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동양일보) 율곡 이이는 용기(龍氣)를 받았기 때문에 온고지신과 선견지명이 특출했다. 4차산업혁명시대의 용어로 창의융합능력이 탁월한 선각자다. 그리하여 『주역』 구오(九五)의 원리를 자연산수에 적용한 구곡(九曲)이,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정치철학의 표상화이며 학통을 계승시킬 수 있는 매개체라는 점을 갈파하여, 황해도에 고산구곡(高山九曲)을 정하고 「고산구곡가」를 지었다. 그 도(道)를 통찰한 불세출의 천재 우암은 『고산구곡도』를 그리게 하고, 자신과 그 문하생 그리고 지인들에게 「고산구곡가」를 한시로 번역하게 했다. 이렇게 하여 이들은 구곡과 구곡시 그리고 구곡도를 학통계승(學統繼承)의 상징으로 정립하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율곡의 이런 선견지명은 어디서 나왔나? 학문과 인생의 성공법칙인 상현정신(象賢精神)과 도통론(道統論)을 지행합일했기 때문이다. 세계 4대 성인인 공자가 성인이 된 이유는 담자(郯子)에게 관직, 장홍(萇弘)에게 음악, 사양(師襄)에게 거문고, 노자(老子)에게 예(禮)에 대해 배웠기 때문이다. 모두 그 분야의 전문대가들이다.

율곡은 1558년 23세 봄, 상현하기 위해 퇴계 이황(李滉1501~1570)을 알현했다. 이때 퇴계는 예순이 가까운 58세였다. 그때 지은 시 「과예안알퇴계이선생황잉정일률(過禮安謁退溪李先生滉仍呈一律)」을 보자. “시냇물은 수사(洙泗)에서 나뉘고, 산봉우리는 무이산(武夷山)처럼 빼어나네. 마음속은 비 개인 후 떠오르는 달빛처럼 맑고 깨끗하며, 대화하며 웃는 소리는 거센 물결을 멈추게 하네. 생활의 계획은 경서 천 권을 보는 일이요. 돌아온 고향집 방 몇 칸뿐이네. 제가 찾아 온 것은 도(道)를 들으려고 찾아 온 것이요, 한가롭게 반나절을 허비하려 함이 아닙니다.” 23세 율곡의 득도수준과 학문의 대성을 위해 필요한 서책이 무엇인지 숙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선배학자 퇴계를 예찬하면서 자신의 학문수준에 대한 자부심도 과시했다. 수사는 중국 산동성에 있는 강인 수수(洙水)와 사수(泗水)로 공자가 이곳에서 제자를 가르쳤다. 무이산은 주자(朱子1130∼1200)가 학문을 강론하던 문공서원이 있으며 이 계곡에 무이구곡을 설정하고 「무이도가」를 지었다. 위의 시 3구의 “마음속은 비 개인 후…”라는 싯구는, 송나라 황정견이 주돈이의 인품을 “광풍제월(光風霽月)”에 비유한 말을 응용했다. 위시를 통해 23세 율곡의 학문적 식견과 공자 주돈이 주자를 숭상하여 그 도통을 계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퇴계는 1561년 61세 11월 「도산기(陶山記)」를 지었다. 이이는 35세가 되던 1570년 퇴계에게 편지로 성학십도(聖學十圖) 및 출처(出處)의 의(義)에 대해 의논했다. 이 때 퇴계는 70세로 이해 12월 8일 졸했다.

율곡은 16세기에 영감(靈感)인터넷과 용기(龍氣)지능으로 거의 전국을 망라했다. 율곡은 구곡이 천하가 태평하게 다스려지기를 희구하는 정치철학을 반영한 이상향이며, 도통계승을 상징화할 수 있는 고차원의 필수불가결한 매개체라는 점을 갈파실천했다. 이를 감지한 용의 후예들은 자발적으로 문화산수인 구곡을 설계했다. 송시열 권상하 민진원은 화양동에 화양구곡, 이보상등은 선유동에 선유구곡, 정재응은 쌍곡에 쌍계구곡을 조성했다. 이렇듯 율곡이 찾아가지 않아도 율곡의 용기는 무한대 영속으로 전수발현됐다.

퇴계는 공자 맹자의 기본유학과 주자학이 율곡을 능가했으며 율곡보다 장수했다. 퇴계가 생전에 착안하지 못한 최대의 실수 하나가 있다. 58세의 퇴계는 23세 청년 이이가 향후 구곡으로 조선의 유학계를 결속계승시킬 용기(龍氣)를 받은 핵융합반응적 폭발력을 발휘할 영재라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한 것 같다. 1547년 47세에 이황은 「한거독무이지구곡도가운십수(閒居讀武夷志九曲櫂歌韻十首)」를 지었다. 그러나 그는 구곡을 정하지는 않았다. 이래서 구곡으로는 율곡이 선구불멸의 조종(祖宗)이 됐다. 율곡은 상현정신으로 지피지기하고 자강불식하여 청어람했다. 우암등 용의 후예들은 선현에 대한 예우로 퇴계의 출생강학지인 안동을 포함한 경상남북도를 제외한, 우리나라 전역에 구곡으로 도통을 전수계승시켜, 퇴계가 생각하지 못한 문화산수인 구곡을 앞서 창의했다. 율곡이라는 특정인물을 조종으로 하여 문화산수인 구곡을 통해 400년 이상 학통을 계승한 사례는 우주내에서 초유의 일대거사이며 문화혁명적 경사다. 창의융합시대, 문화가 만능인 시대, 문화산수인 구곡을 제대로 아는 것도 문화인으로 긍지를 고양하는 도(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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