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동양일보) 퇴계가 선유동 쌍곡을 다녀갔다고 해야 그 진가가 격상되나. 다음 논리는 이해한다. ‘호가호위(狐假虎威)’, ‘편승하기’, ‘원님 덕분에 나팔 분다’. 이를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퇴계는 선유동 쌍곡에 오지 않았다. 어차피 허구과장인데 율곡이 다녀갔다고 해도 좋으련만. 분명한 건 율곡은 다니지 않아도 됐다. 율곡은 이미 16세기에 용기(龍氣)지능으로 영감(靈感)인터넷망을 구축하여 전국을 통섭할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기를 동기감응(同氣感應)한 후학들이 알아서 구곡을 설정하여 문화산수로 빛냈다. 아는 사람은 안다. 세상만사와 지식은 풍익풍 곤익곤(困益困)이다.

유명한 사람이 다녀간 곳은 다 유명해지나. 창의융합교육학문이 이 시대의 화두다. 즉 온고지신이 만고불변의 진리다. 유명하게 만들 수 있는 소재를 발굴하자. 이것도 창의융합능력이다. 유명한 사람은 처음부터 유명한 게 아니다. 유명한 일을 해서 유명해진 것이다. 저명한 사람의 명성을 창의적으로 활용할 때 선구적인 문화역량도 감안하면 금상첨화다. 용기를 믿고 율곡과 우암을 사대(事大)하여 구곡(九曲)을 정한 사람들은 역사의 별이 되어 찬연히 빛난다.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 1834~1910)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지금 충북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일대에 용하구곡(用夏九曲)을 정했다. 그래서 지금 용하동으로 불린다. 한 사람의 창의적인 의식이 새로운 지명으로 정착된 것이다. 박세화는 『맹자』, 「등문공」 상(上)의 다음 내용을 참고하여 구곡의 명칭으로 삼았다. “나는 하(夏)나라의 문화를 응용(應用)하여 오랑캐를 예의를 갖춘 문화인으로 변화시켰다는 말을 들었으나, 오랑캐에 의해서 변화됐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이런 유교사상적 배경을 모르는 사람은, 용하구곡(用夏九曲)을 한자 뜻 그대로 여름에 쓸 만한 구곡이라 풀이한다. 박세화는 오랑캐로 여기는 일제의 만행에 투쟁해야 하는 당위성의 이론적 근거인 ‘존화양이의식’ ‘도통의식’을 교육강조하기 위해 구곡을 설정했다. 따라서 용하구곡은 존화양이(尊華攘夷)’‘위정척사(衛正斥邪)’‘도통의식(道統意識)’을 강화확산하기 위해 유교경전에 나오는 용어를 구곡의 명칭으로 삼은 현존 최초의 구곡이다.

그는 용하구곡에 곡의 명칭을 바위에 새기면서 용의 존재를 인지했다. 그래서 용을 받들었다. “5곡에 산고운심(山高雲深) 4자를 새겼다. … 물이 고여 있고 깊어 못을 이루었는데 사람들이 아래가 ‘용추(龍湫)’라고 전하여, ‘수룡담(睡龍潭)’ 3자를 새겼다. 일찍이 길을 가는 사람 중에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제7곡에 ‘봉우비천(峰雨飛泉)’ 4자를 새겼다. 석벽(石壁)이 우뚝 둘러싸고 있는데, 물이 위로부터 아래로 떨어져 큰 폭포를 이루었다. 사람들이 위에 용추(龍湫)가 있다고 하여, ‘세심폭(洗心瀑)’ 3자를 새겼다.”

박세화의 「제수룡담(題睡龍潭)」을 살펴보자. “용이 졸고 있도다, 내가 그 구만리 장천 큰 너의 세계를 알겠도다. 능수능란하게 승천하강할 수 있으며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나리는 것도, 너의 변화이다. 한 국자의 물을 뿜어 하천과 넘실거리는 바다에 쏟아 부을 수 있는 것도 너의 신통한 힘이다. 잠자고 있어도, 그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어다.” 제3~4구에서 승천과 하강, 또 운우를 일으키는 천변만화의 전지전능한 능력에 대해 예찬했다. 제5~8구에서는 한 국자의 물을 뿜어 하천과 바다에 쏟아 부을 수 있는 용의 신통력을 격찬했으며, 잠을 잘 때도 그런 마음을 견지하고 있으라고 요망했다. 이렇듯 박세화가 용의 능력을 예찬하고 요망한 이유는 자신도 용처럼 전지전능한 능력을 구비하여 항일투쟁에 적극 활용하고자하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박세화의 1904년 9월16일 「화양강회일기(華陽講會日記)」를 보자. 괴산군 화양구곡 환장암에 있는 운한각에 들어가서, 금관대필(金管大筆)과 명나라 태조가 큰 획으로 쓴 용자(龍字)를 보았다. 부복(俯伏)하고 감충(感衷)하여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다음은 그 제자 이원우(李元雨 1880~1962)가 지은 제 5곡시의 1~2구이다. “오곡이라 구름 깊고 물이 또한 깊으니, 잠자는 용이 떨치는 곳 많은 숲이 펼쳐지네.” 이원우는 제 5곡을 용이 머무는 신령한 장소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용을 인지숭상한 박세화는 문화산수인 용하구곡을 설정했다. 박세화가 있어 용하구곡이 유명하고, 용하구곡이 있어 박세화가 유명하다. 구곡이 있어 문화산수가 영원하고, 존화도통이 있어 항일애국이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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