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논설위원 / 청주대명예교수

박종호 논설위원 / 청주대명예교수

(동양일보) 국내에는 2017년 기준 노인 9245, 아동 5299, 장애인 3907, 정신보건 430, 노숙인 151, 일반 490 곳 등 총 19522 곳의 돌봄 대상자 시설이 세워져 있다. 이곳들에 매년 3조 1700억원의 정부지원금이 투입된다. 막대한 액수이다. 그런데 공적감시망이 허술한 틈을 타 일부 원장과 이사장 등이 복지시설과 직원들을 개인 소유물처럼 다루고 있단다. 그래서 사회복지시설을 ‘이사장 일가의 소(小)왕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민간인이 운영하는 시설에서 매년 발생하는 비리를 보고 붙여진 말이다.

보도에 의하면 1996년 3월에 문을 연 A장애인 복지시설은 이사장 일가의 왕국이란다. 이 시설에는 현재 중증 장애인 126명이 기거하고 있다. 사회복지사를 비롯, 직원 70여명이 이들을 돌보고 있다. 지난 13일 노동시민단체인 ‘사회복지 119’에 접수된 제보와 서울신문 취재에 따르면 이곳의 직원들은 장애인을 돌보는 업무보다 밭에서 마늘을 뽑거나 감자를 캐고 고추를 따는 것을 비롯하여 양파, 대파, 깻잎 농사 등에 동원되는 일이 더 중요시 된단다. 소위 갑질 행동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직원들은 매년 바자회를 열면서 후원물품이나 10만원이 훌쩍 넘는 티켓 구매를 강요받기도 하고 심지어는 이사장 가족들이 사는 사택을 청소하기도 하였단다. 장애인 시설에서 어느 직원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는 질책보다 밭에 난 풀을 철저하게 뽑지 않는다는 질책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실토하기도 하였다.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사회복지사 E씨가 일하는 종교 재단 노인 복지시설에서는 행사할 때마다 직원들은 장기자랑 준비를 강요당했단다. 이사장은 법인 명의로 구입한 차를 개인 용무로 사용하고 있고 센터장은 관내에 거주하며 국가지원금을 자신의 생활비로 사용하였으며 직원이 월급을 받으면 그 가운데 50만원을 다시 시설에 기부할 것을 강요하기도 하고 행사시에는 휴일근무를 시키고서도 연장근로에 따른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횡포를 저지르기도 하였단다. 공(公)과 사(私)를 구별하지 않은 채 본말전도의 비행이 빈번한 데도 장기요양기관의 평가에서 ‘최우수’를 받았단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이렇듯 사회복지시설의 갑질⦁비리가 도를 넘고 있다. 미개 내지 원시시대에나 있을 법한 비행이 별다른 통제나 제재 없이 공공연히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시설에서 법인과 사회복지사가 작성한 근로계약의 내용과 무관한 업무를 시켰다면 이는 부당한 사적 지시로 밖에 볼 수 없고 근로기준법 위반인 것이다. 사회복지시설 관계자들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데도 갑질과 비리가 근절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는 사회복지시설 운영자들의 갑질 행태에 대한 행정 및 공공기관의 경시 및 불감증, 정부기관의 사회복지시설 관리감독 소홀, 복지시설 운영자들의 직업의식 및 윤리부족 등을 들 수 있다. 현대국가는 외견상으로는 복지국가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예상외로 복지의 사각지대가 많이 존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청소년 부모(미혼모) 보호체계의 미흡, 유기⦁학대 등 보호대상 아동이 연 5000명이나 되는데 전담공무원의 도장 하나에 운명이 달린 ‘위기의 아동’에 대한 대책 부실, 부모와 집이 없다는 이유나, 복장이 남루하거나 주소를 모른다는 이유로 경찰⦁공무원들에 이끌려 강제로 도서에 위치해 있는 시설(경기도 안산시의 작은 섬인 선감도:현재는 폐쇄))로 끌려간 뒤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급식으로 염전일, 농사, 축산, 양잠 등의 노예와 다름없는 강제노역에 시달리게 한 인권유린 행위의 근절책 등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거나 두루 뭉실인 것이다. 이는 아직도 복지국가 및 인본주의가 착근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는 하늘로부터 받은 귀하고 절대적인 것이며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불가침의 것이다. 헌법에도 보장된 기본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이긴 하겠지만 국가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는 사회복지시설에서 법의 경계를 넘어 위⦁탈법하면서 복지의 참뜻 및 이념과 거리가 먼 갑질과 비리를 행하고 있다니 이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배신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정부의 복지관할 부서에서는 기관의 명예를 걸고 구체적인 종합대책을 제시하고 예하 기관으로 하여금 평등과 인권보호 및 복지 등의 차원에서 철저하게 관리감독하게 하여야 하며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업무의 경중이나 인력의 부족타령만 하지 말고 지역 내 사회 복지시설에서의 갑질이나 비리행위의 근절에 만전을 기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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