945년 광복 이후 7년 뒤의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학교 설립에 착수한 것은 그보다 3년 후인 1955년 이후의 일이었다.

이처럼 재일동포의 국적과 그 자녀의 교육은 밀접하게 관련돼 있었다. 반복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언제나 일본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됐다.

일본정부의 해석으로는 재일동포의 국적이 일본의 국적이라면 일본학교에 취학할 의무가 생기는 것이고, 민족학교를 만들 자유는 없다. 단 일본학교 취학 희망자에 대해서는 받아 줄 수 있다. 이와 같이 재일동포의 국적 여하에 따라서 그 자녀의 학교 형태를 결정하는 해석을 취해 왔던 것이다.

재일동포의 국적과 교육이라는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경과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제1기(식민지시대)에 일본정부는 재일동포를 ‘일본제국 신민’으로 보고 일본국적을 가진 존재로 규정했다. 따라서 그 자녀에 대해 일본학교 취학을 의무화하고 민족학교의 설립을 금지했다.

제2기 제1 국면(일본점령시대)에 일본정부는 재일동포를 외국인(광복 국민)이지만, ‘일본국적’을 가진 자로 간주했다. 그리해 그 자녀에게 일본학교에 취학할 의무를 다시 갖도록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설립된 민족학교를 폭력적으로 폐쇄했다.

일본은 센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고 독립하자 일본정부는 재일동포를 ‘일본국적’을 상실하고 ‘외국국적’으로 옮겼다고 일방적으로 선고했다. 그리해 그 자녀의 일본학교 취학의무를 폐지했다. 이후에 일본학교에 취학하려는 자는 학교의 지시에 거스르지 않겠다는 맹약서를 쓰고 나오라는 조건을 붙였다. 취학은 의무가 아니라, 일본정부가 베푸는 은혜라고 태도를 돌변한 것이다. 다른 한편 민족학교의 설립에 대해서는 방임의 태도로 바꾸었다.

이 같은 경과를 거쳐 1952년 이후 재일동포는 간신히 민족학교 설립의 자유를 획득했다. 그리해 1954년부터 1965년의 10여 년 동안 130개교의 민족학교가 설립됐다. 점령시대부터 사립학교로 존속해 온 민족학교를 합치면 거의 150여개 교를 헤아리게 된다. 재일동포의 민족교육은 다시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도쿄도 기타(北)구 소재 도쿄조선중고급학교
도쿄도 기타(北)구 소재 도쿄조선중고급학교

 


●문부차관 통달

1965년 한일조약이 체결되면서 한국과 국교가 열렸다. 재일동포의 국적은 한국적과 조선적으로 나뉘었다. 어느 쪽이든 재일동포는 외국국적을 가진 존재가 됐으므로, 외국인이 된 재일동포의 교육에 대해 일본정부는 새로운 대응책을 마련하게 됐다.

여기에 맞추어 나온 것이 같은 해 12월의 문부차관통달이었다.

일본정부의 재일동포 교육정책은 일본국적을 가진 존재로 간주한 단계(1952년 이전)부터 방임단계(1962~1965)를 거쳐 이제 외국인으로 대응하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것이었다.

문부차관통달은 세 가지 방침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지금도 법령으로서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그 내용과 이후의 영향을 요약해 본다.



●민족학교에 대한 차별정책

첫째, 민족학교에 대해 모든 법적 보호를 거부하고 있다. 150여 개 남짓한 재일조선인 민족학교를 ‘외국인학교’로서 인정한 점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전이지만, 그 사실에 입각해 이번에는 새로이 외국인학교를 규제하는 방침을 내놓은 것이다. 즉 민족학교에 대해 ‘각종학교의 자격도 부여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그래서 학교로서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고함으로써 모든 법적 보호를 거절한 것이다.

이것은 민족학교를 일본의 학교제도 바깥으로 추방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일본정부는 재일동포가 민족학교를 세우는 것은 상관하지 않겠지만, 이것을 ‘학교’로 간주하지도 않으며, ‘학교’로서 대우도 하지 않는다고 선고한 것이다.

그러나 각종학교 인가권은 도도부현(都道府縣) 지사에게 그 권한이 있기 때문에 민족학교는 후에 이들 지사의 인가를 얻어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단 이 자격을 얻어도 각종학교는 학교교육법 제1조가 정하는 ‘학교’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민족학교와 교직원, 학생은 여러 가지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예를 들면, 민족학교 졸업생은 일본의 고교와 대학, 대학원에 진학할 자격을 갖지 못한다. 따라서 일본학교를 졸업해야 응시할 수 있는 각종 직업상의 자격, 예컨대 의사나 변호사, 세무사 등의 자격은 취득할 수 없다. 또한 일본의 기업 등에 취직하기도 곤란하다. 따라서 일본 사회에 영주하려 할 경우, 민족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사회생활상의 불이익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차별을 각오해야 한다. 또한 민족학교는 각지에 점점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재학생이 전차통학을 한다. 일본학교의 통학생은 통학정기권을 사용할 수 있지만, 민족학교의 통학생에게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여섯 살의 소학생이 어른용 통근정기권으로 학교를 다녀야 한다(이는 재일동포 부모가 운동을 편 결과 1994년에 시정됐음). 더욱이 중앙과 지방의 행정체제는 사립학교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민족학교에 대해서는 각종학교라는 이유로 지급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학부모는 수업료와 시설비 등 고액의 교육비를 부담해야 한다. 그 액수는 일본 공립학교의 몇 배나 된다.

민족학교는 각종학교라는 자격을 갖기 때문에(그것조차 정부는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그 같은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문부차관 통달에서 보이는 민족학교에 대한 취급은 분명 민족학교에 대한 차별정책이다. 이는 국제우호의 사상에 반하는 것이다.

더욱이 여기에서 빼놓으면 안 될 점은 이와 같은 차별정책을 민족학교가 각종학교라는 이유로 다른 외국인학교와 마찬가지로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 우호에 반하는 이러한 정책에 맞서 독일 학원처럼 항의하는 외국인학교가 나타났다.

●동질·동등한 교육

두 번째는 일본학교에 취학을 희망하는 재일동포의 자녀에 대해 그것을 보장한 점이다. 구체적으로 우선 일본에 ‘영주를 허가받은’ 한국 국적을 가진 아이가 일본학교에 취학을 희망할 경우, ‘일본인 자녀와 마찬가지로 취급한다’는 것을 규정했다. 이어 이것을 당시 영주권을 갖지 못한 한국인 국적의 아이에게도 적용하기로 했다.

일본학교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적을 가진 아이도 조선 적을 가진 아이도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아이들을 두 국적으로 나누어 차별대우하는 것은 실제적이지 않다.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재일동포 아이들로서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현실에 맞다. 말하자면 ‘조선민족의 아이’로서 동일하게 처우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재일동포 자녀의 일본학교 취학 형태의 변천을 정리해 본다. 광복 이전 1920년대부터 1952년까지는 의무취학이었다. 그리고 광복 이후인 1952년부터 1966년 사이에는 희망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차원에서 받아들였다. 1966년 이후에는 재일동포들에게 선택(희망자)하게 하고, 그것을 보장하는 쪽으로 개정했다. 이 모든 것이 일본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사항이고, 재일동포들의 의견을 듣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일본인 자녀와 같이 취급한다’는 것은 재일동포 아이들에게 일본인 아이들과 동질·동등한 교육을 시행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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