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국회의원

김종대 / 국회의원

(동양일보)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깊은 내상을 입혔다. 한 정통한 소식통이 필자에게 전한 바로는 한 회의석상에서 김 위원장은 “인민은 굶주리고 있는데 경치 좋은 곳에 여행이나 가서 한 가지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는 탄식 끝에 눈물을 쏟아냈다고 했다. 이 소식이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이후 김정은 위원장의 공개된 말들을 감안하면 과히 틀리지도 않다. 경제가 시급한 북한으로서는 회생의 기대가 산산이 부서졌으니 말이다. “원래 우리가 핵을 개발한 것은 중국과 러시아를 믿지 못해서인데, 미국이 이 점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김 위원장의 말도 이어졌다고 한다. 거친 바다에 깃대처럼 외롭게 서 있는 북한의 처지가 잘 드러나는 말이다. 중국은 북한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도와준다. 북한으로서는 이게 더 화가 날 일이다. 지난 20일의 중국의 시진핑 주석의 갑작스러운 평양 방문도 북미 간 교착상태가 거의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였다.



필자는 시진핑이 중국을 방문한 순간에 미국의 의원들과 전문가들을 접촉하고 있었다. 넉 달 이상 이어진 북미간의 교착상태는 미국 정치도 혼란에 빠지게 했다. 그렇게 트럼프의 대북 유화정책에 반발하던 미국의 민주당도 이제는 트럼프에게 “단계적이고 신중한 대북 접근을 하라”고 권고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미 하원의 로 칸나 민주당 의원이 미국 정부에 북한과 평화협정을 촉구하는 대북 결의안을 발의했고, 여기에 적지 않은 의원들이 서명까지 한 걸 보면 더 이상 민주당이 대북 강경론을 고수하는 것은 아니다. 더 황당한 일도 있다. 민주당 소속이면서 하원 외교위원회의 아·태소위원장은 “북한에 10개 정도의 핵무기는 보유하라고 하자”며 핵 보유국 북한과 문제를 봉합하자는 발언까지 했다. 필자를 감전시키게 하는 충격 발언이다. 물론 이 발언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미 의회의 한반도 정책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기에 무시할 수만도 없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 조야에서는 북한과 꼬인 문제를 당장 풀 수 없도록 하는 두 가지 사고가 바위처럼 버티고 있다. 첫째는 단 한 번의 거래로 모든 문제를 타결하자는 일괄타결 집착증이다. 두 번째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신성시하는 처벌 만능주의다. 울고 있는 북한을 돌로 내리치자는 바리새인의 도덕률이다. 이미 영변과 그 이상의 핵 시설까지 공개하겠다는 북한의 제안을 무시하고 계속 경제제재로 밀어붙이자는 이야기다. 필자는 이에 대해 애틀란틱 타운실의 전문가 회의에서 “이것은 외교가 아니다”라고 했다. 식량난과 전염병 확산, 생필품이 부족한 북한은 올해 인도적 재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주민의 불만이 고조되면 북한 정권은 더더욱 통제를 강화할 것이고, 체제는 극도로 경직된다. 그러면 평화는커녕 한반도에는 대붕괴의 조짐과 함께 위기론이 부상할 것이다. 일단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고,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주면서 악행을 교정해야지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다. “경제를 풀어 달라”는 북한을 개방과 평화의 길로 안내할 절호의 시기다. 처벌주의를 너머 북한의 선행을 유도하고 관리할 수 있는 소위 ‘긍정적 강화론’이 필요하다.



때마침 ‘유연한 대북 접근’을 말하기 시작한 비건 특별대표가 한국을 방문하고 다음 주에는 한미 정상회담, 한중 정상회담이 연이어 개최된다. 북한이 넓고 찬란한 번영의 세계로 나오도록 지략을 발휘할 때다. 북한의 위기는 곧 기회일 수 있다. 여기에 종교적 도덕률을 계속 고수하는 완고함으로 일관하면 우리 스스로 기회를 차버리는 어리석은 일이다. 아마도 7월은 우리에게도 평화공존의 새 질서를 만드는 담대한 상상력의 공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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