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 논설위원/소설가/한국선비정신계승회 회장

(동양일보) 조선조가 일제의 강압에 의해 대한제국이 되고 대한제국이 을사조약으로 맥수지탄(麥秀之嘆)의 위기에 처해 풍전등화가 됐을 때 한규설, 민영기, 이하영 등 바른 선비(각료)들은 죽음으로 이를 반대해 ‘불가불가’를 외쳤다. 그러나 일신의 영달을 위해 입신양명하려는 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 등의 을사오적 매국노들은 지조를 팔아 훼절함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불가불 가’를 주장했다. 여기서 불가불가란 말할 나위도 없이 ⌜안 된다⌟ ⌜옳지 않다⌟는 뜻으로 절대 그럴 수 없음을 나타낸 말이다. 더욱이 불가를 한 번도 아니요 두 번 씩이나 강조함으로써 ‘안 되고’ 옳지 않음‘을 최대한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불가불 가‘는 ’불가불‘ ’부득불‘과 마찬가지로 이중부정의 성격을 띠고 있어 그 뜻이 되레 타당으로 강조된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 않으면 안 됨으로 마땅히⌟라는 뜻이니 꼭 해야만 된다는 말이다. 이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띄어쓰기와 떼어 읽기에 따라 그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 말이다. ⌜불가불가⌟는 한 음절씩 붙여 쓰고 한 음절씩 떼어 읽으면 안 된다는 뜻이요 ⌜불가불 가⌟는 불가불은 붙여 쓰고 ⌜가⌟만 떼어 읽으면 꼭 해야 된다 또는 꼭 하지 않으면 안 된다로 해석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목숨을 아끼지 않고 망해가는 나라를 구하려 애쓴 한규설 민영기 이하영 등의 애국자들은 ⌜불가불가⌟가 절대적이었고, 나라를 팔아 일신의 영달을 꾀했던 이완용, 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 등 을사오적 매국노들은 ⌜불가불 가⌟가 마땅히 옳다고 주장했다. 조선조 효종 때의 학자 홍만종이 지은 순오지(旬五志)에 보면 녹비(鹿皮)에 가로왈(曰)이란 말이 나온다. 이는 사슴 가죽에다 가로 왈(曰) 자를 써놓고 세로로(아래위로) 당기면 날일(日)자가 되고 가로로(옆으로) 당기면 가로 왈(曰)자가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 ⌜불가불가⌟든 ⌜불가불 가⌟든 또는 녹비에 가로왈이든 해석 여하에 따라 그 뜻이 달라진다. 그러기 때문에 본시 크게 간사한 신하는 그 아첨하는 수단이 매우 교묘한 법이어서 흡사 크게 충성된 신하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여회는 송사(宋史)라는 책에서 크게 간사한 신하는 그 아첨하는 수단이 매우 교묘한 법이어서 흡사 크게 충성된 신하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여회는 이 같은 신하를 대간사충(大奸似忠)이라 못 박았다.

요즘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태를 볼작시면 위에서 예시한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어쩌면 그토록 하나 같이 ⌜불가불가⌟는 없고 ⌜불가불 가⌟만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들은 녹비에 가로 왈(曰)자가 날일(日)자도 되고 날일 자가 가로왈자도 된다. 하지만 어디 또 이뿐인가. 나라 살림을 경영하고 국민생활을 책임져야 할 지도자들이 부정 비리 범법 위법 무법으로 횡행천지를 해 윤리와 도의를 송두리째 짓밟아 버리니 그 밑에서 다스림을 받는 국민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우리는 여기서 불행히도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이방의 마을 소돔과 고모라를 생각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소돔과 고모라를 우리들의 당면 문제로 교훈 삼지 않을 수 없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이유가 무엇인가, 다 알다시피 온갖 부정과 타락과 음모와 퇴폐와 성문란의 부도덕으로 하느님의 저주를 받아 망하지 않았는가. 날이면 날마다 방탕과 음탕과 향락과 탐욕만을 일삼아 노여울대로 노여워진 하느님이 마침내 유황불비로 멸망시켰던 소돔과 고모라. 그러나 이 소돔과 고모라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일이다. 왜냐하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직전에 있었던 징후가 지금 여러 곳에서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쩔 것인가.

진실로 어쩔 것인가. 이 나라가 이대로 가다간 저 소돔과 고모라처럼 유황불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을 할 것인가. 정신 차릴 일이다. 그러니 지도자들이여! 국민들이여! 우리 다 같이 정신 똑바로 차려 하늘에 떳떳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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